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도 창업한 지 3년째인 2000년까지는 적자투성이였다. 획기적 검색 기술은 있었지만 수익 모델이 변변치 않았다. 이름난 소프트웨어 회사 노벨의 CEO였던 에릭 슈미트가 그해 말 구글을 찾았다. 속으론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창업자들을 한 번만 만나보라"는 구글 투자자들의 성화 때문이었다. 슈미트는 뜻밖에 대단한 구글의 기술에 눈이 휘둥그레져 1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듬해 구글 CEO로 자리까지 옮겼다.
▶슈미트는 10년간 구글 CEO를 맡아 연봉과 스톡옵션 등으로 8조원 넘는 재산을 모았다. 창업주 아닌 경영자가 스톡옵션을 받아 그렇게 많은 돈을 번 경우는 미국에서도 드물다. 슈미트는 컴퓨터공학 박사에 대기업 CEO까지 지냈기에 무명 벤처회사에 매력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빼어난 선구안(選球眼) 덕분에 인생 도박에 성공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중국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에 대한 눈 밝은 투자로 일본 1위 부자 자리를 굳히게 됐다. 알리바바 미국 상장을 앞두고 지분 34%를 지닌 소프트뱅크 주가가 연일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2000년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을 야후 창업자 제리 양 소개로 만나 얼굴 본 지 6분 만에 200억원을 쾌척했다. 중국 인터넷 시장의 성장성을 내다보고 저지른 베팅이었다. 소프트뱅크의 알리바바 지분 가치는 60조원으로 투자액의 3000배에 이른다.
▶벤처 투자 대박 신화는 창업 성공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이미 한 번 성공의 맛을 본 사람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돈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후배 기업인을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부는 삼성·현대차를 비롯한 15개 재벌을 끌어들여 지역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간 기술 있는 중소기업을 키우는 데 인색했던 우리 대기업 오너들이 과연 손정의 회장 같은 투자 대박 스토리를 일궈낼 밝은 눈을 가졌을까.
-조선일보 만물상, 201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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