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기타자료

책임있는 자들이 가장 먼저 도망가는 나라

하마사 2014. 4. 18. 19:25

최후에 탈출해야 하는 船長이 선박·승객 버리고 앞장서 도주…

방송 안내 잘못해 희생만 키워

이런 자들에게 감투 씌워주고 弱者 팽개치는 야만적 시스템…

스스로 문명국가라 할 수 있나

박정훈 디지털 담당 부국장
박정훈 디지털 담당 부국장
'세월호' 참사를 보도한 조선일보 인터넷 기사에 독자 박한식씨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내용이 뭉클해 그대로 인용해본다.

'17~19세기 영국이 제국(帝國)을 건설할 때 뱃사람들에게 제1원칙이 있었다고 합니다. 배가 침몰하면 여자와 아이들을 가장 먼저 탈출시키고, 그래도 구명보트 자리가 남으면 남자들을 탈출시키고, 마지막에 선원들이 탈출한다는군요. 이 원칙을 어기면 그 자리에서 총살했고, 선원들은 죽음의 공포를 이기려 침몰하는 갑판에 정렬해 노래를 불렀답니다.'

선원들이 노래를 부르며 승객들을 보낸다는 대목이 가슴을 때린다. 이 원칙은 1912년의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 '타이태닉'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대서양 횡단 여객선 타이태닉이 좌초하자 영국인 선장은 여성과 어린이부터 구명보트에 태우라고 지시한다. 건장한 남성은 후순위였다. 그래서 케이트 윈즐릿이 살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죽었다. 마지막까지 배를 지킨 선장은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며 선원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와 함께 선장과 선원은 전원 사망했다.

여성과 어린이를 우선시키는 것은 이들이 약자(弱者)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까지 세계 질서를 주도한 영국은 강자(强者)가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문명(文明)'이라고 보았다. 배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선박 사정을 잘 아는 선원이다. ①여성·노약자 ②남성 ③선원으로 정해진 탈출 순위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국제 공용의 여객선 대피 매뉴얼에도 '선원은 마지막까지 승객을 도우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세월호'에선 순서가 거꾸로였다. '문명'이 아니라 '야만'의 상황이었다.

이번 참사를 보면서 가장 분노가 치민 것은 승무원과 학생들의 생존율 차이였다. 승무원은 29명 중 69%(20명)의 생존이 확인됐다. 반면 수학여행 갔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생존율은 23%에 불과하다. 대부분 학생은 승무원들이 배를 떠난 줄도 모른 채 우왕좌왕하다가 참사를 맞았다.

관련자 증언을 종합해보면 475명 탑승자 중 선장이 '탈출 1호'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선장은 아침 9시쯤 조난 신호를 보낸 뒤 불과 30분 만에 배를 버렸다. 대부분 선원도 마찬가지였다. 탈출 대열의 마지막이어야 할 그들이 맨 선두에 선 것이다. 배가 완전 침몰된 것은 그들이 도망가고도 1시간50분이나 지나서였다. 승무원들에겐 두 시간 가까이 승객을 대피시킬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승객을 구하기는커녕 도리어 죽음의 길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자신들은 배를 떠나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며 움직이지 마라'는 안내 방송을 계속 시킨 것이다. 방송을 믿은 사람은 배 속에 갇혔고, 안 믿은 사람은 살았다. 안내 방송대로 객실에 머물렀던 단원고 2학년생들은 지금까지 250여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아마도 학생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른을 믿은 순진함이 아이들을 희생시켰다.

'세월호' 선장은 확실히 자질에 문제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475명을 태운 여객선의 선장으로 앉힌 것이 대한민국 시스템이다. 선장뿐 아니라 나머지 대부분 선원 역시 일찌감치 배를 버렸다.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수백 명 승객의 목숨을 맡기는 우리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겐 위기 때마다 종종 책임 있고 힘센 사람들이 먼저 도망치는 불명예스러운 기억이 있다. 6·25전쟁 때 권력층 자제는 피신 가고 서민층 청년들이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 고위 공직자 아들 중에 군대 면제 비율은 일반인 평균을 훨씬 웃돈다. 어느 힘 있는 지방 실력자는 하루 5억원짜리 황제 노역으로 감옥까지 탈출할 뻔했다. 100년 전 영국 선원보다 못한 우리가 문명국가임을 자부할 수 있을까.

'세월호' 승무원 29명 중 승객 탈출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은 말단 직원 박지영(22)씨였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국 시신으로 발견됐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주면서도 정작 본인 것은 챙기지도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를 여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가난한 집안의 휴학생이었다.

오래 배를 탄 선장과 항해사·기관사·조타수는 일찌감치 떠나고 갓 입사한 말단 신참이 끝까지 배를 지켰다. 위기의 책임자들은 도망가고,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이 줄줄이 희생됐다. 이래 놓고 우리는 과연 문명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 박정훈칼럼, 2014/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