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6g짜리 철새

하마사 2012. 12. 19. 08:43

2007년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팀이 겨울 철새들을 번식지에서 수천㎞ 동쪽에 갖다 풀어놓았다. 얼마 뒤 첫 비행에 나선 어린 새들은 남쪽 엉뚱한 곳에서 겨울을 났다. 그러나 나이 든 철새는 남서쪽으로 방향을 고쳐 잡아 원래 월동지에 다녀왔다. 과학자들은 새 부리의 작은 돌기에 든 자석(磁石)이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 뇌로 전달한다는 걸 알아냈다. 이것이 새 머릿속에 '내비게이션'처럼 기억됐다가 이듬해 길 안내를 했다.

▶독일 올덴부르크대 연구진은 철새 망막세포에서 크립토크롬이라는 단백질을 찾아냈다. 크립토크롬은 빛과 자기장 변화를 뇌 앞부분에 전달했고 새는 이것을 나침반 삼아 방향을 잡았다. 뇌 앞부분이 손상된 새는 길을 헷갈렸다. 북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나이팅게일은 1500㎞ 사하라사막을 건너기에 앞서 잔뜩 몸무게를 불렸다. 비행기에 연료를 가득 채우는 것과 같다. 연구진이 자기장을 교란해도 사막이 앞에 있는 줄 알고 먹는 양을 늘렸다.

▶어떤 철새는 낮에 땅 위 '이정표'를 보고 여행을 한다. 산맥·강·호수·해안을 유달리 잘 알아보는 철새들이다. 밤에 별자리를 보며 나는 새도 있다. 그래서 구름 낀 밤엔 비행을 멈춘다. 계절풍을 따라가는 새도 있고 지구 자전 방향을 기준 삼는 새도 있다. 왜 철새는 먼 길을 떠날까. 빙하기 때부터 새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고도 하고, 대륙이 맨틀 위를 둥둥 떠다닌 뒤로 새들이 고향 땅을 찾는다고도 했다. 요즘엔 알맞은 기온과 먹이를 찾아가는 것으로 본다.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전남 흑산도까지 1550㎞를 날아온 노랑눈썹솔새가 발견됐다. 몸무게 6g, 100원 동전 무게만 하다. 발목에 찬 0.03g짜리 개체 식별 가락지엔 고유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불면 날아갈 듯 엄지손가락만 한 새가 불과 20여일 만에 참 멀리도 날아왔다. 매 같은 포식자도 용케 피했다. 오호츠크해 연안에서 태어난 이 철새가 중국 북부와 우리 섬들을 거쳐 대만·인도까지 날아간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1만 종 넘는 새 중에 1800종이 철새다.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선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야생 거위의 겨울 여행을 이끈다.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소설가 김훈은 "철새는 천체가 보내는 신호에 따라 방향을 가늠하는데 인간의 몸엔 그 같은 축복이 없다"고 했다. 시인 이해리는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고 했다. 흑산도 솔새는 무슨 그리움이 북받쳐 작은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날아온 것인지, 애틋하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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