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놋뱀이 필요한 사람

하마사 2014. 4. 12. 09:59

본문: 민 21:4-9

제목: 놋뱀이 필요한 사람

목표: 십자가의 은혜를 되새기고 소망가운데 살게 한다.

 

 

병원심방을 가면 대부분 가족이나 간병인이 있습니다. 혼자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나 간병인이 필요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환자에게는 가족이나 간병인이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또한 의사가 필요합니다. 의사 역시 환자가 필요합니다. 환자가 없다면 의사는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교사와 학생도 서로에게 필요합니다.

사람은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살아갑니다. 부부는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는 필요한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아빠 돈 조금만 보내주세요.” 아들에게 아빠는 돈을 받기 위해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도움으로 모든 필요가 충족될 수는 없습니다.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맹독성이 강한 불뱀들이 나타나 백성들을 물어서 죽게 하였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돈이 들거나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눈을 들어 장대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게 하셨습니다. 장대는 십자가이고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광야시절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놋뱀이 필요했듯이 오늘날도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놋뱀이 필요한 사람은

1. 마음이 상한 사람(4절)

4절,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세상에는 마음이 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쁜 일보다는 오히려 슬프고 화나는 일이 많습니다. 웃을 일보다는 염려하고 걱정할 일이 많습니다. 이웃사람이나 가족 때문에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물질 때문에 마음 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마음 상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 때문에 마음 상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왔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는데 현실에 주어지는 어려움이 지속될 때 침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마음 상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홍해를 건너 광야생활을 잘 견뎌왔습니다. 여러 족속들과 전쟁을 거치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가나안 사람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 중에 몇 사람을 사로잡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백성들은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 가나안 백성과 싸워 이기게 하시면 그 성읍을 멸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전쟁에서 승리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의 성읍을 멸하고 그곳 이름을 ‘완전히 멸함’이란 뜻을 가진 ‘호르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완전히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상했습니다. 홍해를 건너 곧장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수르광야가 나오고 마라가 나왔습니다.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전쟁을 하면 누군가는 죽어야 했습니다. 에돔 왕이 자기 영토를 통과하지 못하게 하여 돌아서 가야만 했습니다. 마음이 상했습니다. 참았던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고 왔는데 계속적인 장애물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인데도 형통하지 않고 막히고 돌아가는 일들이 생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구체적으로 인도하고 계심이 분명한데 왜 길을 가로막는 장벽들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기적을 통해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목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여정은 어떻습니까? 마음 상하는 일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늘 행복하고 평안하십니까?

기도하고 계획한 일들이 순적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기도하면 모두 원하는 대로 응답을 받습니까? 항상 건강하십니까? 물질을 넉넉히 누리며 사십니까? 자녀들이 순종하며 늘 기쁨이 되어줍니까? 인간관계는 원만하십니까? 행복하게 하는 사람만 있습니까?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하나님이 가까이하시는 시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몹시 상하여 낙망하고 힘들 때 하나님이 곁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평탄하고 좋은 길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거칠고 험한 길로 가게 하셨습니다. 빨리 가나안에 가고 싶은데 시간이 지체되자 마음이 상했습니다.

수 천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교회문제로 마음이 상하여 교회를 떠난 분들도 계십니다. 빨리 해결되리라 기대했는데 시간이 지체되자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해결 될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 어렵고 힘든 길로 간다며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가정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 남편과 아내 혹은 자녀들로 인해 마음이 상합니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도착해야 할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매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편하고 좋은 길을 벗어나 거칠고 험한 길로 접어 들 때도 있습니다. 자신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주의 종에게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상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 상할 때 불뱀과 같은 마귀가 침입하여 마음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믿음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영적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끌고 갑니다. 그대로 끌려가면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마음이 상하여 불뱀에 물린 사람은 바로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 수 있습니다. 상한 마음도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놋뱀이 무엇입니까?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상한 심령도 치유되고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나 일로 마음이 상했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침 뱉음을 당했습니다. 벌거벗김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겠습니까? 그런 상함을 당하셨기에 마음 상한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료해주실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이 있습니까? 놋뱀되신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상한 마음을 치유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놋뱀이 필요한 사람은

2. 모자람이 있는 사람(5절)

5절,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세상에서 완전한 만족을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순간적인 기쁨을 누릴 수는 있지만 항상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는 만족했습니다. 목마르다가 물을 마실 때는 만족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을 때는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배고프고 갈증이 나자 불평이 생겼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하고 모자라자 원망이 생겨났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찾아오고 삶에 결핍이 생길 때 감사가 사라지고 불만이 생깁니다. 불만이 쌓이자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모세를 향해 원망했습니다. 애굽에서 살게 하지 왜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며 원망했습니다. 광야에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고 하며 구체적으로 원망의 이유를 열거했습니다. 또 하찮은 음식을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하찮은 음식은 만나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40년간의 광야 생활 동안 하늘에서 매일 내려주시는 만나가 이제 싫증나고 싫어지게 되었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이 만나는 출애굽 초기,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꿀처럼 달았던 만나를 그들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만나가 싫어지고 질리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이 주신 만나에 대하여 불평하였고 나아가서 음식을 주신 하나님과 출애굽 자체마저 원망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교만한 행위였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먹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양식인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마음속에 불만이 생기면 이렇게 됩니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 만나를 주시고 한 달간 메추라기를 주실 때는 감사하다는 말이 없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으니 가나안땅까지 인도하는 것은 당연하였으며 먹고 마시고 입는 것까지도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을 주어도 감사가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 이런 생각을 하면 메마른 관계가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애굽을 생각하면서 현실과 비교하며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종으로 살았지만 물은 마음대로 마셨다고 하며 불평했습니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불평과 원망도 습관입니다. 습관적으로 불평거리를 찾아 불평합니다. 그 불평과 원망이 결국 다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홍해를 건너고 미리암과 모든 여인들이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면서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만족했습니다. 그런 기쁨과 감격도 삼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물이 없는 수르광야를 지나고 마라에 이르러 물을 마셨지만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게 되자 모세를 향해 일제히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처럼 광야는 우리를 불평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반대로 감사도 습관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거리가 됩니다. 하나님이 왜 죽이려고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셨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고 원망했다는 말은 많지만 감사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감사해야할 것을 감사하지 못하면 감사제목이 자꾸 말라갑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풍성해집니다. 샘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고이듯이 감사도 하면할수록 감사의 조건들이 고이게 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모자람이 있으면 있는 것도 안보이고 없는 것이 커 보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마저 하찮게 보입니다. 땅만 쳐다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볼 때 사는 길이 열렸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사는 길이 열리고 모자람이 채워집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왜 부족함이 없겠습니까?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늘 부족한 것뿐입니다. 꼭 필요한 것인데 없으면 그 모자람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한나는 아들이 꼭 필요했는데 없었습니다.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사무엘이라는 걸출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들린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모자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는 수치와 모욕의 말을 듣고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을 때 딸이 낳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도 모자람이 있습니다. 영적인 부족뿐만 아니라 건강의 부족, 물질의 부족, 평안의 부족, 관계의 부족, 성격의 부족 등 모자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다윗에게도 모자람이 있었습니다. 밧세바 사건을 보면 부부사랑의 모자람이 있었습니다. 압살롬의 관계에서 보면 자녀와의 관계에서 모자람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자리에 모자람이 있습니까?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면 모자람이 채워질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모자람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분입니다.

 

놋뱀이 필요한 사람은

3. 범죄한 사람(7절)

7절,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범죄 하였다’는 원어의 뜻은 ‘빗나가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 곧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잘못된 방향으로 빗나갔다는 의미입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시의 고난을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교만히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살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죄를 지어서 감옥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속으로 지은 죄를 죄로 인정한다면 모두가 감옥행 죄수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합니까? 저도 어떨 때는 목사 맞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목사답지 못한 생각과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벗어나 사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자유할 수 없습니다. 물질과 시간과 사명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들도 놋뱀을 쳐다보면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불뱀에게 물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도 놋뱀을 쳐다보면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마귀에게 발꿈치를 물려 영적으로 죽어갈 때에도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으면 어떤 범죄를 저질렀든지 용서받고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거듭나는 은혜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범하며 살아가는 모든 죄인에게 놋뱀 되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이 놋뱀을 쳐다보면 사는데, 왜 놋뱀을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사는데, 믿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놋뱀을 쳐다보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교만 때문입니다.(잠 16:18)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한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역대하 26장에 나오는 웃시야왕은 스가랴 선지자와 같은 좋은 영적 스승을 만나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다가 강성해지자 교만하여 불행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상 26:16) 강성하여지자 교만하여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직접 집례하려다가 문둥병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구할 때는 형통했지만 교만하자 자기 분수를 넘고 말았습니다. 웃시야의 몰락은 교만이 원인이었습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합니다. 쳐다보아야 할 십자가를 볼 수 없습니다. 회개의 사인이 주어져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회개할 줄 모릅니다.

 

2. 농담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창 19:14)

창 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잘 듣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귀가 있어도 생명의 소리, 유익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을 때 롯이 사위들에게 성을 빠져나갈 것을 말했지만 사위들은 농담으로 알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40일후에 하나님이 니느웨성을 멸하실 것을 예언하자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과 짐승까지 굵은 베를 입고 금식하며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위기의 순간이나 어려움이 닥칠 때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들을 것을 듣고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쉐마 말씀(신 6:4-9)도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9)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듣기위해 모인 무리들을 향해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들어도 왜곡해서 듣거나 농담으로 가볍게 듣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면 불뱀에 물렸어도 놋뱀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쳐다본다고 살겠느냐고 의심하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거나 농담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3. 무지 때문입니다.(롬 10:14~15)

롬 10:14~15,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이 놋뱀을 쳐다보면 살 수 있다고 모세가 각 지파의 리더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백성에게 전달할 때 그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몰랐기 때문에 불뱀에 물리고도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소통의 문제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는 사람들은 중요한 메시지를 듣지 못했습니다. 생명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면 죽을 자리에서 살 수 없습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살 수 있었는데, 몰라서 놋뱀을 쳐다보지 않고 죽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바울사도는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전했던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오늘도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복음을 듣고도 교만하여 혹은 농담으로 생각하여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지 못하여 신음하며 죽어간다면 누구의 책임입니까? 복음을 먼저 듣고 믿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생각하며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마음이 상하고 모자람 때문에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불뱀들을 보내 범죄한 백성들을 물어 죽게 하셨지만 회개하고 장대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면 살게도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인도하고 지체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만나와 같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지만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하기보다 모자람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범죄의 자리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땅히 불뱀에 물리고 마귀의 불화살에 맞아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은 장대 위 놋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살게 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이 상한 사람, 모자람이 있는 사람, 범죄한 사람이 있습니까? 불뱀에 물려 고통가운데 있는 분이 계십니까? 놋뱀 되신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상한 마음도 치유 받고, 삶의 모자람도 채우고, 죄 용서받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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