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노출/삶자락이야기

비포장 길

하마사 2013. 8. 23. 08:08

 

요즘은 도로가 참 발달했다.

어디를 가도 아스팔트나 시멘트 도로가 번듯하다.

시골길도 웬만하면 포장이 되어 있다.

자동차 문화가 발달했다는 증거다.

포장도로가 편리하지만 걸어서 다닐 때는 비포장도로가 더 좋다.

발도 덜 아프고 운치도 있다.

포장도로가 되면서 곡선 길은 직선 길로 많이 바뀌었다.

원하는 목적지에 더 빨리 갈 수 있어 시간이 절약되는 이점이 있다.

반대로 시간에 더 매여 살게 되는 단점도 있다.

삶의 여유가 그만큼 사라졌다.

다녀야 할 곳이 더 많이 생겼고, 일도 더 분주하게 되었다.

마음의 그리움과 애잔함이 줄어들었다.

보고 싶으면 전화하고 씽씽 달려가 만날 수 있으니 삶의 멋스러움이 없어졌다.

느긋하게 산천을 구경하며 과거 길을 떠났던 선비들의 운치를 상상해 본다.

산천을 돌고 도는 굽이진 산마루길,

미래의 꿈을 안고 시를 읊조리며 거닐던 오솔길,

아이들이 장난하며 풀로 만들어놓은 올가미길,

움푹 파인 웅덩이를 피하려 살짝 돌아가며 묘기를 부리는 자전거길,

비포장 길에서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편리함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불편함도 좋다.

서울근교에서 비포장 길을 달렸다.

한적한 곳이라 포장이 되지 않았고 두 대의 자동차가 서로 피할 수 없는 좁은 길이었다.

먼저 진입한 차가 지나가면 기다렸다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다.

덜컹덜컹 소리가 나고 몸이 이쪽저쪽으로 기우뚱하는 길이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천천히 지나야 했다.

불편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에 자동차가 동네에 나타나면 그 뒤를 따라 달리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 때 만약 포장도로였다면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뒤 따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포장 길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길이다.

운전자나 길을 걷는 사람, 뛰어노는 아이들이 모두 한 덩어리 되는 어우러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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