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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경호원들의 師父'장수옥 특공무술협회 총재

하마사 2013. 1. 12. 10:46

그가 만든 무술,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켰다

1978년 특공무술 창시
"北 격술 이길 무술 개발"軍의 요청 받고 만들어
朴대통령에게 극찬 받고 경호실·특전사 등에 보급

호랑이 사부로 유명
25년간 대통령 5명 보좌 TV로 경호 장면 보다가
방심하는 요원 발견땐 곧바로 무전 쳐서 혼쭐

 

 

무인(武人)의 기(氣)는 눈에서 나오고, 뼈에 새긴 결기는 육신이 쇠락해도 변하지 않나 보다. 칠순을 바라보는 장수옥(66)의 부릅뜬 눈은 흡사 호랑이였다. 엉덩이가 바닥에 닿을 듯 낮은 자세를 취한 노장은 당장에라도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상대의 명치를 가격할 태세다. 단신(短身)의 작은 몸집 어디에서 폭풍의 기운이 솟구치는지. 소심한 구경꾼들의 숨이 멎었다.

장수옥 대한특공무술협회 총재는 청와대 대통령 경호원들이 '사부(師父)'로 모시는 사람이다. 그가 1978년 창시한 '특공무술'은 청와대 경호실은 물론 육·해·공군, 특전사 등 전군에 보급됐다. 손바닥 하나로 적의 급소와 혈을 타격하는 평수법(平手法), 3m70㎝ 높이로 날아올라 상대의 명치를 가격하는 고축차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1980년부터는 청와대 경호실에 입성, 대통령 경호원들의 무도 사범으로 활약했다. 장수옥의 특공무술 시범을 본 뒤 "전군에 보급하라"는 명을 내린 박정희부터 치면 김대중까지 5명의 대통령을 보좌한 셈이다.

올해는 청와대 경호처가 설립된 지 만 50년 되는 해. 대한민국 최고 반열의 무예인이자 대통령 경호의 산증인인 장수옥을 만났다. 그는 "미국의 경호 역사가 150년이라지만 대한민국의 경호력(力)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다.

 

최강의 무인이지만 장수옥은“싸움은 피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했다. 부득이 맞서야 할 상황이면“눈으로 상대를 먼저 제압하라”고 했다. 실제로 그에게 대련을 청한 강호의 무인들은 싸워보기도 전에 그의 호랑이 같은 눈빛에 두 손을 든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경호가 1%만 실패해도

―연세가 예순여섯인데도 정정합니다.

"아, 나이는 적지 말아요. 꼰대 소리 듣기 싫습니다(웃음)."

―건강을 어떻게 유지합니까.

"지금도 청와대에서 했던 스트레칭 동작을 매일 아침 한 시간씩 해요. 특히 무릎운동. 관절이 튼튼해야 발차기를 하니까. 순발력은 여전한데 지구력은 떨어졌어요. 청와대 처음 갈 때 고축차기로 3m70㎝ 높이의 송판을 깼지요. 요즘은 3m밖에 안 될 거예요."

―여성 대통령이 탄생해서 그런지 여성 경호원들 활약이 눈에 띕니다.

"남성 대통령 때에도 여성 경호원들 있었어요. 훈련을 남자랑 똑같이 시켰지요. 내가 가르친 요원만 30명쯤 될 거예요. 벌써 50줄 된 사람도 있고. 경찰서장 하는 친구도 있지요."

―호랑이 사부였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 따라 해외 출장 다녀온 경호원들은 다음 날 쉬게 해주는데, 나는 여독이 풀리지도 않은 요원들을 바로 불러내 체력 측정을 시켰어요. 내가 밉겠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게 경호원입니다. 총을 차고 사는 사람들이니 사소한 일로도 불의의 사고를 일으킬 수 있지요. 경호 기술보다 중요한 게 정신무장이에요. 경호가 1%만 실패해도 우리의 국기(國基)가 흔들립니다."

―대통령을 직접 경호한 건 아니지요?

"경호원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지요. 총을 든 그들이 무서워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니까. 사부는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돈이 있는지 없는지 제자들에게 보여선 안 된다는 게 내 철칙이었어요."

―TV로 대통령 경호 현장을 지켜보다가 방심하고 있는 요원을 발견하면 바로 무전을 쳐서 벼락을 내렸다면서요?

"딴생각에 빠진 요원은 눈빛만 봐도 알지요.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요. 방탄복을 입어 그렇기도 하지만 너무 긴장해 있으면 유사시에 날렵하게 대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 훈련해야 합니다. 상황 발생시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이게끔.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만 해도 그래요. 경호원이 관중석을 주시하다가 움직이는 물체가 있으면 달려가 바로 제압해야 하는데, 엉뚱한 곳을 보고 있다가 사고가 발생하니 다시 엉뚱한 데다 총을 쏘았지요. 문세광이 튀어나올 때까지 뭘 하고 있었느냐는 겁니다. 경호원은 대통령 옆에 폼 잡고 서 있으라고 세워놓는 게 아닌데."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우리 경호력이 급속히 발전했다고 합니다만.

"경호의 중요성을 알게 된 전두환 대통령 때부터 노출 경호에서 은밀 경호로 바뀌었습니다. 그전에는 감색 양복에 파란 넥타이, 8대2 가르마가 대통령 경호원의 상징이었는데 그걸 감추기 시작한 거죠."

―경호원이라는 직무에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습니까?

"잔머리가 발달한 사람보다는 우직한 사람이 좋지요. 신입요원 때 상담을 해보면 알아요. 머리만 좋아서 몇년 뒤 몇급 공무원이 돼야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처세를 계산하는 아이들은 중간에 '빵꾸'가 나기 쉬워요.

공부는 좀 못했어도 우직하니 무도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낫지요. 문민정부 들어 경호원을 공채로만 뽑던데 장단점이 있어요. 퇴직할 때 경호실장더러 그랬어요. 2년에 한 번은 무도하는 아이들을 특채로 뽑아보라고."

◇나의 아내 '철선녀'

장수옥의 청와대 입성기는 절판된 그의 자서전 '대통령 경호원들의 영원한 사부'에 나와 있다. 강호의 고수로되 당장 내일 먹을 쌀이 없을 만큼 가난했던 그에게 606특공부대 요원들이 찾아온 게 1978년 여름이다.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사건'(1968년)에 자극받아 국내 최초의 대테러 부대로 창설된 606부대는 북한의 격술(擊術)을 능가할 새로운 무술을 개발하고 있었고, 그 적임자로 장수옥을 택했다. 신기(神技)에 가까운 무술로 특전요원들을 놀라게 한 무림의 고수는 합기도와 태권도를 바탕으로 한 특공무술을 개발했고, 606부대의 최고 책임자였던 노태우 당시 경호실 작전차장보, 차지철 경호실장에 이어 박정희 대통령에게까지 시범을 보인다. 장수옥의 특공무술이 대통령을 사로잡은 데는 시범에 함께 참여한 그의 아내 김단화(66)의 역할도 지대했다. 국선도 무예인으로 한때 '철선녀'로 이름을 날린 김단화는 이마로 7㎝ 두께의 송판을 깨고, 온몸을 10겹으로 휘감은 철사를 끊어내는 괴력으로 박 대통령과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한 박근혜를 놀라게 했다.

―책에 보니 606부대에서 호출받을 당시 홍콩에서 영화 출연 제의도 받았더군요.

"배우 될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집에 쌀이 없으니 도둑질만 아니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응했지요. 이소룡을 이을 무술스타로 키워주겠다기에 전속 계약을 했는데, 그때 마침 606부대원들이 찾아온 겁니다."

―갈등했겠네요.

"전혀요.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인데, 시나리오대로 따라 하는 액션배우에 비교가 되겠습니까. 다만 홍콩 가서 딴 짓 할까봐 집사람 요청으로 정관수술을 했는데, 실밥도 풀기 전에 606부대에서 무술시범을 보이는 것이 고통스럽긴 했습니다(웃음)."

 

철사도 끊는‘철선녀’이지만 김단화는 내조의 여왕이었다. “실세는 나였지만 자식들 앞에선 가장의 권위를 최고로 높여주었다”고 했다.

―특공무술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태권도, 합기도 등 여러 무도에서 뽑아낸 장기에 호흡법을 결합시킨 무술입니다. 근접전에서 일격 필살하려면 강력한 무술이 필요하지요. 다른 무술의 정권지르기나 형(形-품세)은 근육의 힘을 지체의 끝으로 모아주는 게 기본이지만, 특공무술은 주먹지르기를 해도 손끝에 힘을 주지 않습니다. 팔을 뻗는 순간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도록 구성돼 있지요. 특히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력은 강력합니다. 장풍의 일종인 평수법은 특공무술의 절정이지요."

―특공무술이 북한의 격술을 이깁니까?

"북한 격술의 권위자를 국정원 소개로 만난 적이 있는데, 우리 특공무술을 보고 감탄하더군요. 러시아, 중동지역 등 경호 선진국이라는 곳에서도 비밀리에 견학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시범을 보이는 자리에 부인은 왜 간 겁니까.

"인왕산에서 내려온 철선녀라면 70년대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국내 TV는 물론 일본, 베트남 같은 국제무대를 누비며 무술 공연을 단골로 했지요. 흥행사라고 할까요. 박정희 대통령도 아내의 박치기 시범에 감탄했습니다. 차지철 실장이 두 쪽으로 갈라진 송판을 들고 대통령에게 달려갔을 만큼. 대통령이 오셔서 악수를 청했지요. 집사람에게 '웬 여자가 이래 힘이 세? 이마는 다치지 않았어?' 하시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경호원의 이름을 불러준 대통령

―그해 10월에 박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청와대 경호처에 들어간 건 전두환 대통령 취임 이후였지요?

"박 대통령 때처럼 청와대 연무관에서 특공무술 시범을 보이자 바로 5급 경호공무원으로 채용하더군요. 더는 밥 굶고 살지 않아도 되니 집사람이 제일 좋아했지요. 직장생활은 난생 처음인 데다 바로 1년 전에 대통령이 측근에게 시해되는 사건이 있었던 터라 출입증을 달고 청와대에 들어설 때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다' 각오를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과는 구면(舊面)이었겠습니다.

"박통 시절 606부대에서 뵌 분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죠. 딸 소영씨도 내 제자예요. 먼저 운동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해왔지요. '영애'라고 호칭했더니 대뜸 '그냥 소영이라고 부르세요' 하더군요. 아버지와 포옹도 스스럼없이 하고 내숭이라곤 없는 완전 미국식 처녀였어요."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은 어땠습니까.

"총소리가 나도 놀라지 말라고 경호실장이 미리 말씀 드렸는데도 시범 초반에 쥐었던 주먹을 시범이 끝날 때까지 펴지 못할 만큼 무서워하셨어요.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아내에게 무예를 배운 인사도 꽤 됩니다. 김무성, 정병국, 이병석 (국회)부의장까지.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시범을 보고 나서 경호에 대한 인식을 바꾸셨지요. 청와대 오기 전엔 경호실을 축소하겠다고 벼르셨다는데, 우리 시범을 보고 달라지셨어요. 나중에 들으니 김대중 대통령이 격투기를 상당히 좋아했대요. 비서관 말로는 이희호 여사와 리모컨을 갖고 자주 다퉜다고 하더군요."

―어느 대통령을 가장 좋아합니까.

"다들 매력 있고 훌륭하시지요."

―그래도 인간적으로 가장 끌리는 대통령이 있을 듯한데요.

"글쎄, 말해도 되는 건지. 나는 전두환 대통령이 제일 멋졌어요. 사나이지요.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전 대통령은 경호원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불렀어요. 막내 재만씨를 나에게 보내 특공무술을 배우게도 했는데, 대통령 아들이라 부담스러워 살살 가르치면 '나를 대통령이 아니라 학부형으로 생각하고 스파르타식으로 교육해달라'고 부탁하셨죠."

―책에 보니 백담사에 은둔하던 전두환 대통령 내외를 찾아갔더군요.

"나는 무인이지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니 상전에 대한 예의, 의리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이 키를 덮을 만큼 많이 왔는데 산길을 걸어올라 오는 우리 부부를 보고 경호원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10분만 뵙고 갈 테니 상부에는 보고하지 말아달라 부탁했지요. '저 빨간 다라이(고무통)가 내 목욕통이오' 하고 웃는 대통령을 보면서 권력 무상을 절감했습니다."

―정권이 여러 번 교체되었는데도 20년 넘게 청와대 사범 자리를 지켰습니다.

"청와대 비표를 받고 처음 출근하던 날 집사람이 내게 부탁한 말이 있어요. 자기는 돈 같은 거 필요 없으니, 퇴직하는 날 이 비표를 멋지게 반납해달라고 하더군요. 온갖 청탁이 오가는 곳인 만큼 뒤통수가 부끄럽지 않게, 무도인답게 나와달라고 했지요. '전라도'라고 청와대 다른 무도 사범들이 따돌리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같은 전라도라 사부님은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요원들도 있었지만 1%도 그분 도움받은 적 없습니다. 실력만이 정치 바람을 타지 않은 유일한 비결이었다고 생각해요."

◇둘 중 하나는 죽는다?

장수옥은 전북 김제 사람이다. 달리기는 언제나 1등이었고 철봉, 축구 실력도 뛰어났다. 초등학교 때 이미 교실 처마 밑에 달린 고드름을 발로 차서 떨어뜨리는 놀이를 했다는 그다. 중학 시절 서울역에 왔다가 야바위꾼들에게 돈 빼앗기고 두드려맞은 일 때문에 태권도와 합기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농이었던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 집안이 거덜나는 바람에 대학을 포기하고 도장(道場)을 연 게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이미 "족기(足技)는 전라도 장수옥이 최고"라는 얘기를 들을 때였다. 진흙 속에 묻힌 원석을 다이아몬드로 수련시킨 주역이 김단화다. 장수옥의 촌티와 뚝심에 반한 그녀는 결혼 후 오로지 내조를 위해 도복을 벗는다. 전라도·경상도 커플에 기독교·불교 부부이기도 한 이들의 '격렬한' 사랑 이야기다.

 

1979년 6월 청와대 연무관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특공무술 시범을 보인 뒤 악수하는 장수옥. 그 옆에 아내 김단화가 서 있다. / 대한특공무술협회 제공

―두 분을 보고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한국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누가 더 셉니까?

"싸우면 둘 중 하나는 죽겠지요(웃음). 신혼 때 말다툼을 하다 육탄전으로 번졌는데, 어머니가 방문을 열더니 혀를 차세요. '너 설마 쟤를 못 이기는 거냐?' 하시면서."

―결혼 반대가 극심했다면서요?

"인사드린다고 집사람이 서울에서 왔어요. 어머니께 절을 하는데, 이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부처님께 올리는 오체투지, 그러니까 양손으로 연꽃 모양을 만드는 절을 하고 만 겁니다. '야가 불교 아니여?' 하고 놀라자빠진 어머니가 그날로 금식기도에 들어갔지요. 결혼하고서도 곡절이 많았어요. 핫팬츠를 입고 마을을 누비니 이웃에서 흉을 보고, 참다못한 아버지가 '니 각시 옷 좀 입혀라' 하시고요(웃음). 그래도 집사람이 늘 고마워요. 어머니 위해 개종까지 하고, 시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딸처럼 따라주었지요."

―김단화의 내공(內功)이 탐나 결혼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아내의 무술은 내겐 경외의 세계였어요. 내 무술이 스피드와 유연성,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외공(外功)이라면, 단전호흡을 바탕으로 한 아내의 무술은 집중을 통한 파괴력이 핵심이었죠. 아내에게 호흡법을 배웠고, 동작 한 가지에 호흡 한 번이 아니라 호흡 한 번에 50가지 동작을 할 수 있는 특공무술이 탄생한 겁니다."

아내와 함께 있으면 두려울 게 없겠다고 하자 김단화씨가 집에 도둑 든 얘기를 했다. "'여보, 도둑이야' 하니까 코 골던 이이가 뭐라고 한 줄 알아요? '잡어.'" 자녀 교육은 어떻게 시켰느냐는 질문에 다시 김씨가 나섰다. "아들이 친구들한테 만날 듣는 질문이 '너네 엄마는 박치기하고 아빠는 하늘을 난다던데 거기서 어떻게 사냐?'였대요. 하지만 아주 평범한 가정이었죠. 사랑으로 키웠어요. 딱 한 번 아들놈 등짝을 때린 적이 있는데 애가 자지러지길래 윗옷을 들춰보니 손바닥 자국이 벌겋게 나 있어 기겁했지요. 이후로는 절대 안 때렸어요."

찰떡궁합인 부부는 시련도 함께 이겨냈다.

―결혼 초 생활이 궁핍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는 뭡니까.

"서울 올라와 도장을 열었는데 잘 안 됐어요. 독일에 사범으로 보내주겠다는 사람에게 사기까지 당해서 당장 내일 먹을 쌀이 없었지요. '차라리 죽자'하고 칼을 집어들었는데 엄마 젖을 빨며 방긋방긋 웃는 딸아이를 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죽을 각오로 살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하고 산 게 지금까지입니다."

―요즘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절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낭떠러지 끝이라도 부부가 이 악물고 가정을 지킨다면 이겨낼 수 있어요. 영원한 시련은 없지요. 우리만 해도 죽자고 결심한 그 이듬해에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지요."

◇눈이 불꽃처럼 살아 있어야

―무술 하는 남자도 집안일을 거듭니까?

"청와대 있을 때 어느 방송사에서 내 일과를 취재한 적이 있어요. 저녁밥 먹고 내가 직접 설거지하는 장면이 나갔더니 제자들 집집마다 부부싸움이 났답니다. 나는 경호원이 제대로 일하려면 가정이 화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안이 어수선한데 대통령을 올바른 정신으로 지킬 수 있습니까?"

―부인이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고요?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요. 하하하!"

―무술 하는 남자도 눈물을 흘립니까?

"가난을 당해낼 재간이 있어야지요. 한번은 잘 사는 친구가 술을 사주는데 쌀 사게 돈 달라 소리는 못하겠어서 체육관 매트 좀 갈게 도와달라고 했더니 친구 간에 돈거래는 안 하는 거라며 딱 자르더군요. 미안했는지 택시 타고 가라며 10만원을 줘요. 택시에 올라탔다가 바로 내려서는 그 돈으로 쌀을 사서 집에 들어가는데 눈물이 쏟아지데요. 아웅산 테러 때 아끼던 제자 요원을 잃었을 때에도 많이 울었습니다. 대통령을 위해 죽는 것이 경호원의 숙명이긴 해도 너무 꽃 같은 나이라…."

―주먹과 무술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주먹은 깡다구죠. 생명이 짧아요. 김태촌을 보세요. 무도는 호흡이고, 인격을 쌓는 길입니다."

―중국 무술영화를 보면 술 태백이 사부가 한손에 술병을 들고도 적들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술도 잘하십니까.

"아버지가 지독한 술꾼이었던 탓에 술은 입에 대지 않습니다. 체격도 작은데 술에 취하기까지 하면 제자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요. 그래서 지도자는 외로운 겁니다(웃음)."

―새해 소망은 무엇입니까.

"중국 소림사에 버금가는 무술원을 한국에 만들고 싶어요. 충주시에서 지원할 의향이 있다고 해서 요즘 힘이 납니다. 또 하나는 '국민경호원'이 되는 거예요. 25년간 국민 세금으로 밥 먹고 살아온 제가 죽기 전 그 빚을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자들과 함께 학교 폭력, 성폭력 등 모든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조직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필살기' 하나 가르쳐주시죠.

"싸움은 피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부득이 맞서야 할 상황이면 눈으로 먼저 제압하세요. 싸움이든 인생이든 눈이 불꽃처럼 살아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2013/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