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근처 바다.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드호가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기 시작했다. 승객은 영국 73보병연대 소속 군인 472명과 가족 162명. 구명보트는 3대뿐으로 180명만 탈 수 있었다. 탑승자들이 서로 먼저 보트를 타겠다고 몰려들자 누군가 북을 울렸다. 버큰헤드 승조원인 해군과 승객인 육군 병사들이 갑판에 모였다.
▶함장 세튼 대령이 외쳤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희생해 온 가족들을 우리가 지킬 때다. 어린이와 여자부터 탈출시켜라." 아이와 여성들이 군인들의 도움을 받아 구명보트로 옮겨탔다. 마지막 세 번째 보트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아직 자리가 남아 있으니 군인들도 타세요." 한 장교가 나섰다. "우리가 저 보트로 몰려가면 큰 혼란이 일어나고 배가 뒤집힐 수도 있다." 함장을 비롯한 군인 470여명은 구명보트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며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지휘관 스콧 대령이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버큰헤드 훈련을 하겠습니다. 모두 갑판 위에 그대로 서 계시고 구명보트 지정을 받으면 움직이십시오." 가족들이 동요할까 봐 '훈련'이라고 둘러댄 것이다. 곧바로 선장과 선원들이 여성과 아이, 환자들을 구명정에 태웠다. 선원과 군인 300여명이 남았다. 선장과 스콧 대령은 "이제 모두 바다에 뛰어내리라"고 지시하곤 부하들이 모두 떠난 걸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물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이들은 다른 화물선에 의해 모두 구조됐다.
▶며칠 전부터 블로그와 SNS에서 '버큰헤드 정신을 기억하자'는 글이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선장과 일부 선원들이 승객들을 앞세우기는커녕 자기부터 살아야겠다며 배를 빠져나온 데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 직급이 높고 선내 사정을 잘 아는 간부 선원들은 먼저 도망해 100% 살아남았다. 그러나 스물두 살 여승무원과 어린 학생 수백명이 사망·실종했다. 우리 사회엔 언제나 '버큰헤드 정신'이 자리 잡을까.
-조선일보 만물상, 201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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