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둥지 못 만들고 알도 못 품는데… 뻐꾸기의 기막힌 생존법 '탁란'

하마사 2013. 7. 21. 16:27


	[Why] [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뻐꾸기 수놈은 앞이 탁 트인 나무우듬지나 피뢰침에 곧잘 앉아 꼬리를 까딱까딱 흔들면서 '뻐꾹뻐꾹 뻑뻑 국' 하고 소리를 내지른다. 암컷은 고작 '삣 빗 삐' 하는 들릴락 말락 하게 낮은 소리를 낸다. 아무리 귀 기울여 들어봐도 '뻐꾹'인데 어째서 서양 사람에겐 '쿠쿠(cuckoo)'로 들리는 것일까.

여름철 우리 주변에서 뻐꾹뻐꾹 울어대는 뻐꾸기(학명:Cuculus canorus)는 분명히 작년에 이 근방 숲에서 태어난 놈이리라. 저들은 태어나 자란 보금자리를 올바로 기억해, 동남아에서 겨울나기 하고 되찾아 드는 귀소본능이 있다. 뻐꾸기는 다른 새들이 꺼리는 나방의 유충인 송충이나 쐐기벌레같이 털이 보송보송 난 모충(毛蟲)을 즐겨 먹는다.

"뻐꾸기가 둥지를 틀었다"는 말이 있다. 턱도 없고 얼토당토않다. 얌체들은 스스로 알을 품지 못하고 딴 새 둥지에 몰래 집어넣어 새끼치기하니 이를 탁란(托卵)이라 한다. 야마리 까진 기생(寄生)새는 모두 두견이과로, 지구 전체 새의 1%(100여종) 정도이고, 한국에도 뻐꾸기·등검은뻐꾸기·두견이·매 사촌들이 있다. 이들은 숙주(宿主) 새인 뱁새·멧새·개개비·때까치에게 의탁(依托)하는데, 기생 새와 숙주 새가 서로 단짝이 정해져 있고, 알은 크기만 다를 뿐 모양새와 무늬가 비슷하다.

기생 새는 어김없이 덩치가 저보다 작은 숙주 새를 고르는데, 그래야 새끼끼리 싸워 이긴다. 덩치가 큰 뻐꾸기(체장 33㎝)가 황새 쫓아가다가 다리가 찢어진다는 꼬마 뱁새(13㎝)에게 알을 맡기는 것도 매한가지다. 어찌 이런 기구하고 얄궂은 연분을 맺어 긴긴 세월을 살아왔담.

뻐꾸기 암컷은 멀찌감치 앉아 눈치를 보다가 뱁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잽싸게 서너개 알 중 하나를 밀쳐버리고, 10초 남짓 걸려 알 하나를 후딱 낳고 벼락같이 튄다. 이렇게 집집이 약삭빠르게 돌면서 10개가 넘는 알을 맡기는 악랄한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뻐꾸기는 한 집에 꼭 알 하나만 낳는다. 뱁새가 둘 다 키우기 버겁다는 것쯤은 아는 모양이다.

알까기에 14일이 걸리는 뱁새에 반해 뻐꾸기는 9일이면 부화한다. 뻐꾸기 새끼는 부화 10시간이 지날 무렵, 날갯죽지를 뒤틀어 뱁새 새끼들을 둥지 바깥으로 죄 몰아 내쳐버리고는, 갖은 아양을 떨어 뱁새 어미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뱁새 어미는 알고도 속아주는 것일까? 남의 새끼를 금이야 옥이야 보살피는 게 어미 뱁새요, 배로 낳은 어미와 가슴으로 낳은 어미까지 두 어멈을 가진 것이 새끼 뻐꾸기다.

이왕 나온 김에 '새 이름' 이야기를 하자. '뱁새'란 보통 이름이다. 우리말 이름(국명)은 '붉은머리오목눈이'다. 국명은 지방마다 다른 향명(鄕名) 하나를 표준어로 한 것이고, 이는 아무리 길어도 '붉은머리오목눈이'처럼 붙여 써야 한다.

나라에 따라 다른 이름을 라틴어로 통일한 만국 공통어인'학명(學名)'도 있다. 학명을 쓸 때는 뻐꾸기의 학명 'Cuculus canorus'처럼 이탤릭체로 써야 한다. 부끄럽게도 여태껏 우리나라 신문·잡지에 학명을 제대로 쓴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물며 염치없는 '사람 뻐꾸기'도 더러 있다. 남의 집 앞에 버려진 아이를 업둥이라 한다지. 정당 주변을 빈둥거리다가 잽싸게 한 자리 차지하는 '뻐꾸기 수법'을 구사하는 얄미운 꼽사리꾼 정객도 있더라. 아무튼 '뻐꾸기도 유월이 한철이라'고 하니 한창때를 놓치지 말지어다.

 

-조선일보, 2013/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