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관련자료/기독교인물

故한경직 목사 사역 파트너 최창근 장로

하마사 2013. 1. 19. 16:04

 


고 한경직 목사의 50년 지기이자 교육·선교 사업에 헌신한 최창근 영락교회 원로 장로가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영락교회는 최 장로가 이날 오전 0시 40분 경기도 양평 길병원에서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천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양선(96) 여사와 장남 인석, 차남 인환, 장녀 인금, 차녀 인자씨 등 2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저동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선교관에 마련됐다. 발인예배는 오는 10일 오전 9시 교회 본당에서 드리며, 장지는 경기 남양주 진건면 사능리 영락동산이다.

1914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생한 최 장로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열 살 무렵, 부친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가게 점원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 당시 일을 하며 다니기 시작했던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담임이었던 한경직 목사를 처음 만났다.

사업이 승승장구하던 30대 중반, 그는 “신앙관과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을 경험했다”고 한 선교방송 프로그램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초대형 태풍이 동해를 강타했던 48년 12월 22일, 선원들과 작은 배를 타고 귀항하던 일행은 동해 앞바다에서 난파 직전에 처했다. 당시 그는 “돈에 욕심을 부리니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거두어 가시는 구나”하며 간절히 회개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무사히 항구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 삶의 기준이 180도 바뀌었다”고 그는 간증했다.

최 장로는 한 목사가 전쟁고아를 위해 만든 보린원 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한 목사의 선교·교육 사역을 돕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한 목사와 최 장로를 ‘바늘과 실’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한 목사는 교회 선교 및 교육 사업을 할 때에는 언제나 최 장로를 불러 상의했다. 특히 교육 분야에 대한 최 장로의 열정은 뜨거웠다.

최 장로는 크리스천 ‘청부론’을 몸소 실천한 대명사로 꼽힌다. 대륙통상 등 원사도매업을 통해 큰 돈을 벌었던 그는 생전에 “하나님이 나에게 사업체를 맡겨주신 것은 기독교적인 사업 경영으로 성공해서 하나님 사업에 많이 사용하라는 뜻임을 깨달았다”고 종종 고백했다. 그는 영락교회가 설립한 영락중·고 이사로 참여하는 한편 북한의 숭의여학교와 보성여학교 재건에 동참, 훗날 보성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대학교 설립 당시에는 26만5000㎡(약 8만평 규모)의 현 부지를 기증하는 등 선교 및 교육사업 등에 3000억원이 넘는 돈을 쾌척했다. 일선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등을 펼치며 한국교회와 사회에 본이 되어 왔다.

최 장로는 이외에도 CBS(기독교방송) 목동사옥을 신축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데 이어 국제기드온협회 전국 회장을 비롯해 세진회 및 기독실업인회 조직,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국민일보, 20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