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총리 정부가 28일 중·고교 교과서 '학습 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을 명기(明記)했다. 이 '해설서'는 교과서 집필의 기준이자 교사들 수업의 지침 역할도 한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강제 편입한 것은 을사조약 직전이었다. 이제 일본의 모든 학생은 일제(日帝)가 강탈한 한국 영토를 '일본 영토'라고 배우게 됐다.
일본 정부는 아베 1차 내각 때부터 초·중·고 교과서의 독도 기술(記述) 수위를 무슨 작전을 벌이듯 높여 왔다. 2008년 7월 중학 교과서 해설서에 '일본과 한국 간에 독도를 둘러싸고 주장 차이가 있다'고 초보적 기술을 한 다음 2010년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자국 영토라고 처음으로 썼다. 교과서만이 아니다. 일본 '방위백서'는 2005년부터 9년 연속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기술하고 있다. 일본 외상은 최근 3년 동안 우리의 시정연설에 해당하는 '국회 외교 연설'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발언했다. 자민당 정권만도 아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내각으로 이어진 민주당 정권에서도 똑같은 행태가 되풀이됐다.
우리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자라는 세대에게 거짓 주장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즉각 철회하지 않을 경우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히 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작심하고 도발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행동을 당장 바꿀 만한 현실적 수단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차분하게 독도에 대한 실효적(實效的) 지배 조치를 강화해 나가면서 일본 스스로 독도에 대한 주장이 무의미하고 허망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장기적인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 자신의 문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27일 서울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한국 학계가 일제 침략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의 직무 유기"라고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아베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앞서 작년 8월 13일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란 인물의 묘를 참배했다. 요시다는 일본이 한국을 정복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의 원조다. 우리 학계나 언론은 아베의 요시다 참배에 주목하지 않았다. 솔직히 잘 알지도 못했다. 이 교수는 "아베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요시다를 꼽았다"며 "침략주의를 만든 요시다에 대해 한국 학계의 연구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일본이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자책했다.
독일 의회는 27일 아우슈비츠 해방 60년 행사를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열었다. 독일이 일본과는 전혀 달리 참회의 길을 걷는 것은 나치 피해자들이 끈질기고도 철저하게 나치의 범죄를 추적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대인 단체 '사이먼 비젠탈 센터' 한 곳이 지난 수십년간 법정에 세운 나치 전범만 1100명이 넘는다. 이 단체는 불과 1년여 전에도 전범 한 명을 세계에 현상 수배해 붙잡았다.
피해자가 나태하면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를 잊는다. 일제 최대 피해국인 우리 얘기다. 우리가 추적해 밝혀낸 일제 만행과 그 책임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지 자문(自問)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판 '사이먼 비젠탈 센터'가 한 곳만 있었어도 일본이 지금 이러지는 못할 것이다.
정부와 동북아역사재단은 28일 '일본 제국주의 침탈 만행사'에 대한 국제 공동 연구와 발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중국, 동남아에서 네덜란드·영국·미국까지 연대 범위를 넓혀나가야 한다. 50년, 100년의 목표를 세우고 일제의 근원(根源)과 그 후계를 끈질기게 추적해 샅샅이 밝혀야 한다. 그것은 압제를 거부하고 자유를 희구해온 인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한·일도 독일·이스라엘처럼 건강하고 정상적인 관계, 미래를 얘기할 수 있는 관계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201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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