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루디아처럼

하마사 2014. 3. 9. 19:30

본문: 행 16:11-15

제목: 루디아처럼

찬송: 447장

목표: 루디아처럼 영향력 있는 여전도회원이 되게 한다.

 

본문은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중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려 했지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진로를 바꾸어 마게도냐의 도시였던 빌립보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루디아를 만나 빌립보교회가 세워진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디아는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으며 빌립보교회를 개척하는데 큰 공헌을 했던 여인이었습니다. 루디아는 루디아지역 출신의 사람이었고 두아디라시 출신의 자주 색 옷감 장사였습니다. 유대교에서 개종하여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개종한 이후에 자기 집을 기도처로 제공하여 빌립보교회의 시초가 되게 했습니다. 가족들까지 개종하여 세례를 받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1. 소통의 여인(13)

13절,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바울은 안식일에 주로 회당을 찾아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빌립보 지방에는 회당이 없었으므로 기도처를 찾았습니다. 기도처는 회당이 없는 경우에 야외나 강가 또는 바닷가 근처에 기도장소를 마련하게 되어 있는 관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 남자가 적어도 10명은 있어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성에는 유대인 남자가 거의 없었으며 유대 여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여인들이 안식일에 정기적인 기도회 모임을 가졌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안식일에 기도장소를 찾다가 강가에 모여 있는 여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모인 여인들 앞에 앉아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산에 앉아서 복음을 전하시던 예수님처럼 여인들 앞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말씀을 가르쳤으며 그 중에 루디아가 특별히 말씀을 경청하였고 회심하여 빌립보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유오디아, 순두게, 글레멘드 등 바울과 함께 복음에 힘쓰던 여인들이 특히 많았습니다. 이것은 마게도냐 지방이 모계중심 사회였다는 특징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소통의 여인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소통하는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강가에 모였던 여인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조용한 장소를 찾아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에 힘쓰는 경건한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녀는 두아디라 성에 살 때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아디라성에는 유대인 정착지가 있었는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유대교에서 개종하여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은 말씀을 들을 때 가능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마음이 열렸습니다. 함께 있던 여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루디아는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말씀과 가까이할 때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기도할 때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기도처에 모여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 바울 일행을 만나게 되었고 복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전도회원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힘이 들고 불평과 원망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봉사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녀는 주의 종 바울과 소통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경청하며 은혜를 받고 회심했습니다. 바울과의 소통이 있었기에 바울의 말을 경청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과의 첫인상이 안 좋았다면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주의 종 바울과의 소통이 되자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또한 후에는 바울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자기 집에 머물도록 강요하였겠습니까? 이것을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과 루디아가 결혼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타당성이 없습니다. 이렇듯 루디아는 주의 종과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더불어 주의 종과의 관계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소통을 잘하여도 주의 종과 소통이 안 되면 교회와 멀어지고 신앙생활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우선은 주의 종이 잘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도도 주의 종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은혜가 됩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려면 선생님과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싫으면 그 과목이 싫어집니다. 사람이 싫으면 그 사람과 연관된 사람이나 물건도 싫어집니다. 복음이 좋지만 그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이 싫으면 교회가 싫어집니다. 왜 인기인을 광고모델로 쓰겠습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광고하는 물건도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루디아처럼 여전도회원은 주의 종과의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유머)그렇다고 루디아처럼 자기 집에 머물라고 말씀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루디아는 이웃과의 관계도 잘했습니다. 루디아는 로마 시민의 겉옷이나 왕족의 겉옷으로 주로 사용되던 자주색 옷감 장사를 했습니다. 원래 자주색 염료로 유명했던 두아디라성에 있었으나 더 큰 성이었던 빌립보에 살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색 옷감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이웃과의 소통을 잘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과의 소통도 잘했지만 믿음의 사람과의 소통도 잘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기도하러 강가에 나갔을 때 거기에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여전도회원들과의 관계가 좋았다는 뜻입니다. 여전도회 활동할 때 회원들과의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바자회 할 때나 어떤 행사가 있을 때 서로 협력하며 봉사를 해야 합니다. 독불장군처럼 자기고집대로 하면 회원과의 소통이 깨어집니다. 기도하고 봉사할 때 함께 모여야 합니다. 회원과의 소통이 여전도회 분위기를 은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루디아는 가족과의 소통도 잘했습니다. 가족들을 권면하여 세례를 받게 할 정도로 가족들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족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는 여인이었다는 뜻입니다. 평소에 가족과의 소통을 잘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여전도회원은 가족에게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남편과 시댁식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야 합니다. 루디아는 믿지 않는 가족들을 변화시켜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과 원수처럼 지내면 그들에게 예수님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가족과 불신자들과의 소통도 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화)

2013년 6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칼즈배드 시(市) 엘카미노 크리크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들이 모두 머리를 삭발한 채 등교했습니다. 이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뇌종양을 앓아온 트래비스 셀린카(10세)가 항암치료를 마치고 처음 등교하는 날이었습니다. 트레비스는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등교를 꺼렸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남학생들이 전날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트래비스는 우리의 친구다. 그는 암과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 우리가 힘이 되어 주자. 응원부대가 되어 주자. 친구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우리도 머리를 깎고 등교하자.”

친구들은 모두 찬성이었습니다. 이튿날 등교한 트래비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급우들이 모두 자신처럼 빡빡머리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우정에 감동한 트래비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너희들은 나의 진정한 친구야. 고맙다.” 빡빡머리 친구들이 그에게 축하의 박수를 쳐주었고, 트래비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습니다.

미국 신문은 이 상황을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트래비스는 최고의 행운아다. 그는 비록 머리카락을 잃었지만 인생 최고의 보물인 ‘친구’를 얻었다.”

 

루디아는 소통의 여인이었습니다. 루디아처럼 여전도회원은 먼저 하나님과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기도로 소통하고 말씀으로 소통하고 예배로 소통해야 합니다. 주의 종과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주의 종과 소통이 안 되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회와 멀어집니다. 허물은 덮어주고 장점을 보면서 주의 종과 소통해야 합니다. 이웃과 성도와의 소통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 바라보고 신앙 생활하지만 보이는 사람으로 인해 마음 상하고 상처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분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사, 안수집사라고 서리집사 혹은 성도를 무시하는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가족과의 소통도 잘해야 합니다. 가족과의 소통이 깨어지면 신앙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루디아처럼 여전도회원은 소통의 여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루디아는

2. 성령의 여인(14하)

14절 하반절,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하나님을 추구함’이란 책으로 유명한 에이든 토저 박사는 “만약 신약교회에서 성령을 제외시킨다면 그들이 한 일의 95%가 중단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루디아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도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려면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들은 말씀을 깨닫고 수용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듣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거부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눅 24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열 한 제자에게 말씀을 전할 때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성경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령님이 눈과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셔야만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고전 12:3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도록 역사하는 영입니다. 루디아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도 성령이 마음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믿음이 생길 수 없었습니다. 믿고 싶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은혜입니다. 성령이 마음을 열어 믿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힘으로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마음에 감동을 주셔야 합니다.

눅 2장에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던 시므온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성경은 그를 소개하면서 ‘성령의 지시’와 ‘성령의 감동’을 받는 사람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성령의 지시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불러 쓰실 때도 성령을 충만하게 하여 성막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출 35:31)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충만하게 하여 성막에서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 실로 수놓는 일과 짜는 일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도 마음을 여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루디아는 기도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강가에 나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 안식일에도 기도하러 갔다가 바울을 만났습니다. 물론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바울과 만나게 하신 분이 성령님이었습니다. 바울의 발걸음을 강가로 이끄셨습니다.

성령은 기도할 때 임합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루디아는 말씀을 경청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경청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시간과 장소에 여러 여인들이 말씀을 들었지만 은혜 받은 사람은 루디아였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던지 자기 뿐 아니라 온 식구들이 다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행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루디아는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마음을 열어주셨고 말씀에 순종하는 성령의 여인이었습니다. 바울의 말을 따랐다는 의미는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온 식구들과 더불어 세례를 받았고 강권하여 자기 집에 바울 일행을 머물게 했습니다. 이 모두가 성령의 감동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힘과 의지로 복음 전하고 봉사할 때 힘들고 지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과 도우심으로 하면 즐겁게 일 할 수 있습니다.

루디아처럼 여전도회원은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는 성령의 여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섬김의 여인(15하)

15절 하반절,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는 자신과 자신의 집이 다 세례 받은 후 바울 일행을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이는 유럽지역에 처음으로 교회가 생겨난 계기가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복음 앞에 마음 문을 열어 자신이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그 집안을 다 구원받게 하였으며 더 나아가 자기 집이 복음 전파의 거점이 되는 큰 축복을 누렸습니다.

성령의 지시에 의해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바울에게 거처할 곳이 없었습니다.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선교하는 자비량선교사였습니다. 재정적인 후원자도 없었습니다.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많은 물질이 필요했습니다. 루디아는 이런 사정을 알고 강권하여 자기 집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도록 장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바울 일행에게는 아주 귀중하고 필요한 섬김이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사도도 거처를 놓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루디아의 마음을 감동시켜 강권하도록 하셨습니다. 회심과 동시에 자기의 것을 나누고 섬기는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바울은 낯선 곳 빌립보에서 루디아 집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선교를 할 수 있었고 루디아 집을 토대로 빌립보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한 여인의 사랑과 섬김이 빌립보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세계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하는 놀라운 일로 발전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후에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선교비를 보내주었고 에바브라디도를 보내 바울을 돕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감사하며 축복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빌립보교회의 이런 섬김의 전통은 루디아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여인의 섬김과 헌신이 빌립보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었고 마게도냐지역 과 세계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루디아 외에 섬김으로 큰 복을 받은 여인이 있습니다. 욥바에 살고 있던 다비다입니다. 그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녀가 병들어 죽었을 때 시체를 다락에 두었습니다. 마침 그 때 욥바에 있던 베드로를 간청하여 불렀습니다. 베드로가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울면서 다비다가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베드로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가 시체를 향해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하자 살아났습니다. 평소에 베풀었던 선행과 구제가 다비다를 살렸습니다.

잠 3: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교에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직접 말하지 못했던 바울을 위해 강권하여 자기 집에 머물게 했던 루디아처럼 미루지 말고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에는 루디아처럼 예수님과 주의 종을 섬겼던 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인 요안나, 수산나, 그밖에 여러 여인들이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뵈뵈는 바울이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로 소개하였습니다. 바울을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크게 섬기고 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겐그레아교회의 재정적인 후원자였으며, 바울 일행의 신변안전을 책임져주는 일까지 담당했습니다. 이런 여인들의 섬김으로 복음이 확장되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게 되었습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 31:30)는 말씀과 같이 루디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소통의 여인, 성령의 여인, 섬김의 여인으로 칭찬받는 여전도회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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