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강수진 자서전 내
보잘것없는 하루하루 반복해 대단한 하루 만들어 낸 것
책 쓰는 일, 공연 100번 맞먹어… 사실 무대 밖에선 상당한 길치
은퇴요? 최소한 오늘은 아냐
발레리나 강수진(46·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2005년 4월 독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만찬에 초대됐다. 자리를 못 찾아 허둥대다 지나가는 '웨이터'를 붙잡아 안내를 받았다. 그 남자는 국방부 장관이었다. 만찬이 끝나고 강수진은 대기 중인 자동차 문을 열었다. 사방에서 거구의 경호원들이 튀어나왔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 차였다.
몇 바퀴 돌고 점프를 거듭해도 별 오차 없이 정확한 자리에 착지하는 수석 무용수도 무대 밖에서는 젬병이다. 자서전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인플루엔셜) 출간을 앞두고 모국에 온 강수진은 "공연장을 나오면 내비게이션이 망가진 사람처럼 방향 감각을 잃곤 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발'을 가진 발레리나여서일까. 길치라는 고백조차 빛나는 훈장처럼 들렸다.
21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강수진은 "오늘도 새벽 3시에 깨 두 시간 동안 스트레칭을 하고 개인 훈련을 마쳤다"고 했다. 지난 30여년간 하루는 늘 그렇게 시작됐다. 독일에 있다면 이날도 오전 9시 50분 집을 나서 연습이나 공연을 하고 밤 11시에 귀가했을 것이다. 책에는 "내 유일한 경쟁자는 '어제의 강수진'"이라고 썼다.
"사람들은 기똥찬 성공 비결을 듣고 싶어하지만 나한텐 그런 게 없어요. 사실 지루한 반복처럼 보일 겁니다. 나는 내일을 믿지 않아요. 오늘 하루, 똑같은 일과를 되풀이하면서도 조금 발전했다고 느끼면 만족해요."
- 강수진은 “난 꿈꿔본 적이 없다. 목표 정하고 ‘언제까지 저걸 못하면 난 죽어’ 하는 식이었다면 벌써 발레를 접었을 것이다”라며 “당장 오늘 할 일을 잘해야 행복하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강수진은 유명한 발레리나 중 현역 최고령.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느냐' 물었더니 "은퇴는 없다. 최소한 오늘은 아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강수진에게 가장 엄격한 비평가는 강수진이고, 스스로 에너지가 떨어졌다 판단하면 그날로 내려온다"고도 했다. 이 치열한 여인에게 행복이란 뭘까.
"글쎄요. 두 발 뻗고 자는 것 아닐까요. 남한테 나쁜 짓 안 하고 자기한테 솔직하면 됩니다."
발레는 남녀가 함께 호흡해야 좋은 춤이 나오는 예술이다. 강수진은 "파트너에도 '그냥 파트너' 'OK 파트너' '베스트 파트너'가 있다"면서 "내가 남에게 베스트 파트너가 되려고 하면 나도 베스트 파트너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내일의 강수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오늘처럼 하되 조금만 더 나아져라"였다.
책을 쓰는 건 '공연 100번'만큼 힘든 일이었다. 숱한 인터뷰를 했지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기사에 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에 보란 듯이 그 문장이 새겨져 있다. "강수진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루하루를 반복하여 대단한 하루를 만들어 낸 사람이다."
-조선일보, 201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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