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 반 동안 영국을 이끌었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8일 세상을 떠났다. 영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인 대처는 비대(肥大)해진 노동조합 세력에 휘둘려 파업 상시화(常時化)와 복지 지출 과잉으로 경제 후퇴와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던 영국을 구출해냈다. 영국은 그의 집권 기간을 거치며 '영국병(英國病)'을 떨쳐내고 새롭게 태어났다.
대처는 영국병을 회피하거나 지연시키지 않고 문제와 정면 대결한다는 원칙으로 풀어나갔다. 당시 영국은 국민 절대다수가 나라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주체로 탄광 노조와 탄광 노조위원장을 꼽을 정도였다. 여러 명의 총리가 노조의 무한 파업에 맞서려다 정권을 잃거나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대처는 탄광 노조가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에 저항하며 1년간 총파업을 벌였을 때 당내에서도 노조와의 타협을 권유했지만 끝내 굴하지 않고 맞서 탄광 노조의 후퇴와 노조위원장의 사퇴를 이끌어냈다.
대처는 과잉 복지와 그로 인한 방대한 재정 적자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과 '정부가 해줄 수 없는 것'을 국민에게 설득하며 과잉 복지 속에서 상실된 자조(自助)와 자립(自立)의 사회적 가치를 회생(回生)시키는 쪽으로 경제정책을 폈다. 그는 작은 정부,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 전면적 시장 개방 등 자유 경쟁과 시장경제를 촉진하는 정책을 밀고 나가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과 맞물리면서 1990년대 호황을 선도해 신자유주의의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대처는 '철(鐵)의 여인'이란 별명에 걸맞게 주권과 영토를 지키는 데는 물러섬이 없었으면서도 미국과 확고한 유대 관계를 토대로 동서 냉전 해체에 일역(一役)을 해냈다. 1982년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섬을 점령하자 즉각 선전포고로 응수하며 미국의 전폭적 지원 아래 아르헨티나를 패퇴시켰다. 그는 또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서 대화 상대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반대 세력의 도전을 받던 그를 지원해 결과적으로 냉전 해체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대처 역시 내정(內政)과 외정(外政)의 계속된 성공으로 정권 말기에 이르러선 독선(獨善)으로 흘러 당내 반란을 불러왔고, 그의 경제정책과 외교정책의 득실(得失)은 지금 반대 세력에 의해 도마 위에 올라 재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대처는 집권 기간 자신이 속한 보수당의 체질을 바꿔 놓았을 뿐 아니라 당내 극단 세력에 떠밀려 극좌 노선을 걷던 반대 당인 노동당까지 정치적 생존을 위해 중도적(中道的) '제3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도록 해 영국 정치를 '대처 이전(以前)'과 '대처 이후(以後)'로 갈라놓았다. '영국병 주치의(主治醫)'였던 대처의 타계(他界)는 '원칙의 리더십'이 갖는 힘을 우리에게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조선일보 사설, 201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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