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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대통령 글쓰기 수준에 눈앞이 캄캄했다”

하마사 2014. 3. 18. 15:14

“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 한 내가 눈이 좀 높거든.”

2003년 3월, 강원국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만난 노무현 대통령의 첫마디다. 이후 두 시간 동안 노 대통령의 ‘글쓰기 특강’은 이어진다.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최대 적이네.”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강 전 비서관은 이날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글쓰기에 대한 수준이 높은 분을 어떻게 모시나’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회고한다. ‘글쓰기 특강’은 임기 5년 내내 이어졌다. 연설비서관실에서 대통령 앞으로 올려 보낸 연설문이 한 번에 통과된 적은 없었다. 노 대통령은 매번 코멘트를 덧붙여 글을 돌려보냈다. 강 비서관에게 노 대통령은 까다롭고 엄한 ‘글쓰기 선생’이었던 셈이다. 강 전 비서관은 이때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운 ‘글쓰기 비법’을 책으로 담아냈다. 지난 2월 출간한 <대통령의 글쓰기>가 그 결과물이다.

-경향신문, 2014/3/15

참여정부 5년 내내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다. 대통령 연설비서관은 어떤 자리인가.“빛은 안 나는 자리다. 사람을 만날 이유도 없고, 골방에 혼자 앉아서 계속 연설문을 쓰고 고치는 일이라 사실 청와대에 있다는 의미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대통령과 대화하는 시간은 많으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대통령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다. 대통령은 말과 글로 통치행위를 해야 하는데, 하루에 두세 개 연설문의 초안을 직접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보람은 큰 자리다.”

대통령 연설문을 쓰려면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생각에 대해 철저히 알고 있어야 할 텐데.

“대통령 생각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어투, 자주 쓰는 표현, 단어, 이런 것들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책상에 항상 붙여놓고 같은 의미이면 대통령이 자주 쓰는 단어로 썼다. 거기에 더해 평소 말하는 억양에 맞출 수 있게 연설문을 작성했다. 연설비서관실에서 연설문을 쓰면 항상 부산 출신 행정관이 소리내서 읽었다. 대통령 흉내를 내며 읽었는데, 듣다가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고치곤 했다. 그래야 대통령이 읽을 때 입에 딱 붙는 연설이 되는 거니까. 이를 매일 하다 보니까 일상생활에서도 대통령 말투로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글에 대한 기준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책을 쓰기 훨씬 전의 일인데 <헌법의 풍경>을 쓴 김두식 교수와 글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김두식 교수가 글을 잘 쓰니까 청와대에 있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들었던 연설문 지시사항이나 코멘트들을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김 교수가 거기에 글쓰기의 정수가 다 담겨 있다고 하더라. 노무현 대통령은 글쓰기나 말하기로 평생을 고민해온 사람이다. 정치인 치고 노무현 대통령만큼 글쓰기를 고민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과 글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말 때문에 가장 공격을 받은 대통령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한편으로 억울해 하신 부분도 있다. 백 가지 말이 있는데 그 중 한두 가지 쓰레기 같은 말만 담아내는 언론은 쓰레기통이 아니냐고도 했고, (국민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우체부가 배달을 잘 안 해준다고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말에 관해서는 대통령 연습을 하지 못했다’며 반성한 부분도 있다. 본인이 살아온 과정이 우아하게 말하고 일하는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대학을 안 나오고, 살아온 환경이 주류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류 언어를 익숙하게 쓰는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이었다. 그 말이 더 마음이 아프더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각인해서 전달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의 말인데, 대통령의 말이 어디 따로 있는 것처럼 프레임을 짜놓고 거기에 안 들어온다고 공격을 하니까. 그래서 대통령이 주류언어 속으로 들어가보려고 노력도 했다.”

어떻게 노력을 했나.

“청와대에서는 일종의 글 검토회의라고 할 수 있는 ‘독회’를 한다. 노 대통령은 독회할 때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는 단어를 말하다가도 ‘이런 말을 대통령이 쓰면 안 되지. 이 말은 빼고’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예를 들어 연설문 중 ‘나는 지금 양극화와 씨름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씨름하고 있다’는 말이 좀 격조가 없지 않느냐, 다른 말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을 가지고 고민을 했다. 노력은 계속 하셨지만, 불쑥불쑥 본인의 스타일이 나온다고, 이건 어쩔 수 없다고 하시더라.”

노무현 대통령은 마지막 남긴 유서에서도 말과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유서에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쓰여 있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이 그 생각이 든 순간에 돌아가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만 됐어도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 유서도 머릿속에서 계속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셨을 것이다. 노 대통령의 글 쓰는 스타일을 보면 연설하기 직전까지 고친다. 연설 당일 아침에도 고치고. 그러나 유서는 어디다 써놓고 고치지를 못하니 아마 머릿속으로 썼다 지웠다 하셨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다른 대통령들의 연설문은 어떻게 보나.

“권위주의 정권은 말·글보다는 행동·결과로 보여준다.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에서는 지도자가 말이 많으면 안 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국민들이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이 사람 믿어주세요’ 하면서 말이 좀 많아졌다. 그래도 김영삼 대통령 때까지도 권위주의적 면모가 강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청년 시절에는 굉장히 연설을 잘했는데, 대통령 때는 연설문이 오히려 건조한 편이었다. 그래도 정치감각은 대단했던 게 연설문을 올려 보내면 딱 한 줄을 덧붙였다고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다음날 그 부분이 신문 제목으로 뽑혀 나왔다더라. 기자들에게 이 부분이 대통령이 쓴 부분이라고 알려준 적도 없는데.”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대통령의 연설문에서도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국민과 소통하려는 대통령은 국민과 과정을 공유하려는 자세가 연설문에 스며 있다. 결과뿐만 아니라 결과가 나온 과정을 설명하는 식이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은 결과를 설명해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알게 모르게 ‘내가 가는 길이 맞고 따라오기만 하면 잘 살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려는 태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방식이 효율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결과를 설명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국민들은 불통의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정확히 말로는 그 느낌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절대로 그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경향신문, 201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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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2003년 3월 중순, 대통령이 4월에 있을 국회 연설문을 준비할 사람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늘 ‘직접 쓸 사람’을 보자고 했다. 윤태영 연설비서관과 함께 관저로 올라갔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통령과 독대하다시피 하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다니.
이전 대통령은 비서실장 혹은 공보수석과 얘기하고, 그 지시내용을 비서실장이 수석에게, 수석은 비서관에게, 비서관은 행정관에게 줄줄이 내려 보내면, 그 내용을 들은 행정관이 연설문 초안을 작성했다.
그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를 원했다.

“앞으로 자네와 연설문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거지? 당신 고생 좀 하겠네. 연설문에 관한한 내가 좀 눈이 높거든.”

식사까지 하면서 2시간 가까이 ‘연설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이어졌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열심히 받아쓰기를 했다.
이후에도 연설문 관련 회의 도중에 간간이 글쓰기에 관한 지침을 줬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그런 표현방식은 차차 알게 될 걸세.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추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추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을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뒤는 잘 안 보네. 문단의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그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백화점식 나열보다는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줄일 것은 과감히 줄여서 입체적으로 구성했으면 좋겠네.
29.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이 쓰는 것이 좋네. 영토 보다는 땅, 치하 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30.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좋은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네.
31.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2.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3.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대통령은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이 얘기 속에 글쓰기의 모든 답이 들어있다.
지금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언젠가는 음식에 비유해서 글쓰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 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에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놓으면 정작 메인 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6. 메인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아구찜이면 아구찜. 한정식 같이 이것저것 다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잖아.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 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줄 알고 갔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이 글마다 다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지. 글도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보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이날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분을 어떻게 모시나.
실제로 대통령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글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또한 스스로 그런 글을 써서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대통령은 깐깐한 선생님처럼 임기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설비서실에서 쓴 초안에 대해 단번에 오케이 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