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관련자료/신앙칼럼

영혼의 '결림병'

하마사 2013. 8. 28. 14:46

 

세월 지난 흔적 차곡차곡 몸에 쌓여… 욕실에 떨어진 치약 줍다 허리 '삐끗'
'물건보다 내 몸 중요한 걸 잊은 탓'
더 소중한 영혼은 왜 돌보지 않나… 부질없는 것에 눈멀어 결린 영혼들
갖고 가지 못할 것 욕심 내지 말기를

 


	조정민 목사·前언론인
조정민 목사·前언론인

 

 

 

 

 

 

 

 

 

 

 

 

나이 들면서 아픈 곳이 늘었다. 젊어서는 그렇게 병약한 편이 아니어서, 나이 들면 이렇게 전신에 병의 경고등이 켜지고 고통의 신호음이 울리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 차곡차곡 몸에 쌓이고 있다는 것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은 흘러서 떠내려간 것이 아니라 몸의 곳곳에 고스란히 머물러 있는 것을 본다. 이마와 턱 밑의 굵은 주름과 눈가의 잔주름을 바라보는 사이에 어느새 손등에도 수많은 주름이 자리를 잡았다. 어린 시절 두 볼에서 빛이 나던 생명의 윤기가 세월 따라 이렇게 바래가는 것이구나! 또 한 번 흠칫 놀란다. 아! 그래서 무슨 무슨 성형외과들이 그렇게 많은 것이구나. 그런 생각도 스친다.

그러나 어쩌랴.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내가 이 세상 오는데 뭘 한 게 있다고 불평하랴. 갑자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손과 발, 눈과 귀, 오장육부… 모두를 한결같이 고생만 시킨 것이 미안하다. 주인 잘 만났으면 이토록 고생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 같은 사람 만나서 말할 수 없이 고생했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걸핏하면 밤을 새워 술을 마시지를 않았나, 담배 연기 자욱한 방에서 카드 몇 장에 목숨을 걸고 새벽녘까지 가쁜 숨을 몰아 쉬지 않았나, 풀벌레도 그늘에 몸을 숨기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쇠막대기로 공을 날리고 손바닥보다 작은 구멍에 그 공 넣는 재미에 볼썽사나운 기미를 만들지 않았나, 게다가 잦은 교통사고와 질환으로 몸을 초주검으로 만들기까지 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 어른들께 잔소리처럼 들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몸을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새삼 귓전에 쟁쟁하다. 어쨌거나 몸이 이만한 것도 고맙기 그지없다. 살아남아서 고마운 것이 아니라 내 것 아닌 몸을 내 것처럼 여기고 산 과거를 돌아볼 기회를 허락받은 것이 고맙다. 그래서 비록 예순을 넘겼지만 남은 시간이라도 이 몸의 원주인 되신 분께 사과와 감사를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는다. 하기야 여생이 얼마가 남았건 생명이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니 이후라도 몸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도 묻고 의논해가면서 지낼 일이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정성스럽게 몸을 청결하게 하도록 애쓴다.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 얼굴조차 부담스러워한다는데 특유의 냄새는 또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짐작한다.


	영혼의 결림병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뒤늦게 철이 들어 조심에 조심을 더했는데 얼마 전 그만 한순간에 허리가 삐끗하고 말았다. 욕실 바닥에 떨어진 치약을 줍느라 허리를 급히 굽힌 것이 화근이었다. 허리 결림의 통증이 심했고 생각보다 오래갔다. 일어나고 앉는 것이 편치 않았고 걷는 것도 시원치가 않았고 심지어 누워서 돌아눕다가도 잠을 깼다. 아들 같은 친구에게 이 허리결림병 푸념을 했다. 운동을 가르치는 친구답게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대화 중의 한마디가 마음에 남았다. "그게 다 그 물건보다 내 몸이 중요하다는 걸 잊어서 그래요." 어떻게 젊은 친구가 이런 얘기를 다 하나. 맞다. 정말 그렇구나! 그깟 다 써 가는 치약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그걸 덥석 집겠다고 생각 없이 서두르다 이런 고통의 시간을 자초한단 말인가.

우리 몸이 하찮은 물건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가? 물을 필요도 없고 답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 몸보다 더 중요한 건 없나? 사실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몸보다 얼마나 더 소중한가? 죽음이란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일이고, 주검이란 영혼이 떠나버린 육신 아닌가. 그 소중한 영혼을 우리는 얼마나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돌보고 있나. 물건 하나 들다가 어깨나 허리 결림병을 얻는 것처럼 눈앞에 잠시 있다가 사라질 하찮은 것을 들다가 얼마나 많은 영혼이 결림의 아픔을 겪나. 어깨나 허리, 목에 든 결림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병원을 가고 한의원을 찾지만 영혼에 든 결림병은 병세에 대해서조차 무지할 뿐만 아니라 어디를 찾아가 누구를 만나야 할지도 제대로 모른다. 다만 환자는 끝이 없고 영혼 결림의 병세는 계속해서 악화 중이다.

사실 세상에 만연한 범죄들은 예외 없이 이 영혼 결림병이 원인이다. 이 병은 무엇보다 초기에 치료해야 하지만 자칫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는 치료 시기를 놓쳐 병세를 악화시키기가 일쑤다. 무엇보다 물건보다 몸을 소중히 여기고 몸을 자각해야 하듯 육신보다 영혼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영혼의 상태에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하지만 세태는 정반대이다. 몸이 요구하고 몸이 갈망하는 것들을 덥석덥석 집다가 이 영혼 결림병을 얻는 사람들이 끝 모를 행렬을 잇는다. 이 병은 갈수록 보기에 답답하고 추하다. 대부분 잠복해있던 탐욕 균이 안팎의 자극을 만나 발병한다. 머지않아 세상 떠날 사람들이 다 갖고 가지도 못할 것에 욕심을 부리다 이 병을 얻지 않도록 경고하고, 환자들에게는 전문의 소개하는 일이 요즘 일과가 되었다. 그 영혼 결림병 전문치료의사가 예수여서 그분 만나는 외에 달리 뾰족한 치료나 예방책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2013/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