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이끄는 '지하 혁명조직(Revolutionary Organization·약칭 RO)'이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 시설에서 가진 비밀 모임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30일 공개됐다. 녹취록에는 이석기 등 참석자들이 대한민국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북한이 대한민국을 공격하면 자신들이 선봉에 나서서 우리 주요 기간 시설을 습격·파괴하는 방안을 논의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모임 참석자 상당수가 통합진보당 당원이다.
통진당은 전날까지는 이 모임 자체를 부정하다가, 30일 녹취록이 공개되자 "이석기 의원을 강사로 초빙해 정세 강연을 듣는 자리였다"고 했다. 이석기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녹취록의 세부 내용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하지 않은 채 "국정원의 날조"라면서 "나는 전쟁에 반대하는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전쟁을 준비하자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고, "(자신의 강연 후에 나온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은 분반 토론에서 나온 것이고) 저는 여기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녹취록을 보면 이석기는 모임에서 "현 정세는 낡은 지배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단계로 (가는) 대격변기이며 대변환기"라며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놈들하고 붙는 민족사의 결전기에서 우리 동지 부대가 선두에서 역할을 한다면 이 또한 명예 아닌가"라고 했다.
이석기는 조직원들에게 "이미 새로운 형태의 전쟁으로 가고 있으니 기술 준비가 필요하다"며 "포괄적으로 물질적 준비를 갖추자"고 했다.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 정규전이 아닌 비정규전 상태가 앞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석기 발언 후 조직원들은 북이 대한민국을 선제공격할 경우 자신들이 유격대로 나서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킬 구체적 방안을 논의했다.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은 "총은 부산에 가면 있다"면서 "폭탄 제조하는 데 있어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 참여시키면 된다"고 했다. 그는 "통신과 철도와 가스·유류를 차단시켜야 한다"며 "평택 지역 같은 경우 군사 조치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녹취록을 보면 이들의 논의가 단지 말만 하는 단계를 넘어서 현장 답사와 구체적 실행 계획을 세우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상호는 "평택 유류저장소가 니켈합금과 90㎝ 콘크리트로 돼 있다"면서 "시설이 실제 경비가 엄하지는 않아… 안에 들어가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학생들도 인터넷에 들어가면 폭탄을 만들어 사람을 살상할 만큼 위협을 줄 수 있으니 우리가 잘 활용할 재료들이 널려 있다"고 했다.
일부에선 이석기 집단의 언동을 '과대망상'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볼 일이 아니다. 서독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浮上)해 풍요를 누리던 1970년대, 시대와 시민 사회로부터 고립된 극렬 좌파들이 '바더·마인호프'란 도시 테러단을 구성해 정부 요인을 납치·살해하고 주요 시설을 폭파했으며, 일본 역시 과대망상적 극렬 좌파 적군파(赤軍派)들이 일본과 세계를 무대로 비행기 납치, 대중을 향한 기관총 세례, 좌파 내부 간 상호 살육을 저지른 전례(前例)가 이석기 집단의 정신병적 언동을 간단히 넘길 수 없게 한다. 우리 사회를 적으로 보고 총기와 폭탄을 구해 기간 통신망과 유류저장소를 폭파하려고 사전 답사하는 행태는 이석기 집단의 정신 상태가 1970년대 광적(狂的) 집단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석기는 "북(한)은 모든 행위가 다 애국적이고, 다 상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南)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그것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란 신분을 이용해 ▲전력 공급 중단 시 방송·통신의 대응 매뉴얼 ▲한국형 발사체 조기 개발 관련 보고서 ▲우주개발 사업 세부 로드맵 등의 자료 제출을 정부에 요구해 상당수를 손에 넣었다. 국회는 이석기가 지난 1년여간 의원으로서 어떤 자료들을 받아갔는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
과거 주사파의 대부로 통했던 김영환씨는 "북은 내게도 제도 정치권으로 진입하라고 지시했었다"며 "이 의원이 국회로 들어간 것도 북의 지시에 따른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이석기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실시된 통합진보당 내부 경선(競選)에서 부정을 저지르면서까지 국회의원 배지에 대한 집착을 나타냈었다. 여야는 이석기가 그때 저지른 부정 혐의로 국회의원 자격 심사 대상에 올라있는데도 1년 넘게 팽개쳐 놓았다. 그 사이 이석기는 의원이라는 신분을 마음껏 이용했고 이제는 그 휘하 대원들에게 '전쟁 준비'를 지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석기 집단은 단순한 정신병자의 집합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파괴하려는 공격 집단이다. 정치권은 그들로부터 우리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조선일보 사설, 201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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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의 야릇한 웃음
'대한민국 반대'에 관대했던 우리… 北에 너그러우면 성숙한 줄 알고
'反국가'를 '反정부'쯤 여기게 돼… 美, 스노든이나 매닝에 관용 없어
'다른 목소리'도 있을 수 있지만… 헌법이란 '울타리' 本質은 지켜야
- 김대중 고문
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 이석기가 카메라 앞에서 히죽이 웃는 얼굴은 온 국민의 가슴에 염장을 지른다. 통진당 사람들의 '프락치' '조작' 운운하는 기자회견은 온 국민의 기(氣)를 막는다. 이석기가 엊그제 국정원 앞 데모에서 마치 영웅이나 된 듯이 손을 흔들어 대고 있는 모습은 진보 성향의 사람들마저 낯 뜨겁게 하고 있다. 이들의 뻔뻔함, 당돌함은 저들이 갑(甲)이고 대한민국이 을(乙)인 것처럼 만든다. 아니, 을도 아니고 국민을 졸(卒)로 만든다.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처신했기에 이석기 등(等)은 우리를 이처럼 우습게 아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깔보였기에 저들은 대한민국 대낮에 대로(大路)에서 저렇게 당당한 것일까? 우리가 저런 '돈키호테의 빨치산 용사 놀이'(진중권)에 흔들릴 나라는 아니지만 저런 자(者)들이 활개 치고 다니게 만든 것도 결국 '우리 수준' 아닌가?
문제의 근본은 반(反)국가 사범을 다루는 데 우리 사회와 우리 정치권이 너무 관대했거나 소홀했다는 데 있다고 본다. 그 원인의 첫째는 과거 정치권력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반국가 사범으로 몰아가거나 옭아맸던 데서 찾을 수 있다. 정치권력의 탈헌법적 유지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나 세력 또는 시민들을 이른바 '빨갱이'로 몰아 처단했거나 처치했던 사례들이 부지불식간에 국민으로 하여금 '반국가' 사범마저도 '반정부'쯤으로 여기게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또 우리 국민 개개인이 정치권력에 실망하거나 자주 비판하다 보니 모든 반정부에 관대해지고 때로 그 반정부가 반(反)대한민국으로 변질해도 그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반국가'가 '반정부'의 허울을 쓰고 병균처럼 번져갔던 것이다. 또 저들이 저렇게 오만방자하게 나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자기들 동조 세력이 많이 늘었다는 그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가 넘는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다.
게다가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자유민주주의 실천에서도 상등권을 누리고 있다는 자부심이 때로 반국가적 행태에도 관대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점도 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경제력·군사력이 북한보다 우위에 있어 비록 친북·종북이라도 이겨낼 수 있고, 또 북한에 좀 더 관대한 것이 성숙된 국민의 척도인 양 여기는 '유행성 북한병'에 걸려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철저한 나라일수록 반국가 사범에 대해서는 추호의 관용도 없음을 우리는 최근 미국의 스노든 사건과 매닝 사건에서 목격하고 있다. 반테러 작전의 일환으로 많은 시민을 감청한 당국을 폭로한 스노든은 영원히 미국 땅을 못 밟을 것 같고, 미국 정부는 그를 받아준 러시아와 외교적 마찰 내지 불화를 감수하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군사 기밀 폭로에 관련된 매닝은 그가 단지 일등병인데도 35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이석기는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당장 집권 세력에 도전하는 정적(政敵) 수준도 아니다. 과거 우리의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정치적 억압, 민주주의의 말살 등 탈헌법적 상황을 견디다 못해 들고일어난 저항운동자도 아니다. 그는 그저 아무런 논리도, 타당성도 없이 대한민국이 싫고 '북조선'이 좋고, 그래서 북한에 유리하고 대한민국에 불리한 일들을 골라 하는 지극히 저질스러운 종북자일 뿐이다. 그런 이석기는 지금 승자처럼 웃고 떠들고 다니고, 언론은 그것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도 뭉그적거리며, 통진당 국회 진출에 대한 책임 면하기에 급급하다. 통진당은 자기들이 언제 대한민국을 긍정했다고 버젓이 국회 내에서 국회 마크를 배경으로 국정원의 '매수' '프락치' '조작'을 외치고 있다. 사건의 발표가 왜 굳이 이 시기인가라고 저의(?)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쯤 되면 이것은 온전한 나라도 아니다.
우리는 '이석기 사건' 으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가 남북으로 갈려 치열한 대치 상황에 있다 해도 우리는 다원화된 사회인 만큼 하나의 논리로만 나라를 이끌어갈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다른 목소리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다른 것'에 밀려나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헌법이라는 울타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본질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나라를 만들고 출발하기 전에 합의한 것이다. 이석기류(類)가 그 울타리를 부수고 들어와 본질의 전당에 자리 잡는 일은 이제는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석기의 야릇한 미소와 뻔뻔함이 그동안 하루하루 사느라 바빠 제 발밑은 보지 못했던 우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2013/9/3
진보와 민주주의의 敵, 이석기
수령 유일 체제의 北을 우러러보고 무장투쟁 迷夢에 빠진 사이비혁명가
민주공화국 뒤집으려한 국가의 敵… '그 정도에 안 흔들린다' 가벼운 인식
선진국일수록 반역죄 嚴罰… 국가危害 집단을 통제 못하면 內亂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현실 정치적으로 이석기 집단은 궤멸(潰滅) 직전이다. 정책 연대를 했던 민주당, 한때 같은 당 소속이었던 정의당조차 '이석기 쓰나미'에서 발을 빼는 게 생생한 증거다. 4일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이 의원 체포 동의안에 따르면 이석기 조직은 진보이기는커녕 수구 좌파에 불과하다. 조국 해방을 위한 무장 투쟁의 미몽(迷夢)에 사로잡힌 사이비 혁명가(革命家)는 한국 진보의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두 날개로 날아야 할 우리 사회에서 이석기 집단은 합리적 진보의 적(敵)이다.
둘째, 주사파 민중민주주의는 파산선고를 맞은 지 오래다. 이석기 일당이 우러러보는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상은 처참하기만 하다. 북한은 공동체의 주인이어야 할 인민이 노예 상태로 전락한 반(反)민주주의의 전형이며 수령과 한 줌의 지배 엘리트가 폭압 통치로 민중을 착취하는 반(反)공화국 그 자체다. 200년에 가까운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낳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공산당과 서기장의 독재로 귀결됨을 입증했다. 수령 유일 체제로 타락한 북한 현대사는 민중민주주의가 어떻게 퇴행하는지 정치적 막장의 극한(極限)을 보여준다. 민중민주주의를 외치는 이석기 그룹은 민주주의의 적(敵)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석기 집단의 내란 음모, 선동 등의 혐의는 치열한 법리적 공방이 불가피하다. 생존 문제가 걸린 이석기 일당은 끈질긴 법률 투쟁으로 무죄를 강변(强辯)할 것이다. 몇 해가 지나 최종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온다 해도 곧장 역사 투쟁으로 옮아갈 게 분명하다. 그들은 항상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충격이 가시고 한반도 내외 정세가 요동칠 때 이석기 파동이 어떻게 정리될지 지금으로선 알기 어렵다.
셋째, 법률적 판단 이전에 체포 동의안이 밝힌 이석기 조직의 언행(言行)은 엄중하기 짝이 없는 정치철학적 성찰을 강제한다. 바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며 '국가는 어떻게, 그리고 왜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평소에 우리는 국가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평범한 시민은 축구 국가 대표팀 대항 경기나 과속 운전 딱지 발부, 세금 낼 때에나 국가의 존재를 떠올린다. 마치 공기처럼 투명하게 우리를 둘러싸는 게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주권국가에는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다. '국가란 일정한 영역 안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을 요구하는 공동체'라는 점이다. 국가가 영토 안에서 군대와 경찰을 운용하는 게 그 증거다. 물론 이런 물리적 폭력의 독점은 정당해야 하며 그 정당성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동의에서 나온다. 국가 공권력에 도전하는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를 허용하는 정상 국가가 존재할 수 없는 근본 이유다. 체포 동의안에 서술된 이석기 조직의 행보는 위험천만하게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한국 현대사는 비대화한 국가 폭력의 트라우마로 점철된 시대였다. 독재 정권이 공권력을 사유화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우리 사회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이라는 국가의 본질이 경시되는 역사적 맥락이다. 주정꾼이 파출소에서 난동을 벌이고 시위대가 공공질서를 무시하는 행태에는 다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13년의 한국은 더 이상 1970·80년대의 독재국가가 아니다.
국가란 나와 우리 가족이 삶을 영위하면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 공동체다. 그 공동체를 폭력으로 위해(危害)하려는 집단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내란(內亂) 상태다. 선진국일수록 반역죄를 엄격히 처벌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발달 장애를 앓는 주사파 광신도들의 집단 자위(自慰)' 정도로 '나라가 흔들리진 않는다'는 진보의 인식은 이석기 사태를 너무 가벼이 보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을 폭력으로 뒤집으려는 집단은 국가의 공적(公敵)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칼럼, 20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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