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관련자료/신앙칼럼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에 대한 평가(이명진목사 칼럼 68)

하마사 2014. 9. 6. 18:38

글출처: http://cafe.daum.net/sinaimission/5uEL/71

 

 

프란치스코 교황방문 결과에 대한 평가들

 

아래 글들은 모두 인터넷 상에 나타나 여러 의견들을 취합하여 공통되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요약한 것입니다 글의 옳고 그름을 논하고저 올린 글이 아닙니다 그것의 판단은 오직 독자들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A. 긍정적 평가들

 1.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고 기도함으로 전세계에 한국의 현실을 알리고 북한에게도 평화의 멧세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금년 2014년 8월 14일 천주교의 본부 바티칸 왕국의 프란치스코 교황(78세)이 한국을 방문하였다.(4박5일) 국내 천주교의 500만 신도들은 그분을 극진히 맞이하였고 범 정부 차원에서 국빈대우를 하면서 국가행사로 치뤘다. 천주교는 오래 전 한 때에 사회적 죄악을 많이 범하기도 했지만 요즘에 보면 인간이 만든 선한 종교의 성공모델로 보인다. 온 국민이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이 때에 세계최대의 종교단체의 장이 찾아와서 그 유가족과 한국 국민을 위로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것은 종교의 선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소탈하고 청빈·겸손한 언행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가톨릭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한국에 왔다. 13억 가톨릭 신자들을 이끄는 교황의 방한(訪韓)은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도착 첫 인사로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했다. 교황은 일주일 전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는 "사랑과 희망의 복음을 나누려고 한국에 간다"고 했다. '평화' '사랑' '희망' 이 셋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갖고 오는 선물로 받고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大義)"라며 "희망은 위대한 선물이며 우리는 우리가 희망하는 목표를 위해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평화의 부재(不在)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 온 이 땅 한국에서 이러한 (평화에 대한) 호소가 더욱 절실하게 들릴 것"이라고 했다

 

2. 교회다운 교회와 성직자들의 올바른 자세를 강조함으로 교회에 대해 경각심을 주었다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의 교황은 처음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 사랑과 청빈(淸貧)을 합친 영성(靈性)을 실천한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이 부활해야 교회가 살 수 있다는 통절한 인식을 하고 그것을 강조해왔다 교황은 사랑과·청빈(淸貧)을 함께 실천해야 교회가 산다는 통절함 일깨워주었다

“교회는 가난해야한다”고 하며 오늘날 만연한 물질주의, 향락주의에 경각심을 일깨웠다

청빈과 사랑의 목자를 강조하면서 목자의 몸에서는 양의 냄새가 배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 낮아져서 성도들에게 다가가 섬기는 종이 될 것을 강조하였다 바티칸의 화려한 관저 대신 방 한 칸짜리 방문자 숙소에 묵고 간소한 공동 식사를 한다. 방한한 교황이 소형 국산차를 이용하고, 경호 최소화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낮은 데로 임하기는커녕 높다란 종교 권력의 성(城)을 쌓아 왕 노릇 하는 일부 종교 지도자들과 대조된다. 종교 지도자들은 훈계하기 전에 '낮은 데로 나아가라' 명심해야 한다 교황의 다음과 같은 연설에서도 교회가 부자가 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번영의 시대에 떠오르는 한 가지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그저 또 다른 ‘사회의 일부’가 되는 위험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비적 차원을 잃고,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능력을 잃으며, 그 대신에 하나의 영적 단체가 되는 위험입니다. 이 단체는 그리스도교 단체이며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가진 단체이지만 예언의 누룩이 빠진 단체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가난한 이들은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적절한 역할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 ‘번영,’ 사목적 번영의 유혹입니다. 그런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부유한 이들을 위한 교회, 또는 돈 많고 잘나가는 이들을 위한 중산층 교회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매우 선교적인 교회이며 위대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 자체로부터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이런 유혹의 씨앗들을 뿌리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교황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교회가 대형화를 추구하는 나머지 가난한 이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저는 갇혀있으면서 자기만의 안전에 몰두하는 건강하지 못한 그런 교회보다는 오히려 상처를 입고 멍들고 먼지 묻은 교회를 더 좋아합니다.”교황의 말이다

 

3.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선포하며 이시대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제공하고 그들을 격려하였다

교황은 청소년들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좋아하는 스페인어 구절이 있다"며 "La esperanza es lo ultimo que se pierde (희망은 가장 마지막에 잃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영어로 "희망은 기프트(gift 선물)"라고 화답했다. 교황은 청년들에게 편견과 폭력을 거절하라고 강조하며 인간성을 파괘하는 죽음의 문화와 천박한 문화와 개인주의 ,물질주의 를 경계하라고 교훈하였다

“편안한 삶은 인간과 교회를 병들게 한다 ”

 

4. 정치 사회 경제분야에서 가난한자들과 소외된 자등을 배려할 것과 그들과 사랑의 소통을 강조하며 사회전반에 부조리하고 불의한 것을 시정할 것을 촉구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기 전의 베르고글리오 신부는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빈자와 약자의 편이었다. 교황이 된 그는 부패의 온상이던 바티칸 은행을 개혁하고 마피아를 파문했다. 그러나 교황은 정의 실현을 앞세워 폭력을 정당화하는 해방신학과는 거리를 둔다. 영성을 결여한 사회 개혁 시도는 종교가 아니라 정치 투쟁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교황은 정의와 공평을 중시하지만 그것을 사랑과 온유함의 그릇에 담는다. 성난 얼굴과 강퍅한 목소리로 정의를 독점하면서 정치 투쟁을 일삼는 한국의 성직자들은 사랑 없는 정의가 진짜 정의인지 성찰해야 마땅하다.

  성 프란치스코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믿음의 본질은 사랑과 평화다. 그리하여 교황은 종교·인종·계층 간 화해에 누구보다 앞장선다.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삶의 방식까지 존중한다. 교황은 현재 세상의 가장 큰 위험은 소비지상주의에 의해서 만연돼 있는 자기만족적이면서 탐욕스런 심령에서 나온 고독감, 가벼운 쾌락을 무절제하게 추구하는 것, 무뎌진 양심이라고 진단한다. 우리의 내적인 삶이 자신만의 유익들과 관심에 사로잡히는 것이 세상의 가장 큰 위험이라고 규정하고, 그 결과로 다른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은 사라지게 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그리고 이제 ‘복음화’는 탐욕적인 편협함과 자기 몰두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데 있다고 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사고 등 현안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으나 "한국도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자연환경의 책임 있는 관리에 대한 관심사들로 씨름하고 있다"며 "여기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의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

  

B. 부정적인 평가

 

1. 교황은 '사회적 약자' 소외받고 외로운 그늘진 곳 위한다며 탈북동포를 외면하고 가장고통받고 있는 북한주민들은 외면하였다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행사를 두고 엇갈린 평가의 핵심은 화려한 행사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과 그것에 냉담한 일반 신도들의 두 갈래이다. 냉담자들은 해방신학의 교황을 맞이하는 준비위원장에 한국의 천주교 13명 주교 중에서 대표격으로 강우일 종북신부가 선택된 것에서부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한국천주교의 해방신학 분위기를 유감없이 연출하였다고 평가하면서 낮은 곳으로 찾아가는 교황의 황금 비단옷이 너무 화려해 보이고  탈북자 30,000명의 아픔과 북한의 정치수용소에는 왜 무관심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교황은 이번 방한에 세월호 유족들은 네번씩 만나 주었고 탈북자들은 한번도 만나지 주지 않은 데 실망이 많다” . 원래 카톨릭이 정치지향적이란 건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이번에 교황이 스스로도 자인했듯 세월호 유가족당에게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는 점은 묵과할 수 없는 오점이 될 것이다. 교황이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북한인권 탈북자 외면 때문이다 교황의 한국 방문 4박5일 동안 한 일을 보면 가는 곳마다 세월호 유족만나 기도하는 모습만 보였다. 세월호 희생보다 더한 2천700만 북한 동포가 생지옥에서 생활하고 있고 2만7000명의 탈북 통포가 이산 고통의 아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또 만주에는 30만 명의 탈북동포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고 북한 정치범수용소에는 20만 명이 죽어가고 있다.하나님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북한 주민 2300만명과 정치수용소에 갇혀있는 20만명의 그리스도 형제들을 코앞에서 바라보면서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린 교황의 근본신앙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리가 높다. 교황이 분단의 아품을 치유하기 위하여 먼 이곳까지 왔으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임진각이나 판문점을 찾아가서 암흑의 땅 북한해방을 외치고 떠났다면 하느님이 감동하여 남북통일의 기운이 폭발할 것인데 교황을 맞이하는 준비위원들과 그 주변 천주교 지도자들의 마음씀씀이가 너무나 졸작이었다. 무기력하게 말없이 떠나버린 교황을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은 지금 쯤 통곡하고 있을 것이다.     

.교황방한 준비위원장이 강우일주교가 정의구현사제단 대부라 정의구현사제단처럼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편파적 행보가 갈등과 분열을 조장 했다. 그동안 정의구현제단은 대통령퇴진을 요구하며 교황이 청와대 방문을 하지 말라고 요구 했고, 병자 부랑인의 천국 꽃동네를 교황이 가지 못하도록 중증 장애자까지 동원해서 시위를 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중 극히 일부는 교황 시복식 장소까지 점령하고 시위를 했다. 이시위에 앞장 선 것도 정의구현사제단이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를 정의라 외치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독재국가, 대통령을 파쇼도당이라고 매도하면서도 북한동포 인권과 김씨 세습 독제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 반역집단이다. 이들의 각본대로 교황이 이용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교황의 이런 행보 뒤에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있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반정부 반미 종북의 정치성향 때문에 540만 천주교 신자들 중에 420만의 냉담자(세례받고 쉬는자 3년이상 고해성사의무를 전혀하지않고 주일미사 불참석자)를 만들어 냈다. 교황의 방문이 냉담자를 더욱 늘어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2. 특종 종교에 대해 지나친 환대와 방한 동기의 의구심

종교적 다원주의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교황에 대해 지나친 환대를 보이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수치에 가깝다. “가톨릭이 국교(國敎)가 아닌 한국에서 보다 교황에게 더 환대를 보여준 곳은 없었다”는 외신기자의 평가에 어덯게 이해해야 하는가?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영방송 KBS가 특정종교행사를 하루종일 중계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려야한다. 이번 천주교의 종교 행사는 몇년간 준비한 교황의 예정된 연출일 뿐이다. 개신교와 불교, 기타 종교에서도 이런 행사를 한번씩하여 종교경연 대회라도 했으면 좋겠다. 

교황 방한은 교황청 내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한 행각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현재 교황청 재정을 돕는 국가 별로 많지않다고 한다 카톨릭 신자가 많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들의 경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아시아의 뿌리 깊은 나라들은 가톨릭을 믿지 않는다. 미국 식민지던 필리핀만 신도수가 많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 최고 수장은 경제적으로 강력한 국가인 한국을 택했다. 모든 비용은 한국의 천주교단에서 부담하였다 한국의 특정 종교의 행사를 한국정부의 절대적인 도움과 한국천주교회의 온전한 경제적부담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3. 교황은 정치적 색채가 너무 강하다

교황은 한국을 떠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어떤 이가 정치적으로 오해될 것을 우려해 세월호 추모 리본을 떼어 달라고 권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전세계 가톨릭의 아버지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써 그 자체가 인류 보편적 가치이다. 교황의 몸 전체는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며, 어느 특정집단의 것도 아니요, 특정사상의 전유물도 아니다.그런 교황의 몸, 그런 보편적 가치를 상징하는 교황의 가슴에 오늘 한국사회 특정집단의 생각을 대변하는 표식이 오르다니.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 당시 처음 나왔을 때만해도 사고를 당한 조난자들의 조속 귀환을 기원하고, 어처구니없이 저세상에 간 영혼들을 애도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방식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세월호 문제가 장기화 하며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지금 그 노란리본은 특정 집단들의 주관적 의사를 실천하기 위한 흉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 노란리본이 지난 16일 ‘시복식’이 있던날 교황의 가슴에 처음 오르더니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처음 교황은 그 노란리본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돌아가는 비행기내 기자회견에서 ‘당신’말대로 “누군가 떼라 했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했다”고 했다는데 도대체 교황이 누구의 무슨 말을 듣고 그러시는지 천주교 영세를 받은 한 사람으로써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교황이 그렇게 하도록 기획한 자는 누구인가. 또 곳곳에서 기회 있는 대로 소위 ‘교황마케팅’을 기도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것을 보고도 아무런 의사표시가 없는 바티칸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이 오늘 천주교의 실상인가. 종교권력이 정치에 얼씬 거리면 반드시 부패한다

교황의 대한민국 수준의 경제체제를 두고 마치 살인적 착취구조라는 인상을 주는 취지의 언급은 그가 인류역사의 현실에 대해 무지하거나 지나친 이상주의적 망발을 이 과잉민주사회에 쏟아낸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진 교황이라면, 한국의 노인세대가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하면서 인류에 공헌한 업적(산업화와 민주화)을 지적하고 칭찬했어야 했는데, 산업화세대에 대해 미몽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당한 평가도 하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 기존체제에 대한 저항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한국의 경제제도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을 거부하기를 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인간을 뜻함)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빈다”고 혹평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한림 주교의 “교황님의 이런 메시지 밑에 흐르는 것은 남미 해방신학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휴머니티이자 그리스도의 사랑”이는 변명에도 불구하고, 해방신학자의 뉘앙스를 풍긴다. 더 이상의 현실적 대안도 없이 한국의 성공적 경제풍토를 ‘죽음의 문화’로 배척한 교황은 은 북한 전체주의사회에 일체 비판을 하지 않은 편향적 언행을 보여줬다.

“교황은 해방신학의 본고장에서 온 교황답게 그의 강론이나 연설에는 끊임없이 물질적 빈부에 대한 차별의식이 배제된 적이 없다.

. <교황 마지막 미사,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중앙일보의 기사에 한 네티즌(nayawls)은 “용서?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 용서도 이해와 공감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인데, 지금의 남북이 가능할까? 총칼을 앞세워 협박을 하고, , 잘못에 대한 사과도 없는데 용서하라는 말이 가능할까? 6.25전쟁으로 죽은 약 5백만명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라고. “눈앞에 칼 든 강도도 용서할 수 있나?. 용서의 대전제는 반성이다. 반성도 없고 눈앞에 있는 위협을 용서하라니?”시리아에서 화학무기 사용도 수천명 죽을 때 교황님은 일흔 일곱번 용서하라 하겠는가?, 교황의 이상주의적 주장은 북한의 현실과 남한의 사정을 간과한 망상적 선동에 가깝다. 개인 간의 용서와 화해를 집단 간의 갈등에 적용하면, 악당에게 유리하다.  그는 북한정권이 자행하고 있는 학살, 핵무기 개발, 강제수용소 운영, 종교탄압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또 북한의 앞잡이가 되어 남남갈등 부추기는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서는 경고한마디 하지 않았다.교황은 평화와 화해를 이야기했지만 진실과 정의가 결여된 평화와 화해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4. 교황의 방한 효과에 대한 큰 기대가 없다 과거 교황이 이 축복하고 떠나간 다음 복을 받은 나라나 인물은 별로 없다 재앙이 많았다

교황이 방문하고 축복한 나라나 ·인사가 복을 받은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 모두 몰락한 것을 많이 본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1588년 스페인 함대에 일어난 일을 잘 알고 있다.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스페인의 필립 2세는 영국을 정복하여 로마 교황에게 되돌려 주려고 금과 군인과 로마 교황의 축복을 가득 실은 아르마다 함대를 출항시켰다. 그러나 로마 교황의 축복은 그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음이 곧 드러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쳐서 흩어 버리시고 그들 대부분을 산 채로 수장시켜 버리셨다. 역사는 로마 교황의 축복이 가져다주는 치명적인 것들에 대한 수많은 예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과거 200 여년동안 교황 축복의 결과를 보면(70 개 사례)  축복을 받은 인물들은 예외 없이 몰락하였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비극이 있어왔다 (이 글은 영국과 호주에서 발간된 <Papal Blessings and Curses>라는 소책자. 스위스의 구영재 선교사가 번역한 것이다. <Papal-Blessings-and-Curses.rtf-Bible Based Ministries교황(요한바오로 2세)이 한국을 축복하고 떠난 후( 1984년, 1989년) 예외없이, 60여년만에찾아온 대홍수로 수백명이 죽고 수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있었다 . 올 가을과 겨울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C. 권고 사항 (중간 입장? )

 

1. 교황은 카톨릭 교회의 수장인 동시에 바티칸 나라의 국가의 원수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임을 알아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공식적으로 교황은 영토 0.44㎢, 인구 1천 명에 불과한 세계 최소국 바티칸 시국의 정치적 수장이지만, 전세계 10억 카톨릭 교도의 ‘아버지’(Holy Father)로 불리는 종교적 수장이다. 이런 특수한 지위로 인해 교황은 세계 어느 대통령보다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외국을 방문할 때 최고 귀빈예우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교황의 연설 한 마디, 한 마디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정도다.바티칸의 대주교는 “교황(요한 바오로 2세)이 동서 베를린의 장벽을 붕괴시켰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교황 선출 이전, 폴란드에서 ‘카롤 요셉 보이티아’라는 이름의 대주교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조국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했고 이로써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의 민주화가 진전되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카톨릭 신자인 김대중 대통령이 작년 3월에 교황을 방문하여 북한 방문을 제안한 것도 교황의 행보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한 포석이었다.과거와 달리 세계 평화를 호소하고 종교간의 연합을 촉구하는 교황에 대하여 세계는 환영하고 있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 각국을 순방하며 도착하는 곳마다 입을 맞추고 많은 군중을 모았다. 그는 또한 각국 정치가, 종교 지도자들과 기꺼이 손을 잡고 우정과 협력을 강조했다. 비단 카톨릭 교도뿐 아니라 공산주의자 정치가도, 불교 지도자도 그와 반갑게 손을 잡았다. 그가 95차례, 128개국에 달하는 해외 순방에 나선 거리를 환산하면 지구를 30바퀴 가량 돈 셈. 10억 카톨릭 인구의 수장으로서 교황이 가지는 종교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론이 없다 이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교황의 정치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2. 교황의 가르침 중 대부분은 우리 사회와 교회가 귀담아듣고 실천할 사항들이 많다

한국 사회엔 아프고 슬픈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대한 경시(輕視), 무절제한 욕망 등 사회 밑바닥의 병(病)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결과다. 사고의 수습과 해법을 놓고도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들 앞에서 교황이 자기편이 돼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들이 있다. 그러나 교황이 다녀간 뒤에도 우리들 스스로가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병폐들은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교황께 뭘 어떻게 해달라고 자기 입장만 주문할 게 아니라 청빈과 사랑과 겸손을 지향하는 교황의 말과 행동, 인품을 배우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모두가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교황이 한번 와서 축복과 좋은 말을 한다고 축복이 오는 것 아니다 좋은 복된 말을 듣고서 순종해야 복이 되는 것이다 그 소중한 교훈들을 무시하고 흘려 버린다면 오히려 화가 올지도 모른다

 

3. 개신교 극히 일부 지도자들의 교황, 카톨릭에 대한 맹목적 비판은 삼가해야한다

“개신교 일부에서 가톨릭을 이단시하거나 폭력적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일치와 존중의 정신을 축소하는 것으로 이어지면 안 되겠다.”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님의 글이다. 우리 개신교 신자들도 이런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 진리를 수호하는 방법은 항상 편협하고 독선적이며 공격적이어야 하며 너그러움과 온유함은 진리를 타협하는 것인가. 나는 개신교 신학자로서 개혁교회의 가르침이 가톨릭 신학보다 훨씬 더 성경적이라는 믿음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조금도 양보할 용의가 없다.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이런 확신과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 온전한 진리를 소유했다는 확고한 신념과 그에 대한 열정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부패성, 즉 우월의식과 교만과 정죄의식과 맞물려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형태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 무서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진리에 대해 헌신하며 충성하는 길이라는 거룩한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강화된다. 결국 진리의 이름으로 진리와 성령을 거스르는 교만한 영에 사로잡혀 우리 안의 소망과 확신을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증거해야하는 크리스천의 기본자세를 잃어버린다. 개신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선동하여 교황을 폄하하는데 열을 올리기보다 오히려 이번 계기로 스스로 각성해야 할 것이다. 더 성경적인 진리를 따른다는 자들이 더 거짓되게 살 때 아무리 바른 교리를 가졌다고 우겨도 그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더 올바른 교리를 가졌다는 자들이 더 거짓되고 부패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 더 큰 악을 범하는 것이며 진리를 죄의 라이센스로 남용하고 더럽히는 최악의 불의를 범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패한 자들일수록 자신이 마치 진리의 수호자인 것처럼 교리적인 오류를 물고 늘어지며 문제를 부풀리고 확대하여 사람들을 선동함으로써 자신의 거짓됨과 위선을 교묘히 위장한다. 개신교가 이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개혁하는 자성의 모습은 없이 독선과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가톨릭과 교황에 네거티브 공세를 취하는 꼴불견을 보인다면 그렇지 않아도 형편없이 망가진 개신교의 이미지는 완전히 짓밟힐 것이며 전도의 문은 더 막힐 것이다.

 

4. 동일한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개신교와 로마카톨릭 교회는 적대감을 버리고 상대방의 장점을 배우고 본받을 필요가 있다

면죄부를 찍어내는 등 온갖 비리와 부패로 가득했던 중세 가톨릭에 비해 오늘날의 가톨릭은 많이 쇄신되었다. 그에 반해 개신교, 특별히 한국개신교는 순수했던 종교개혁의 정신을 잘 계승하고 발전시키기보다 오히려 역행하는 모습이 역역하다. 교황방문으로 인한 개신교의 우려는 그 바탕인 종교개혁의 정신과 신앙과 경건에서 너무도 멀리 떠나온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지금은 한국개신교가 더 시급한 개혁의 대상이 되었으니 개혁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교황의 방문에 지레 겁먹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바른 교리를 가졌다고 하면서 횡령과 세습과 성추행과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한국교회의 얼굴에 먹칠하는 한국교회 지도급에 있는 유명한 목사들과 청빈과 정의와 진실함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가톨릭의 수장은 너무도 달라 보인다.

개신교의 비난의 내용을 보면 5만교회 10만명 목회자들 대부분이 그런 것이 아니다 주로 대형교회를 위시하여 극히 일부 교회지도자들의 비리와 잘못이 부각되어 보도되어 한국개신교 전체가 매도되는 경향이 많다 대부분 목회자들은 전 재산을 다 팔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나라 확장과 영혼 구원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는 선교사를 약1,000명 파송하고 있는 반면 개신교는 약 2만 5천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사회복지재단 기관은 개신교가 약 60%이상을 점하고 있고 불교 및 천주교와는 비교할수 없다 지금까지 한국개신교회가 북한에 지원한 물품과 현금등은 1조원이상으로 추정된다 태안앞 바다 기름 유출사건으로 공해가 심각할 때 약 100만명이 그 바다에 가서 오염된 땅과 돌에 묻은 기름을 씻어내어 큰 공해를 방지하였는데 그중 70만 명이 개신교도이다 거의 모든 교회는 헌금 수입 지출내역을 아주상세하게 공개하고 결산한다 과거 독재자들이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돈문제 비리를 감사하였으나 실패했다 TV방속국에서 선행을 하여 칭찬할 만한 인물들 발굴하여 방영할 때도 70% 이상이 개신교도 들이었다 3.1운동때 33인 민족 대표중 16명이 개신교지도자들 이었다 타종교와는 비교할수 없이 가장 많이 투옥되고 순국한 사람들도 개신교도들이다 현대 민주화 투쟁을 선도한 이들도 개신교 지도자들이 아주 많다 한국 천주교회도 국가 사회를 위해 수많은 좋은 일을 하고 기여해왔다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하나님나라 건설에 협력하길 바란다 우리는 지금 다종교, 다원화된 사회속에 산다 상대방 종교에 대해 맹목적 비방과 폄하하는 일은 전혀 도움이 될게 없고 분쟁과 분란만 일으킨다 더구나 개신교와 로마카톨릭 교회는 전혀 적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동일한 창조주 야훼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기 때문이다(성모마리아는 구세주가 아니다 마리아공경은 하나님을 흠숭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제2차바티칸 공의회 헌장 8장에서 분명히 강조한다) 상대방을 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배우고 본받는다면 교인들의 신앙생활과 국가사회에도 유익이 있을 것이다.

추서: 로마카톨리과 개신교의 교리차이를 알고 싶으신 분은 “시내산 선교회” 카페 “이명진 목사칼럼에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교리차이 “ (42번) 항목을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줄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