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막 10:13-16
찬송: 564장
제목: 용납 그리고 축복
목표: 어린이를 용납하고 품에 안아 축복하게 한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설교제목을 용납 그리고 축복이라고 정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축복받기 위하여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이 꾸짖는 것을 보시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표현한 말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시고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용납하고 축복하신 어린이의 특징은
1. 겸손입니다.
이스라엘도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은 같습니다. 랍비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려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은 당시의 풍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자 꾸짖으며 금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축복해주는 일 말고도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생각하여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당시 어린아이와 여자는 유대 사회의 일원으로도 여겨지지 않을 만큼 매우 경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향해 화를 내셨습니다. ‘노하시어’라는 단어는 ‘크게 탄식하다’라는 뜻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는 목자의 심정으로 생명을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심정을 모르고 어린 생명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가로막는 제자들의 행동에 대하여 탄식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4절)
오늘 본문과 연관된 마 18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을 했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예수님은 가만히 계시다가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왜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하셨고, 어린아이가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고 하셨습니까?
겸손 때문입니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배우기를 즐겨합니다. 어린아이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끝없이 질문합니다. 때로는 대답하기 힘들 정도로 계속 질문을 합니다. 어린이 눈에는 모든 것이 배울 것들이요 관심거리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닮아갑니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과시하는 힘 있는 사람이 대우를 받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겸손한 사람이 높임 받습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으시면 인간의 교만 때문일 것입니다. 사탄도 처음에는 하늘의 천사장 이었다가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한 마음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그 사탄이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꾀어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을 불어넣어 결국 선악과를 따먹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해야 합니다.
(예화)
제가 몇 년 전에 새신자부원들과 윷놀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6명씩 한 편이 되어 윷놀이를 하는 중에 제가 연속으로 윷을 세 번이나 쳤습니다. 너무 신이 나고 흥분되어 네 번째 윷을 던졌는데 그만 낙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낙판이 되면 무효라는 규칙을 정했기에 그동안 세 번이나 윷이 나온 것도 함께 무효가 되고 말았습니다. 승리가 눈앞이었는데 그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네 번째 윷을 조심해서 던졌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친선게임이라 더 재미있기는 했지만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합니다.
살다보면 세 번이나 연속하여 윷이 나오듯이 잘 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 다음 던질 때 낙판을 조심해야 합니다. 모두 무효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잘 살고도 마무리 윷을 잘못 던져 전부 무효로 만들어버리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 다른 사람을 잘 따라하고 모방하려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화)
유대인의 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쉬(Midrash)의 '다윗왕의 반지'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윗왕이 어느 날 보석 세공인을 불러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게 하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고 명했습니다. 세공인은 반지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때 솔로몬 왕자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새기라고 알려줬다고 합니다.
매일 날씨가 좋으면 사막이 됩니다. 언제나 잘 나가면 교만합니다. 비바람은 거세고 귀찮은 것이지만 그로 인해 새싹이 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을 배우라고 때로는 궂은 날씨도 주시고 실패도 주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이고 이런 사람을 예수님은 용납하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이 용납하고 축복하신 어린이의 특징은
2. 의존입니다.
어린아이는 혼자의 힘으로는 살수 없습니다. 부모님 혹은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돌보아 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연초에 교회학교 영아부에 가보면 처음 엄마와 떨어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진동합니다. 완전히 부모와 생이별하는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엄마와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린이의 처절한 몸부림과 절규입니다. 어린아이의 의존심 때문입니다. ‘엄마 없으면 나는 잠시도 못살아’라는 표현이 울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해요”라고 하며 예수님을 의존하고 살아갈 때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를 의존하는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해야합니다. ‘주님이 잠시라도 떠나면 저는 못 살아요’하는 강력한 의존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는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립하여 혼자의 힘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일지 몰라도 천국에서는 이와는 반대입니다. ‘주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주님을 얼마나 의지하는가에 따라 주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생동안 엄마를 의존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예화)
다윗은 위대한 신앙인이었고 시인, 음악가, 장군, 왕이었습니다. 그의 앞에는 여러 가지 한계와 장애물들이 있었지만 그런 장애물들을 뛰어넘었기에 위대한 생애를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왕이 되는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이라는 큰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주변국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형제간의 싸움도 있었고 아들의 반역도 있었습니다. 살인죄와 간음죄도 지었습니다. 중간에 넘어지고 포기할 수 있는 장애물들이 많았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삼하 22:29-30)
삶에 가로막힌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능력이 어디에서 생겼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의존하듯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가로막힌 장애물들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렘 17:7-8절은 말씀합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부모를 의지하는 어린아이처럼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잎이 청청합니다.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하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해결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기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도와주셨습니다. 요셉을 도와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를 도와 광야생활을 지나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사사들과 사무엘과 다윗을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다의 왕들을 도와주셨습니다. 몰살당할 위기에 있던 에스더와 유다백성들을 도와주셨고 느헤미야를 도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게 하셨고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셨으며 슬픔 당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기쁨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존하는 사람을 용납하고 도와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이 용납하고 축복하신 어린이의 특징은
3. 믿음입니다.
어린아이는 잘 믿습니다. 부모가 진짜 자기 부모인지 의심하지 않습니다. 부모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빠의 말을 잘 믿더니 커가면서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하면 “정말?”하고 되묻기도 하고 자기가 말을 하면서도 “정말로, 진짜로”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여 자기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라네’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얘야 네 동생에게 필요한 기적은 어떤 것이니?"
"나도 잘 몰라요."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지금 제 동생이 많이 아파요. 수술을 해야 한 대요. 그런데 아빠는 수술비가 없대요. 그래서 내 돈을 쓰려고 해요."
"네가 가진 돈은 얼마나 되지?" 시카고에서 온 그 신사가 물었다.
아이는 들릴락 말락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1달러 11센트(1,200원)예요. 그렇지만 모자라면 더 가져올께요."
"이런, 1달러 11센트면 네 동생에게 필요한 기적을 사는 값으로 꼭 맞구나."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 신사는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뇌수술 전문의 칼 암스트롱 박사였습니다. 아이의 순수하고 간절한 믿음이 1달러 11센트로 동생을 살리는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계산 없는 사랑,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것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말씀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잘 믿습니다. 딸이 어릴 때 숨바꼭질을 함께 했습니다. 내가 술래가 되어 ‘다 숨었니?’ 하고 소리치면 숨어 있는 자리에서 ‘다 숨었다’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어디에 숨었니?’ 하면 어디에 숨었다고 장소까지 알려주었습니다. 거짓말을 할 줄 몰랐습니다.
왕하 2장에 엘리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 어린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며 놀렸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가 화를 내며 저주하자 수풀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42명의 아이들을 물어 죽였습니다.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보는 대로 말합니다. 앞뒤를 재면서 꾸미지를 않습니다.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용납하고 축복하신 어린이의 특징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의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입니다. 어린이를 본받아 예수님이 용납하고 축복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용납하고 축복한 어린이들이 천국에서 큰 자일 뿐 아니라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2012년 한국방정환재단의 지원을 받은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청소년의 물질적 행복지수는 OECD 18개 국가 중 4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주관적 행복지수는 23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에 머물렀습니다. 조사한 4년 연속 꼴찌였습니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질적인 행복감은 느끼고 있지만 실제 자기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게 나왔습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스트레스 조사에선 '학원 다니기'가 늘 주범(主犯)으로 꼽힙니다. 어린이를 노리는 흉악 범죄, 집단 따돌림, 외모 콤플렉스가 뒤를 잇습니다. 소아정신과 의사들은 부모의 과잉 기대나 가족 불화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이 늘어난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서너 살짜리에게 영재교육 시킨다며 책만 읽혔다가 자폐증을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 년 전 소년조선일보가 초등학생들에게 ‘대통령에게 가장 바라는 것’을 물었더니 ‘부모님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라는 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바쁜 아빠도 아이들에겐 불만입니다. 한 초등학생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엄마는 나를 예뻐하고, 냉장고는 내게 먹을 거를 주고, 강아지는 나와 놀아주는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이런 아빠들 계시면 회개해야 합니다.
행복한 자녀로 양육하려면 예수님의 방법대로 하면 됩니다.
행복한 자녀로 양육하려면
1. 용납해야 합니다.(14절)
14절,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용납하라’는 뜻은 ‘지금 당장 어린아이들을 받아들이라는 촉구의 의미’가 있습니다. ‘금하지 말라’는 뜻은 ‘앞으로 계속하여 금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두 단어 모두 명령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지금 당장 아이들을 자신에게 보낼 것을 촉구하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자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쁘다고 해도 부모는 아이를 감싸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은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삼하 14장에 다윗과 아들 압살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압살롬이 형 암논을 살해하고 도망갔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지만, 왕궁에 있는 다윗을 만나지도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압살롬에 대한 분노와 부성애가 교차하여 다윗이 확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5년의 기간 동안 대면조차 하지 않음으로 압살롬의 반발심만 불러일으켰고 결국 반란까지 도모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예화)
과거에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들로 인해 고민하고 있을 때, 어린이날 즈음에 아버님이 가족카페에 이런 글을 올리셨습니다.
“머리가 둔한 아이에게 너무 공부 공부 하고 다그치지 말아라. 성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란 말도 있더구나. 교육에는 하나의 정답만 있을 수 없다. 공부보다는 아이들의 신앙과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어질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인격적인 교육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손주들을 너그럽게 사랑하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용납하지 못하는 자녀가 있습니까? 골 3:13절은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만 살 수 있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운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들 중에도 있습니다. 사랑스런 자녀가 있는가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녀도 있습니다. 힘들어도 용납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셨던 예수님처럼 받아들일 때 자녀의 행복이 시작됩니다.
행복한 자녀로 양육하려면
2. 포옹해야 합니다.(16상)
16절 상반절,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존 스미스의《포옹 Hugs for Dad》이란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아이를 꼭 안아 주세요. 끌어안은 품 안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당신의 포옹은 마음 속 깊은 사랑과 감사와 위로를 한꺼번에 전해줄 것입니다. 그런 포옹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당신의 가족입니다.”
눅 15장에 아버지와 돌아온 탕자가 만나는 장면은 언제나 감동적입니다. 재산을 낭비하고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거지로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절)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달려갑니다. 아들을 가슴으로 안아줍니다. 입을 맞춥니다.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믿었기에 탕자였던 아들이 다시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평생 동안 세 가지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가장 값진 시간은 언제인가?” 그는 정답까지도 말해주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지금 그대와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그대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가장 값진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가장 값진 바로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한 자녀를 가슴으로 꼭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자녀로 양육하려면
3. 축복해야 합니다.(16하)
16절 하반절,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행복한 자녀로 양육하려면 자녀에게 축복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축복기도 하는 것은 부모님의 특권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기도를 받으려고 형으로 변장할 정도였습니다. 축복에 대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기도대로 야곱이 복을 받았습니다. 자녀를 위해 축복하는 아버지의 기도가 권세 있습니다. 요셉도 축복기도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기 전에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예화)
매월 둘째주 토요일에 ‘3대가 함께 하는 특별새벽기도회’가 있습니다. 예배 후에 자녀들에게 안수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매월 빠짐없이 자녀들과 함께 오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주의 종이 안수하는 축복기도를 받으려는 사모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존 스미스란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좋은 습관이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하고 강력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따뜻한 추억일 것이다.”
습관 중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말씀 읽고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줄 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 교육이 되리라 믿습니다.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과 더불어 부모가 자녀에게 축복기도 하는 좋은 신앙의 추억을 간직하게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쩌 박사는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본보기, 둘째도 본보기, 셋째도 본보기’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이 본을 보이는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신앙과 삶으로 본을 보이면 자녀들은 닮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용납하시고 축복하신 어린이의 특징은 겸손, 의존, 믿음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천국에서 큰 자로 그리고 행복한 자녀들로 양육하려면 용납해야 합니다. 포옹해야 합니다. 축복해야 합니다.
이런 성도님과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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