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약 3:1-12
제목: 온전한 사람의 척도
찬송: 495장
목표: 말에 실수가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입니다. 둘째는 시위를 떠난 화살입니다. 셋째는 흘러가는 세월입니다.
음치 가운데는 누군가가 '음치'라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 때문에 평생 남들 앞에서 노래를 못하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말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입증하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총칼에 눌려 실의와 절망에 처한 인도인들에게 용기를 준 것은 간디의 한 마디 말이었습니다. 어느 날 간디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한 할머니가 길에 엎드려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간디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요. 그러나 나에게는 손이 모자라는군요.”
이 말 한 마디가 인도인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습니다. 인도인들은 간디의 ‘사랑의 말’에 힘을 얻어 독립을 외쳤습니다. 말의 위력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위로와 격려의 말은 ‘명약’이 되지만 부정적인 저주의 말은 ‘독약’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사람을 구분하는 척도가 그 사람이 하는 ‘말’이라는 말씀입니다.
1. 말은 불입니다.(6)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불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면서부터 삶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불은 잘만 사용하면 큰 유익을 줍니다. 불은 음식 만들 때나 겨울에 난방을 위해 필요합니다. 자동차와 같은 이동수단의 동력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위험하기도 합니다. 잘못 사용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담뱃불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작은 불씨가 집을 태우고 산을 태울 수 있습니다. 재산과 인명상의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예화)11일 밤 9시 35분쯤 부산 북구 화명동의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어머니 홍모씨와 홍씨의 자녀 3명이 불에 타 일가족 4명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어머니 홍씨는 자녀 두 명을 꼭 감싼 채 아파트 베란다에서 숨진 것으로 발견됐으며, 나머지 한 아이는 작은방에서 발견됐습니다.
입으로 하는 말이 바로 이런 불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언어를 사용합니다. 말을 통해 다른 사람과 의사를 소통하고 놀라운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바 있는 구소련의 반체제작가 솔제니친이 “참된 말 한마디가 세상보다 더 무겁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표현입니다.
불과 말의 공통점은 번진다는 것입니다. 작은 불이라도 번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산불이 나면 며칠씩 탑니다. 모든 것을 검은 잿더미로 만들어버립니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모두 태워버립니다. 사람도 태워버립니다. 무섭습니다. 말도 같습니다. 소문이 무섭습니다. 무심코 한 말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번져서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고 영혼까지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말이 화마가 되어 다른 사람을 덮치고 자신까지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불조심 이상으로 말조심해야 합니다. 말의 중요성을 알았던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 파수꾼이 성문을 지키듯이 입술의 문을 지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못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흘려버릴 말이 있고 듣고 간직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불평하며 투덜대는 소리, 원망과 한숨소리, 험담하는 소리 등은 흘려버려야 합니다. 험담은 자기 입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향해 비수처럼 날아가지만 그 칼끝은 돌고 돌아 반드시 자기에게로 되돌아옵니다. 더 조심할 것은 남이 한 험담을 옮기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소리는 사람을 낙담하게 하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삶의 에너지를 빼앗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았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왔습니다. 백성들은 일제히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때 모세는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말했습니다. 장애물 앞에서 원망과 불평의 소리를 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입니다.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온 10명의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고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향한 원망을 넘어 그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고 부정적인 정탐꾼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말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처음으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전염된 사람들이 함께 원망하고 불평하는 무리들로 변했습니다.
은혜로운 말을 하려면 먼저 은혜로운 말을 들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 험담하는 말 대신에 격려하고 세워주는 긍정적인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은혜로운 말을 들을 때 은혜로운 생각을 하고 은혜로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말은 불과 같이 잘 다스리면 유익을 주지만 잘못 하면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파멸시키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잠언 21:23절은 말씀합니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입과 혀를 지키는 사람이 영혼까지 환난에서 보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입과 혀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과 혀가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롬 10:10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을 시인하게 하는 것이 입이기 때문에 입은 구원에 이르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불과 같이 번지는 것이 말이라면 좋은 말을 번지게 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전염시켜야 합니다. 생명의 복음을 번지게 해야 합니다. 작은 불이 온 산을 태우듯이 입술로 증거 되는 복음이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작은 입술을 열어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 말은 샘입니다.(11)
11절,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샘은 물을 제공해줍니다. 물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의 70%가 수분입니다.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말도 이처럼 사람의 생명을 좌우합니다. 한 치의 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샘과 같습니다.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동시에 낼 수 없습니다. 단 물은 선하고 아름다운 말을, 쓴 물은 악하고 더러운 말을 가리킵니다. 샘이 한 구멍을 통해 단 물과 쓴 물을 함께 낼 수 없듯이 사람 또한 한 입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말과 악하고 더러운 말을 함께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입으로 선한 말과 악한 말을 동시에 합니다. 성도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가 하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고 다른 사람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왕하 2장에는 엘리사가 여리고성읍의 물을 고치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이 나빠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졌습니다.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가서 소금을 던지며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자 물이 고쳐졌습니다. 이처럼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게 만드는 나쁜 샘도 있습니다. 나쁜 물을 내는 샘처럼 사람을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삶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망가뜨리는 말이 있습니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용기와 의지를 꺾어버리는 말이 있습니다. 나쁜 샘과 같은 말입니다.
출 15장에는 쓴 물도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걸었지만 물을 얻지 못하다가 물을 만났는데 마라의 쓴물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먹지 못하는 물로 인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마라의 쓴물처럼 먹지 못하는 물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마라의 쓴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생수라 전해주는 물이 오히려 아픔과 절망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지게 만드는 나쁜 샘도 있고 먹지 못하는 쓴물을 내는 샘도 있습니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도 사람의 마음을 상하거나 아프게 만드는 무익하고 나쁜 말이 있습니다.
이런 샘은 고쳐야 합니다. 마라의 물에 모세가 한 나무를 던져서 단물로 고쳤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입술과 혀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야곱의 우물 곁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물을 좀 달라”고 하자 유대인이 어떻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은 영생하게 만드는 샘물이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면 생명을 얻게 됩니다. 기쁨과 행복을 가져오는 샘물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생명을 전해주는 복음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요즘에 생명경시사상이 만연하고 과학이 발달하여 마치 생명도 인간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사랑하시고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까지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된 소리, 복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계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생명을 살리시는 생명샘이 되십니다.
렘 17: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생수입니다. 생수를 마시면 살고 생수를 버리면 죽는 것입니다.
에스겔 47장에는 새 성전에서 흘러나온 강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죽어 있던 것들이 소성하며 강 좌우의 나무들이 각종 실과를 맺어 시들지 않는 환상이 나옵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많은 사람이 복음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고 풍성한 영적 결실을 맺게 될 것을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을 성전 곧 성령의 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전인 우리 안에서 세상을 소성케 할 수 있는 생명의 샘물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악하고 독한 말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생명의 샘물 즉 복음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고 낙심한 사람을 격려하며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죽어있는 심령을 살릴 수 있는 생명과 진리의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쓴 물이 아니라 격려하고 소망을 주는 단물을 내는 입이 되어야 합니다. 토산을 익지 못하고 떨어지게 만드는 나쁜 물이 아니라 견실한 열매를 맺게 하는 좋은 물을 내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이르도록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전해주는 복음의 전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말은 씨입니다.(12)
12절,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말은 씨앗과도 같습니다. 혀가 뿌린 대로 거둡니다. 사람이 천사의 말을 하면 천사가 되고 사랑과 감사와 축복의 말을 하면 그 말 그대로 열매가 맺힙니다. 말은 병을 낫게도 하고 병에 걸리게도 합니다. 말은 부자가 되게도 하고 가난뱅이가 되게도 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는 말씀처럼 말도 심은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혀의 열매를 맺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혀는 나무의 열매를 맺는 자연법칙과 동일합니다. 마음의 씨가 결국 열매 맺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악한 씨를 담고 있으면 악한 열매를 맺고 선한 씨를 담고 있으면 선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남이섬에 가면 ‘겨울연가’ 촬영으로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습니다. 메타세콰이어나무는 지름이 2미터, 높이 35미터에 이르는 큰 나무입니다. 하지만 종자는 5x4mm로 아주 작습니다. 작은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됩니다. 씨앗 속에 보이지 않는 나무가 숨어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말이 좋은 관계를 만들며, 좋은 관계는 좋은 행동을 하게 하고, 좋은 행동은 좋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들어야 합니다.
《스무살 때보다 지금 더 꿈꿔라≫책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성공한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또 그의 뒤에는 긍정적인 생각과 말로 자식을 키운 부모가 있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고자 한다면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기보다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말만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 비결이다.
어제 뿌린 말의 씨앗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오늘 뿌린 말의 씨앗이 내일의 나를 만듭니다. 사랑의 말, 긍정의 말, 축복의 말보다 좋은 씨앗은 없습니다.
크리스천 생활명언이란 책에 있는 ‘해서는 안 좋은 말 10가지’를 소개합니다.
1. '잘 해봐라' 는 비꼬는 말
2. '난 모르겠다' 는 책임없는 말
3. '그건 안된다' 는 소극적인 말
4. '네가 뭘 아느냐' 는 무시하는 말
5. '바빠서 못 한다' 는 핑계의 말
6. '잘 되어가고 있는데 왜 바꾸느냐' 는 안일한 말
7. '이 정도면 괜찮다' 는 타협의 말
8. '다음에 하자' 는 미루는 말
9. '해보나 마나 똑 같다' 는 포기하는 말
10. '이젠 그만 두자' 는 의지를 꺾는 말
(예화)
빌리 그레이엄목사님은 20세기가 낳은 세계적 부흥사입니다. 그도 어려서 동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골칫덩이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저 아이는 커서 뭐가 되겠는가”하고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할머니만은 달랐습니다. 개구쟁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 끄는 재주가 있어. 개성만 살리면 크게 될거야” 그 말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칭찬의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위대한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그 씨가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4-35)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을 향해 귀신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착한 마음씨에서 유익한 말이, 악한 마음씨에서 악한 말들이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마음이 결국 사람을 죽이는 말들을 쏟아내었습니다. 마음에서 나온 말로 인해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가정을 살리는 네 가지 생명의 씨가 있습니다. 맵씨, 솜씨, 말씨, 마음씨입니다. 말로 가정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말씨가 서로를 살리고 가족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혀는 말의 재갈과 배의 키처럼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운명 전체를 바꾸어 놓거나 공동체 전체를 세우고 허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혀를 길들일 자가 없어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나오듯이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모두 사람의 손에 길들여지지만 막상 사람의 혀는 길들일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동물원이나 서커스 공연에서 말 못하는 동물이나 새들, 심지어는 곤충들이 사람의 말에 따라 동작을 하는 것을 보면서 신기해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생물들조차 훈련하면 길들여집니다. 하지만 사람의 혀는 사람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민교회에서는 “BMW(Big Mouth Women, 입 크고 수다스러운 여성들)가 교회를 망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합니다. 비단 이민교회의 이야기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스스로 다스려지지 않는 혀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이 혀와 마음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 숯불로 입을 정결케 하는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성령의 전인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말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항상 주둥이로 낚입니다. 입을 열 때와 닫을 때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얼굴이며 품성입니다. 말은 조심해서 아껴가며 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는 말, 격려의 말, 칭찬의 말은 화평을 가져옵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소리입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혀를 잘 다스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말은 불입니다. 말은 샘입니다. 말은 씨입니다. 불이 번지듯이 생명을 살리는 말, 복음을 번지게 해야 합니다. 생수를 내는 샘과 같이 격려하고 기쁨을 주는 유익한 말을 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씨와 같이 삶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의 척도는 말입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