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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최대 憂患이 돼 가는 '아베의 일본'

하마사 2013. 4. 25. 14:59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3일 일본 국회에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침략에 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며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어느 쪽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베는 22일 국회 답변에서도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면서 "전후 70년이 되는 2015년 아시아를 향한 새로운 담화를 내겠다"고 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3월 15일 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50주년을 맞아 당시의 무라야마 총리가 담화를 통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諸國)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의심할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했던 것을 말한다.

아베는 총리 취임 전부터 일본군이 한국·중국·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여성들을 성노예로 동원했던 사실을 인정한 1993년의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과거사를 반성한다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해 왔다. 고노·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 기간 일본군에게 직접 학살당하고 전쟁의 최일선에 총알받이로 내몰리고 지하 수백m 탄광 막장에 끌려가 강제 노동에 투입됐다가 목숨을 잃었던 수백만 피해 국민 입장에선 결코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 가면서 일본과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계기라는 차원에서 이 두 담화를 받아들였다. 아베의 일본은 이제 두 담화조차 부정함으로써 과거를 반성하고 평화 국가를 다짐하는 토대 위에서 재출발한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해 버렸고, 한국·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 평화와 상호 존중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생각이 없다고 선포하고 나선 것이다. 아베는 23일 밤 독도·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관련 전문가 회의를 열어 "일본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정확하게 침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시해 역사 부인과 함께 영토에 대한 야욕(野慾)도 노골화했다.

아베 총리가 말한 '침략'이 일본 제국주의가 벌인 여러 침략 전쟁 가운데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본은 1894~1895년 청나라와 벌인 전쟁을 통해 타이완을 차지했고, 이어 1910년 조선을 강제 병합했다. 일제는 이어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국과 전면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1941년 12월 8일 진주만을 기습 폭격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감행했다.

아베의 발언이 한·일(韓·日) 강제 병합을 겨냥한 것이라면 한·일 관계에 내일은 없다고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우리 민족을 절멸(絶滅)의 위기로 몰아넣고, 한반도의 분단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오늘 우리 민족이 겪는 고통의 근원을 만들었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 지배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강변하는 것은 일본 식민지 지배의 사생아(私生兒)인 북한이 동북아 전체를 핵 공황(恐慌) 사태로 몰아넣는 핵 개발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닮았다.

아베가 중국 침략과 그 연장선상에서 전개된 2차대전을 일제의 침략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라면 1945년 2차대전 종전 후 만들어진 세계 질서 전체를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은 2차대전 후 나치 독일과 함께 국제 전범(戰犯) 재판에서 전범 국가로 처벌됐다. 일본의 전후(戰後) 경제 부흥과 이를 가능케 한 미·일(美·日) 동맹은 일본이 침략 전쟁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이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바탕 위에서 성립됐다. 아베는 지금 이것을 부인하고 있다.

독일 총리가 아베처럼 독일 의회에서 나치의 침략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유럽연합(EU)은 당장 와해(瓦解) 위기를 맞았을 것이고, 독일은 세계 각국의 지탄 속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나의 유럽'을 향한 반세기 넘는 유럽의 통합 과정은 독일이 자신들의 과거사를 직시(直視)하고 진심으로 사죄했기에 가능했다. 아베는 왜 독일 지도자들이 종전(終戰)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패전 기념일을 맞을 때마다 근린 각국을 향해 과거사를 반성하고 자기 국민을 향해 역사의 무한(無限)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지 생각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가.

아베와 집권 우익 세력의 숙원은 일본의 현 평화헌법 개정이다. 아베는 70%를 웃도는 총리 지지율로 보아 지금이 그 적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베가 보여준 역사관으로 보면 일본의 평화헌법 개헌 시도는 한국과 중국 등에 대한 직접적 적대 행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고 군사 강국으로 뻗어나가는 상황에서 세계 3위의 경제 대국 일본의 군사력을 영원히 묶어두는 것은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 그런데도 일본에 이 불가능한 족쇄를 계속 채워두려는 것은 일본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아베는 일본에 대한 불신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중국의 전면 부상(浮上)과, 과거사를 부정하며 재무장으로 치닫는 일본 변수까지 더해진 다차원(多次元) 방정식 속에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내며 주권과 영토를 지켜나가야 할 상황을 맞이했다. 북핵(北核)은 김일성-정일-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체제가 막을 내리면 끝나게 되는 시한부 문제이지만 지금의 경로(經路)로 보면 일본은 점점 북한보다 더 지속적이고 심각한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교란 요인으로 변해갈 듯하다. 우리는 한반도에 드리운 이 대형 고난도(高難度) 안보 방정식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는가를 자문(自問)해 봐야 할 때가 됐다.

 

-조선일보 사설, 201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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