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기타자료

헌재 소장과 로펌

하마사 2013. 4. 9. 15:45

데이비드 수터 미국 연방대법관은 2009년 일흔 나이에 물러나 고향 뉴햄프셔로 돌아갔다. 그는 농가에 살면서 틈틈이 뉴햄프셔주 대법원이 지원하는 공립학교 사회교육위원회에 나가 봉사활동을 한다. 학생들에게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과 지식을 가르친다. 그는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대소사를 논의해 결정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때 배운 민주주의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어 사회교육 봉사에 나섰다고 했다.

▶1981년 여성으론 처음 연방대법관이 된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일흔여섯 때인 2006년 대법관직을 떠났다. 치매 걸린 남편을 보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는 가끔 우리 고등법원 격인 연방항소법원에 나가 법관 셋으로 구성된 합의부의 한 명으로 재판에 참여한다. 정부·의회·학교를 찾아 사법권 독립과 법치주의의 가치를 알리는 사법부 명예대사로도 활동한다.

▶미국 대법관은 비행(非行)을 저지르지 않는 한 종신 임기가 보장돼 도중에 사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어쩌다 그만둬도 우리처럼 로펌에 들어가거나 변호사 개업을 하는 일은 없다. 대개 가족과 함께 살며 사회를 위해 일한다. 일본 대법관은 임기가 따로 없고 일흔이 정년이다. 정년으로 퇴임하면 주로 회고록을 쓰거나 대학 강의를 나간다. 일본에선 판사 출신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게 오랜 관행이다. '전관예우' 같은 말 자체가 없다.

▶1990년 이후 물러난 우리나라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70여명 가운데 퇴임 뒤 로펌 취직이나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대법관 출신이 가는 로펌은 대부분 매출 10위 안에 드는 곳이다. 어쩌다 대학이나 고향으로 가겠다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나오면 뉴스거리가 되는 세상이다. 대법원장이나 헌재 소장을 지내고도 로펌으로 간 사람이 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낸 답변서에서 "헌재 소장이 되면 임기 끝난 뒤 로펌 취업이나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헌재 소장은 대통령, 국회의장에 이어 대법원장과 함께 3부 요인에 든다. 대법원장과 헌재 소장까지 로펌을 마다하지 않으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은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사법부 최고위직이 그러는데 일반 판사라고 로펌행을 머뭇거릴 리도 없다. 전관예우 악습을 없애려면 대법관·헌재재판관이 퇴직 후 로펌 취업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 박한철 후보자의 약속이 법관 퇴직 후 새로운 관례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