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청이 4일 새벽 5시 50분쯤 서울 덕수궁 정문 옆 담벼락에 쳐놓은 불법 농성촌 천막을 철거했다. 작년 4월 5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가 분향소를 차린 지 1년 만이다. 천막은 작년 11월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용산 참사 진상 규명, 원자력발전 폐기 촉구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저마다 텐트를 설치해 3개로 늘었다. 농성자들은 여기서 라면을 먹기도 하고 앞이 열린 텐트 속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이 바람에 외국의 관광객들이 빠짐없이 찾는 서울의 얼굴 시청앞광장과 하루 세 번 수문장(守門將) 교대식이 열리는 덕수궁 앞은 난장터를 방불케 했다. 천막은 지난달 화재로 2개가 불타고 하나가 남아 있었다. 당시 화재로 국가 문화재인 사적(史蹟) 124호 덕수궁의 돌담 서까래가 그을렸다. 중구청은 10분 만에 철거를 마치고 그 자리에 가로 20m 세로 5m 화단을 만들었다.
철거 소식을 듣고 시위대 300여명이 몰려왔다. 시위대는 화단 묘목을 뽑아 내던지고 경찰에 흙·돌멩이·물병을 던졌다. 일부는 밤늦게까지 천막을 다시 치려고 시도하며 천막 자재를 실은 차량을 인도(人道) 위로 돌진시키기도 했다. 5일에도 일부 시위대는 종일 화단 앞 인도에 돗자리를 깔고 경찰을 마주 보며 확성기를 틀고 구호를 외쳤다.
요즘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현장 입구에선 또 다른 시위꾼들이 의자와 통나무로 바리케이드를 쌓아놓고 공사를 방해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공사 차량들은 경찰 도움을 받아 낮에는 한 시간, 밤엔 두 시간에 한 차례씩 겨우 통행하고 있다. 숫자는 50명도 안 되지만 공권력은 여전히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움츠러져 있다.
불법 천막 농성장이 전국에 35곳 있다. 100일 넘게 농성하는 데가 19곳, 가스통 같은 인화 물질을 놔둔 데도 16곳이나 된다. 공권력과 마찰이 있는 곳엔 거의 예외 없이 직업 시위꾼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중 21곳에 대해 관할 경찰이나 지자체가 자진 철거를 요구하는 형식적 공문만 보냈을 뿐 실제 법 집행에 나선 곳은 거의 없다. 시위를 하는 소수 때문에 다수 시민이 피해를 보아야 한다면 공권력이 누구를 보호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서울 중구청은 이번에 구청 직원 대부분에게 철거 계획을 비밀로 했다고 한다. 철거 계획이 새 나가면 농성자들이 더 난폭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공권력의 현주소가 이렇다.
-조선일보 사설, 20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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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시위와 농성의 고리를 끊으려면
이재교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변호사
서울 중구청이 지난 4일 새벽 대한문 앞 쌍용차 농성천막을 전격 철거했다. 작년 말부터 농성촌을 철거하겠다는 행정 대집행을 통고한 후 집행을 미루다가 지난 3월 8일 철거에 나섰지만 민주노총 노조원, 국회의원, 시민단체 회원 등의 저지로 실패하고 3월 26일에도 철거를 시도했으나 충돌을 우려해 중단했는데, 이날 마침내 철거한 것이다.
용산 참사가 농성자들이 도로에 화염병을 던지자 경찰이 조급하게 해산을 시도하다 일어난 비극이라는 사실을 돌이켜 볼 때 중구청이 무리한 철거를 자제하며 별 사고 없이 철거를 집행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농성자들의 위법한 농성촌 천막을 철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임에도 이를 집행하는 데 1년이나 소요된 것은 실상 공권력이 법을 어긴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중구청은 직무를 유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 미관은 차치하고, 시민의 교통에 큰 장해가 된 것은 물론이고, 지난달 화재로 인해 대한문이 불에 타버릴 위험이 있었다. 천막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농성자나 시민이 죽거나 다쳤으면 어쩔 뻔했는가. 지난 1년간 대한문 앞에서 대한민국의 법은 농성 천막 밑에 깔려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불법 시위를 막는 효율적인 방법의 하나는 불법 시위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불법 시위나 농성이 계속되는 것은 불법 시위자들의 요구를 들어준 탓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위 '떼법'이 통하는 한 불법 시위가 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표를 얻겠다고 불법 농성자들을 격려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지난해 대선 기간 중 몇몇 대선 후보가 대한문 앞 농성촌을 찾는 장면이 보도되었는데, 헌법과 법률에 따라 대통령직을 수행하겠다는 대선 후보들의 행보로서 과연 적절하였는지 모르겠다.
불법 시위를 근절시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엄정한 법 집행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대한문 앞 농성자들과 같이 목소리 큰 집단에는 법을 느슨하게 집행하고, 예컨대 힘없는 노점상에게는 엄격하게 집행하는 경향이 강했다. 법이 경직되면 안 되겠지만 돈이나 권력이 있는 집단, 목소리 큰 집단에는 관대하여 고무줄처럼 자의적이어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악법 중 최고의 악법은 '고무줄법'이라는 말이 있다. 자의적인 법 집행이 가장 나쁘다는 말이다.
지난 4일 농성자들이 다시 천막을 치고 농성하겠다면서 재진입을 시도하자 중구청이 이를 저지하면서 더 이상 불법 농성을 방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농성자들 사이에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 연출되었다. 크게 다친 사람이 없는 듯하여 다행이지만 농성용 천막을 실은 차량이 인도로 돌진하는 등 사고 직전까지 치달았다. 중구청의 불법 농성 저지 의지는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 만약 중구청의 의지가 꺾인다면 대한민국의 법이 꺾이는 것이다.
이제 정부나 국가기관이 불법 시위대의 요구에 응하지 않음은 물론 시민도 불법 시위대의 주장에 눈길도 주지 않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 시위대의 주장이 옳더라도 그 주장하는 방법이 불법이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정착될 것이다. 그리고 공권력은 불법 시위에 대하여는 주장하는 내용이 옳든 그르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면 된다. 이렇게 될 때 우리 사회에서 불법 시위·농성의 악순환이 끊어질 것이다. 그때 비로소 기초 질서가 정착된 성숙한 사회에서 시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 터이다.
-조선일보, 201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