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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 장애와 꼼꼼함

하마사 2014. 3. 4. 11:48

병원에 오는 환자 차림새와 행동을 보면 어떤 질병을 앓는지 대번 짐작 가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강박 장애다.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양손에 흰 장갑을 낀다. 주머니마다 휴지가 가득하다. 티슈 통에 걸이를 달아 목에 차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문고리를 절대 맨손으로 만지는 법이 없다. 자기 살에 어쩌다 남의 물건이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전형적인 세균 오염 강박증이다.

▶'위생 강박'은 인간 진화 과정이 엇나간 결과다. 세균에 무차별 감염되던 원시시대에 유난히 몸을 열심히 씻던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 유전적 특성이 지나치게 커진 후손이 강박증 환자라는 얘기다. 외출하다가도 가스불이 꺼졌는지 거듭 되돌아와 보고, 현관문이 잠겼는지 끝없이 챙기는 것도 강박증이다. 당연한 일상 점검이 도를 넘은 경우다.

만물상 일러스트

▶꼼꼼함과 강박증은 무엇이 다를까. 강박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 견딜 수 없고 그 때문에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장애에 해당한다. 어떤 학생이 공부하기 전에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집중이 잘된다고 하면 그건 꼼꼼함이다. 그렇다고 당장 할 숙제는 안 하고 정돈하느라 날 새우면 강박증이다. 인구의 2~3%가 크고 작은 강박증을 앓는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모든 물건이 짝수로 있어야 하고 모든 옷은 일렬로 줄 맞춰 있어야 하는 '정렬 강박증'을 앓았다. 팝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은 온갖 잡동사니와 철 지난 전기요금 고지서까지 보관하는 '저장 강박증'이 있었다. 성형수술 받는 사람 중엔 외모의 사소한 흠도 매우 추하다고 여기는 '신체변형 강박증' 환자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강박 장애 진료 인원을 분석해보니 5년 새 13%가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치료받은 2만4000여명 중에 절반이 20~30대 젊은이였다. 강박 장애는 전두엽에서 중심부 기저핵으로 이어지는 뇌 회로 이상으로 생긴다. 청소년기에 증세가 시작해 20대에 뚜렷해진다. 외부 스트레스가 강박을 부르고 키우는 증폭제 구실을 한다. 학업 스트레스와 취업 불안이 젊은이들 뇌에 상처를 낸 꼴이다.

▶강박 장애 환자라고 지적(知的) 능력이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일도 잘하고 공부도 제법 한다. 강박에 쫓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끝없는 불안 탓에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한다. 다행히 약물과 행동 교정 치료를 적절히 받으면 절반 넘는 환자가 별 무리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얼마나 힘들까' 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치유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