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는 팔순 넘어 집에 스위스 목동이 부는 뿔피리를 갖다 뒀다. 10여 년 전 미당을 찾아가자 이층으로 안내했다.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미당이 "마실 거 드릴까" 묻더니 뿔피리를 집어들었다. 그가 "뿌웅~" 하고 힘껏 불자 아래층에서 방옥숙 여사가 올라왔다. "영감, 뭐 필요한 거 있수?" 미당은 씩 웃으며 "아내가 요즘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래도 시인 부부는 대화가 잘 통했다. 미당은 "아내에게 '양귀비 얼굴보다 곱네'라고 하면 대여섯 살 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고 했다.
▶신달자 시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0년 넘게 돌보다 10여 년 전 떠나보냈다. 시인은 "남편이 달콤한 말은 안 해줬지만 나름 사랑을 표현했는데 그땐 그게 보이지 않더라"고 되돌아봤다. 그는 종종 결혼 생활 특강에 나선다. "부부끼리는 '말 안 해도 안다'는 말은 틀렸다. 한 달에 한 번 부부끼리 감정을 풀 수 있는 날을 정해 대화하라"고 권한다.
▶우리는 OECD 회원국 중에 이혼율 1위다. 이혼 부부 다섯 쌍 중 한 쌍이 대화 단절을 파경 이유로 꼽는다. 2년 전 노부부가 사이가 틀어져 7년 동안 메모지로만 대화를 나누다 황혼 이혼을 했다. 부부 사이에 말이 끊기면 정(情)도 날아가기 마련이다. 부부 상담 전문가들은 "상대방 자존심을 깎는 표현을 하지 말라"고 한다. "당신은 항상…"이라는 말투도 피해야 한다. 굳이 따져야겠다면 '항상' 대신 '가끔'을 쓰는 게 낫다.
▶어떤 남편은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하루에 대화를 30분 넘게 하는 부부도 있나.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지?" 그런 남편이라면 부부 대화의 '1·2·3 법칙'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분 말하고 2분 듣고 3분 맞장구치라"는 얘기다. 때론 못마땅해도 "좋다" "잘했다"고 추임새를 넣기도 해야 한다. 그런 걸 '착한 거짓말'이라고 한다. 가족이라는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게 하는 언어의 윤활유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