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신앙의 역전 릴레이

하마사 2013. 7. 17. 20:44

본문: 히 12:1-3

제목: 신앙의 역전 릴레이

찬송: 347장, 359장

목표: 책임 맡은 구간까지 신앙의 경주를 잘 달리게 한다.

 

 

역전릴레이는 역전경주입니다. 어느 지점까지 달려가 바톤을 다른 선수에게 넘겨주고 최종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 순위가 결정되는 경기입니다. 구간 마라톤 경주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앙인은 구간 마라톤 선수와 같습니다. 정해진 거리까지 달려가서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넘겨주고 사명을 완수하는 선수와 같습니다. 릴레이에 임하는 선수는 예외가 없습니다. 선발된 선수는 모두가 달려야 합니다.

물론 늦게 바톤을 이어받아 조금 달리고 다음 선수에게 넘겨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오래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오르막과 같은 험한 코스를 달려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평지와 같은 비교적 쉬운 길을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응원하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역전 릴레이 선수는 달려야 합니다. 다음 주자가 바톤을 받을 때까지는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역전릴레이 경기와 같습니다. 사명의 바톤을 받은 후에 다음 주자에게 넘겨줄 때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바톤을 넘겨줄 때까지가 사명입니다. 바톤을 넘겨주면 사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넘겨주지 않으려 하거나 넘겨 준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바른 사명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정해주신 마라톤 구간이 있습니다. 평탄한 코스를 달리는 사람도 있고 험한 코스를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를 탓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험한 마라톤코스를 달리는 성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 누가 대신 달려줄 수 없습니다. 정해진 구간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하는 릴레이선수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신앙의 역전 릴레이 선수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요소가 있습니다. 선수로 출전하는 사람이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신앙의 역전 릴레이 선수는

1. 버려야 합니다.(1절 상)

1절 상반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달리기에 편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불필요한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자기포기, 내려놓음이 필요합니다.

(예화)모세

모세는 40년 동안 왕궁에서 왕자로 살다가 애굽사람을 죽인 것이 발각되어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여 40년을 양치는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극과 극을 달리는 인생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가살이를 하면서 하루하루 양과 더불어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안에서 부르셨습니다.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자신이 없다며 핑계를 댑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셨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땅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땅에 던지자 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고 꼬리를 잡자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또한 손을 품에 넣을 때 나병이 생겼고 다시 손을 넣었을 때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자기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하며 핑계했습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시며 아론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40년간 양을 치던 목자의 지팡이를 던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지팡이로 용도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내려놓고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들, 놓치면 죽을 것 같은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버리고 사명의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버렸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한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버린 후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는 사명을 멈추지 않기 위해 페르시아의 총리직을 버렸지만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고향을 버리고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정착한 후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문하에서 공부한 학벌과 명예 그리고 로마의 시민권이라는 권리를 포기했지만 이방인의 사도로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모두가 버리는 아픔 후에 찾아온 영광입니다.

모세, 아브라함, 룻, 다니엘, 사도바울처럼 신앙의 역전 릴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명예, 권력, 지식, 물질, 고향, 생명까지도 던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란 책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인도의 캘커타 지역에서 만난 거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크게 포기하면 크게 얻는다.” 몇 푼을 줄까 망설이고 있는 저자에게 충고한 말입니다. 보잘 것 없는 거지가 한 말이지만 의미 있는 말입니다. 크게 버리면 크게 얻습니다. 버린 것만큼 얻는다는 말입니다.

이용규선교사님이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놓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내려놓을 때 그것이 진정한 우리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려놓을 때 주어지는 가장 좋은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강이다. 내려놓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자기가 죽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는 과정 중에 꼭 거쳐야 할 단계이다. 세상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 일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이미 내 손에 있는 것을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놓아야만 비로소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는데도 늘 망설이게 됩니다. 포기란 단순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 더 나은 길로 가기 위해 감수하고 희생해야 할 부분입니다.

신앙의 역전 릴레이 선수는 가장 먼저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몸을 무겁게 하는 세상적인 욕심과 마음을 무겁게 하는 모든 죄를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버리고 출발선에 서야하고 달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신앙의 역전 릴레이 선수 여러분! 어떤 것을 버리시겠습니까? 버린 만큼 빨리 달리고 상급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믿고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의 역전 릴레이 선수는

2. 보아야 합니다.(2절)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달리는 방향과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목표가 어딘지를 분명히 알고 달려야 합니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릴레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천국을 향해 달려야 합니다. 이 목표가 흔들리면 천국으로 가다가 방향을 잃고 지옥으로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달리면서도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것처럼 유혹과 고통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예화)토끼와 거북이 경주

이솝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거북이는 목표 지점을 바라보았고, 토끼는 거북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토끼는 느린 상대 거북이를 바라보았기에 얕보고 방심했습니다. 거북이는 토끼를 보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거북이는 경주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거북이는 오로지 목표를 보고 뚜벅뚜벅 걸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사울 왕과 다윗도 그렇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등장한 후로 다윗을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다윗을 죽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사울의 실패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예화)소로 밭을 가는 농부와 아들

어릴 때 아버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소로 밭을 가는 농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밭을 가는 모습을 아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밭을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소를 몰고 밭을 갈았습니다. 밭을 갈고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간 밭은 고랑이 반듯한데 아들이 간 밭은 구불구불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아버지가 목표를 바로 정하고 갈아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들은 앞에 보이는 움직이는 소를 목표로 하고 밭을 갈았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움직이지 않는 목표를 정하고 갈아야 반듯하게 밭을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밭을 반듯하게 갈기 위해서도 앞의 목표가 중요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목표를 정해야 되듯이 신앙의 역전 릴레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예수님을 목표로 정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한눈을 팔거나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베드로가 풍랑가운데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바다 위를 잠시 걸었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떼고 풍랑을 보았을 때 물속에 빠졌듯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고전 9:26) 라고 말입니다. 신앙의 달음질을 할 때 방향 없이 달리지 않았고 허공을 치듯 목표 없이 싸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신앙의 달음질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방향과 목표를 잃을 때 유혹에 빠지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롯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당할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목표에서 시선을 떼고 뒤를 돌아보면 이처럼 실패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나아가는 목표와 방향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모델이 되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어떤 개인이 아니라 예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을 위해 이런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한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될 때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어집니다. 바른 제도가 정착되게 해야 합니다. 힘들어도 미래의 한국교회와 우리의 후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도 신앙의 역전 릴레이를 잘 달려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금년의 목표는 산돌같은 교회입니다. 거룩한 교회, 자랑스러운 교회, 덕을 세우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를 지향하려면 작은 어려움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원망과 불평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허무는 부정적인 말을 삼가야 합니다.

 

(예화)구리뱀 사건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이 경험했던 구리뱀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광야생활 중에 에돔 땅을 통과하려 했지만 에돔 왕이 허락지 않아 먼 길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습니다.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불뱀들을 보내어 물어 죽게 하자 백성들은 회개하며 불뱀들을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아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이 쳐다보면 살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9) 구리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모두가 살았습니다. 하지만 뱀에게 물렸지만 쳐다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습니다. 구리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살 길이 열립니다. 죽음의 구렁텅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야 합니다. 힘들 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달려야 합니다. 십자가 이후에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역전 릴레이 선수는

3. 생각해야 합니다.(3절)

3절,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신앙의 경주는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경주가 아닙니다. 생각하며 달려야 합니다. 바른 방향과 목표를 향하여 생각하며 달려야 합니다. 자기의 방향과 목표를 점검하며 달려야 합니다. 언덕과 장애물을 만났을 때 생각해야 합니다.

달려가다 피곤하여 낙심할 수 있습니다.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멈추어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포기하면 팀 전체가 실격이 될지라도 포기하고 기권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위험할 때입니다.

그 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 모든 제자들이 도망가는 외로움을 겪으셨습니다. 따르던 많은 무리들이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로마 군병들로부터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조롱을 당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발가벗겨지는 수치를 참으셨습니다. 그것까지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때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힘을 내야 합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선수가 시합을 하면 가족들이 열심히 응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팬들이 열광적으로 응원합니다. 그래서 홈에서 경기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응원의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을 주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본받아 평안을 생각하고 미래와 희망을 생각해야 합니다. 달리다가 힘들어도 상급 받을 미래의 희망을 생각하며 달릴 때 힘을 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금년 4월 8일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고 했습니다. 대처 전 총리가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라고 합니다.

생각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합니다. 행동 이전에 방향을 결정합니다. 약한 생각을 하면 약한 방향으로, 강한 생각을 하면 강한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갑니다. 생각하는 대로 된다고 하니 예수님을 생각하면 예수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참으신 것처럼 우리도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달려가다 피곤하여 낙심될 때 예수님을 생각하며 이겨야 합니다.

(예화)

미국 캘리포니아의 세코이아 국립공원에는 높이가 백 미터에 이르고, 둘레가 3미터 이상 되는 세코이아나무가 수천 그루 있는데, 그중에는 수명이 3천2백년에 이른 나무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거목의 씨앗은 겨우 0.05그램에 불과하답니다. 씨앗 속에 보이지 않는 나무가 있듯이 오늘의 생각 속에 보이지 않는 미래가 숨어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라는 씨앗이 좋은 나무로 자라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보잘 것 없이 작아보여도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하는 힘과 함께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얻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낙심하지 말고 힘을 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의 역전 릴레이 선수는

4. 달려야 합니다.(1절 하)

1절 하반절,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신앙의 역전 릴레이 선수는 달려야 합니다. 버리고 바라보고 생각해도 달리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목표를 향해 자기에게 맡겨진 구간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합니다.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넘겨줄 때까지는 꾸준히 달려야 합니다. 바톤을 넘겨주어야 사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신앙의 역전 릴레이를 마칠 즈음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 사도는 사명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며 달렸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역전 릴레이를 잘 달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면류관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 확신을 가지고 달려야 합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달려야 합니다.

 

어느 목회자가 농촌교회 다섯 분의 권사님들 은퇴식에 참석한 후 쓴 글입니다.

(예화)신림교회 은퇴식

평생 교회를 섬기시던 권사님들의 은퇴식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다. 다섯 분의 권사님들이 농촌교회를 섬기다가 교회의 법에 따라 은퇴를 하셨다. 교회가 세워지고 오늘이 있기 까지 눈물어린 기도와 헌신의 삶을 살았던 분들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 교회가 개척되어 가정집과 같은 교회건물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마당에서 뛰놀던 교회이다. 몇 년 후 중학생 때 온 성도들과 함께 건축자재를 운반하며 교회건축을 위해 나도 한몫을 감당했다. 은퇴하신 권사님들은 그 때부터 교회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셨다. 교회가 어려울 때 눈물로 기도하고 온 몸으로 교회를 위해 땀을 흘렸던 권사님들이셨다. 교회일이라면 앞장섰던 믿음의 어머니들이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어 이마엔 주름살로 얼룩졌다.

은퇴식을 하면서 눈물을 찍으시는 권사님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라톤 경주를 무사히 마치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5인방의 권사님들은 교회의 역사이다. 이제 자녀들이 성장하여 새로운 교회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은퇴식과 더불어 임직을 받은 두 명의 안수집사들은 그분들의 자녀들이었다. 농촌교회가 젊은이가 없어 문을 닫을 위기가 있었지만 두 명의 믿음의 후배들은 어머니의 자리를 이어가며 교회를 아름답게 섬겨왔다. 교회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하며 섬겨오는 벧세메스로 가는 소처럼 귀한 일군들이다. 나의 믿음의 후배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그분의 자녀들 중에 세 명의 목사님들이 배출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다. 믿음의 씨앗은 이렇게 열매 맺어 교회의 역사를 이어가며 복음의 지경을 확장시키고 있다.

권사님들이 훔치는 눈물을 보면서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분들의 기도 영양분을 공급받아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외지로 나간 자녀들을 위해서도 늘 기도하시던 권사님들이셨다. 은퇴는 하셨지만 그 기도의 끈은 계속 이어지리라 믿으며 힘을 얻는다.

농촌 마을에 세워진 작은 교회지만 거기에서 복음을 듣고 자란 이들은 큰 일군들로 자라났다. 믿음의 기초와 터를 닦은 1세대 권사님들은 이제 은퇴하셨다.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고 교회의 역사는 기억하고 있으며 그 역사의 현장에서 자라난 신림교회성도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다섯 분의 권사님들은 신앙의 역전 릴레이 선수로 인내하며 달렸습니다. 최선을 다해 달렸습니다.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아름답게 넘겨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신앙의 역전 릴레이 선수 여러분!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립시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피곤하여 낙심될 때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주님이 주실 면류관을 확신하며 바톤을 넘길 때까지 끝까지 힘차게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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