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반대 정치세력에 '책 장례식' 당해
보수정권에 살가웠던 건 아닌데 상처는 입었지
세금 내고 군대 가고, 나라에 충성한 우리 세대
'행동 않는 양심' 취급하니까 대변해야겠다 결심
나에게 보수란, 현재의 완전성을 믿지 않는 것
그리고 지난 세대의 시간과 땀을 잊지 않는 것
작가 이문열(65)에게 상반된 감정이 있었다. 하나는 인간적 연민. 지금의 20~30대는 기억이 없거나 희미하겠지만, 그는 '책 장례식'을 당했다. 12년 전인 2001년 11월 3일. 작가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소위 '이문열 돕기 운동본부' 회원 30여명이 그의 책 수백 권을 관(棺)의 형태로 묶어 '운구'한 것이다. 열 살 남짓 소녀는 책 표지를 모아 만든 '영정 사진'까지 들었다.
또 하나의 감정은 정치적 불편함. '책 장례식' 전후, 그는 격정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계속해왔다. 좌·우파를 떠나, 작가에게서 작품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불행한 일일 것이다. 그는 10년 넘게 보수 이데올로기의 수호자, 적대 세력 표현을 빌리면 '수구꼴통'으로 낙인찍혔다. 작가로는 치명적인 일. 문학적 소출은 줄어들었고, 책에 대한 수요는 급감했다.
◇똑같은 상황, 가만있겠나
―지난 10년, 후회한 적 없나.
"후회, 분명히 한 적 있다. 보수 정권에 살가운 애정도 없으면서 피해는 엄청나게 봤으니까. 그런데 자신 없는 것은,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 내가 가만있겠나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짓 또 하지 싶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5060세대의 존재감이 아니었겠나."
- 작가는 대표작으로 평가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정치적 입장까지 고려해서 봐야 하는 걸까. 이문열은“바라건대 잘 쓴 것을 먼저 봐 줬으면 좋겠다”면서“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부디 외눈박이로 보지는 말았으면 한다”고 했다. /부악문원(이천)=이명원 기자
― 5060의 존재감이 아니라, 기득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는 3선 개헌 반대(박정희 대통령 연임 반대)로 데모를 본격화했던 세대다. 하지만 데모를 업(業)으로 삼은 친구는 5% 정도고, 많게 봐서 50%가 심정적 동조였다. 그런데 80년대 세대는 업으로 삼은 비율이 10%, 거리에 나간 비율이 거의 100%였다. 우리 세대가 제일 억울했던 것이, 어떤 벌레 취급을 받는 느낌이랄까. (당시 정권에) 동조하기보다 참았던 것도 있는데, 세금도 다 내고, 군대도 다 가고, 나라에 충성하며 그렇게 살았는데, 이번 선거에서 보니까 자기네끼리 10%의 민주화 영웅을 만들려고 90%의 죄 없는 윗세대들을 '행동하지 않는 양심'으로 만들더라."
― 예술가들은 대개 진보 아닌가. 이번 선거에서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문인은 거의 없는데.
"도대체 왜 예술가가 진보적이어야 하지? 우리는 예술가지만,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유권자다. 우리 유권자들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의 비율을 6:4에서 5:5 범위 안에서 조정한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평균 7이 야당 지지다. 이번에는 거의 9:1, 아니 김지하 선생을 제외하면 10:0 느낌이더라. 그런데 희한하게도 투표를 하고 보니 48:51이더란 말이지."
◇진보가 꼭 약한 세력 편이라고?
―야당 지지가 아니라, 소수자와 소외자, 가난한 자의 편에 예술가들이 섰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아주 우스운 말이다. 어느 세상이건 자기보다 센 놈들이 자기를 억누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게 마련이다. 이걸 이용하거나 아첨하는 무리가 있다. 동양에서 진보와 보수가 가장 신랄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싸운 게 중국 송대(宋代)의 신법과 구법 싸움이었을 것이다. 왕안석과 사마광, 혹은 소동파의 싸움이다. 당시 문인들이 다 진보적이었다면 다 왕안석 편을 들었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진보를 한다는 게 꼭 약한 세력을 돕는 것인지는 모른다."
- 7일 방송되는‘북잇수다’이문열 편은 작가의 집필실인‘부악문원’에서 촬영했다. 왼쪽부터 이문열 작가, MC인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손미나씨, 표정훈 출판평론가. /이명원 기자
―다시 한 번 위험한 발언으로 보이는데.
"가령 1등부터 100등까지 있는 사회를 가정해보자. 사회 변혁이 이뤄진다면 산술적으로 51등 이하가 이득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20등 이하 사람들은 다 사회가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늘 자기 앞을 보니까. 변혁을 바라는 사람이 늘 다수다. 그러나 이건 역사적 허수일 뿐이다. 다수가 집단적으로 하는 것이 늘 옳은가. 이 역사적 허수에 아첨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고."
◇"내가 상처 난 병아리구나"
―12년 전 '책 장례식'에 대한 스스로의 정리는.
"처음에는 솔직히 가볍게 여겼다. 그런데 아니더라. 병아리 여럿을 키우다 보면 조금 탈 난 병아리가 있게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면 한 마리가 그 탈을 찾아내고 쪼아대고, 피가 나고, 나머지가 모두 쪼아대서 죽는다. 어릴 적 본 그 광경이 생각나면서 기분이 나쁘기 시작했다. 아, 나한테 벌떼같이 덤비는구나. 격렬히 화를 내면서 한 3년을 보냈다. 그런데 어떤 시기가 지나니 굉장히 피곤하더라. 화를 내는 것도 긴장이고, 그 원리에 따라 뭘 계속하는 것도 피로하지 않나. 그래서 2005년에 미국에 가서 한 3년 있었다.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어선지, 한국에 있을 때처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화를 내는 그런 상태는 벗어났다. 또 3년이 지난 지금은 인터넷의 특성 같은 걸 많이 이해하게 됐고, 소위 내 편에서도 미디어를 악용을 하는 걸 보게 됐다. 결국 주고받는 것이로구나, 이래서 완화가 된 부분이 있다."
2001년 '책 장례식' 이전, 그는 이미 200자 원고지 6만장을 쓴 작가였다. '삼국지'처럼 역(譯)을 제외하고도, 작(作)으로만 대략 4만장. 유례없는 생산성이었다. 하지만 '책 장례식' 후 동료 문인은 그를 외면했고, 그의 새 작품들은 이데올로기의 렌즈를 먼저 통과해야 했다.
이번 선거 결과가 자연인 이문열에게 '위로'가 됐냐고 물었다. 그는 "솔직히 지난 10년 동안 국민에 대한 신뢰가, 이거 아니다, 싶을 만큼 깨져 있었는데, 그게 회복됐다"면서 "우리 국민이 굉장히 균형 감각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유가 오면, 보수의 개념부터 정리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문열의 보수주의'를 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현재의 완전성을 믿지는 않는 것.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에 대해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를 가지는 것. 현재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들인 시간, 노력, 정성, 성의를 잊지 않는 것."
-조선일보, 20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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