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정

老부부

하마사 2013. 10. 5. 11:32

 

일흔세 살 남편은 25년 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치매에 걸렸다. 부모 자식도 기억 못 하지만 딱 한 사람 아내만은 알아본다. 불편한 대로 걷고 밥 먹고 책 본다. 일흔두 살 아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간병 일지를 쓰며 지성으로 수발한 덕분이다. 남편은 아내가 장 보러 간 사이 마루 걸레질하고 세탁기 돌린다. 아내 고생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다. 부부는 늘 손을 꼭 붙잡고 다닌다.

▶부부가 추억 어린 계곡에 갔다. 처녀 총각 때 남편이 나오라고 했던 곳이지만 아내는 바람을 맞혔다. 남편이 "여기 온 생각이 난다"더니 노래를 불렀다. "내 사랑 양춘선은 마음씨 고운 여자/ 그리고 언제나 나만을 사랑해…." 남편이 결혼식 때 불러줬던 노래다. 의사는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도 "병이 나아진 건 아니다"고 했다. 아내는 말했다. "남편의 기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용기가 있습니다." 지난주 TV조선 다큐 프로그램 '코리아 헌터'에서 본 서귀포 노(老)부부 이야기다.


	만물상 일러스트

▶"부부 사랑은 주름살 속에 산다"는 말이 있다. 좋든 싫든 기대고 부대끼며 서로 닮아 간다. 아흔을 바라보는 시인 김종길은 늙은 부부를 한 쌍 낡은 그릇에 비유했다. "오십 년 넘도록 하루같이 붙어 다니느라 때 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들 명이 짧아 해로(偕老)하기가 쉽지 않았다. 2000년만 해도 예순다섯 넘는 고령자 성비(性比)는 여자 100명당 남자가 62밖에 안 됐다.

▶통계청이 그제 '고령자 통계'에서 노인 성비가 올해 70.7까지 올라갔다고 밝혔다. 부부 함께 사는 노인 비율도 2000년 52%에서 2010년 57.7%로 높아졌다. 남자 수명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2030년이면 노인 성비가 81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늙도록 오래 사는 부부가 그만큼 많아지는 셈이다.

▶일본 어느 조사에서 아내 없는 노인 사망률이 아내 있는 경우보다 80%나 높았다. 반면 남편 있는 노인 사망률은 없는 경우보다 55% 높았다. 여자는 남편 수발하느라 제명에 못 죽고 남자는 아내 수발 없으면 오래 못 산다는 얘기다. 그러나 통계청 조사를 보면 부부 노인의 만족도가 독신 노인보다 두 배 높았다. 노후 준비, 건강관리, 문화생활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안정되고 규칙적으로 사는 덕분이다. 속담에 "효자도 악처만 못하다"고 했다. "곯아도 젓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는 속담도 있다. 늙은 남편 너무 타박할 일 아니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10/2

'가정 > 가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부 대화  (0) 2013.12.26
고독死  (0) 2013.10.05
바다와 초록물고기  (0) 2013.09.12
어느 둘째 며느리의 생활수기  (0) 2013.09.12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용서해  (0) 201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