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84세 博士 도전

하마사 2014. 9. 13. 10:43
2011년 여든넷 함신형 할아버지가 부산 동의대 중문과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첫 소감을 "설렌다"고 했다. 시험에 몇 차례 떨어지고 관두려 한 적도 있던 터라 감회가 남달랐다. 일흔 넘어 학부와 석사를 마쳤다. 그때만 해도 함 할아버지는 '체력'은 자신 있지만 '기억력'이 다소 달린다고 했다. "남들 한두 번이면 될 것을 나는 열 번 이상 외웁니다." 박사과정까지 잘 마쳤다. 그런데 지금은 지도교수도 연락이 안 닿아 안타까워하고 있다.

▶원로 정치인 권노갑 고문도 올해 여든넷이다. 이번 가을학기부터 동국대 영문과 박사과정에 적을 두었다. 같은 학교 경제학과 출신인 권 고문은 작년에 한국외국어대 영문과에서 최고령 석사학위를 땄고, 내친김에 모교로 옮겨 박사 도전장을 냈다. 권 고문은 6·25 때 유엔군 통역관을 했고, 정계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영어교사로 3년을 가르쳤다. 영어가 빼어난 수준이다. 그 '기본'을 믿고 손주뻘 학생들과 박사과정 강의실에 앉았다.

[만물상] 84세 博士 도전
▶지난해 박사 졸업자가 1만2625명이다. 꽤 많아 보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박사를 딴 사람을 모두 합해도 전체 인구의 0.3% 남짓이다. 신규 박사를 1981년과 견주면 21배 늘었다. 박사를 따는 나이도 갈수록 고령화 추세다. 평균이 마흔하나다. 새로 된 박사가 열이면 그중 둘은 쉰이 넘었다. 박사를 따는 데 보통 5년쯤 걸린다면,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나이는 평균 서른여섯이다. 권 고문의 여든넷 열정이 놀랍다.

▶중국 후한 때 반란이 일자 마원(馬援)이란 장수가 나섰다. 광무제가 나이가 많다고 말렸으나 갑옷을 걸치고 말을 탔다. 광무제가 감탄했다. "정녕 노당익장(老當益壯)이로다." 그런데 당시 '노익장' 소리를 들었던 마원은 불과 예순둘이었다. 이젠 시쳇말로 명함도 못 내민다. 충남 공주에는 백 살에 운전면허를 딴 박기준 할아버지가 차를 몰고 있다. 아흔둘에 마라톤 풀코스를 뛴 미국 할머니, 아흔아홉에 첫 시집을 낸 일본 할머니도 있다.

▶올 추석도 최고 인기 가요는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였지 싶다.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로 구성지게 넘어간다. 미국 전직 대통령은 아흔에 스카이다이빙을 한다. 영국에는 아흔 넘어 박사를 딴 기록 보유자가 셋 있다. 올봄 명지대에서는 최문휴 전 국회도서관장이 일흔아홉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제 권 고문이 기록을 깰 차례다. '박사 따기 딱 좋은 나인데~'. 브라보, 경의를 표한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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