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8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18일 마지막 유세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하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특권층 경제를 바로잡는 경제 민주화를 이루겠다""새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국민 100% 대통령이 되겠다"(박 후보)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문 후보)고도 했다.
두 후보의 마지막 호소는 민생, 서민,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비슷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이건 겉모습일 뿐이다. 대선 운동 기간 박 후보는 "실패한 노무현 정권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문 후보는 "실패한 이명박 정권을 연장해선 안 된다"고 맞서며 두 진영 간 전투를 진두지휘했다. 이에 따라 두 후보 지지자들은 세대·계층·지역·이념으로 뚜렷하게 갈렸다. 대한민국이 두 정파(政派)가 대표하는 두 나라로 쫙 갈렸다.
오늘 두 후보 중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아 그에게 대한민국의 다음 5년을 맡길 것인가는 유권자의 권리이다. 두 후보 모두를 마뜩지 않게 여기는 유권자들은 이 같은 양자택일이 내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더라도 최선(最善)이 아니면 차선(次善), 차선이 아니면 차악(次惡)이라도 고르는 것이 선거다. 국민들은 빠짐없이 투표장에 나가 누군가를 택하는 정치적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모든 여론조사가 두 후보 간 박빙(薄氷)의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오늘 밤 늦게 국민의 절반이 환호하는 순간 다른 절반 가까운 국민은 낙담의 상처를 핥아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 대통령의 성패(成敗) 열쇠는 선거 결과에 환호하는 국민 절반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낙담하는 다른 절반 가까운 국민이 쥐고 있다. 역대 대통령이 밟아온 길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은 취임 반년도 되지 않아 환호가 실망으로 바뀌고, 낙담은 분노로 변해 정권의 앞길을 절벽처럼 가로막는 사태와 부딪쳐야 했다. 역대 정권의 실패는 그들이 승리에 도취해 환호하는 바로 그 순간 잉태(孕胎)된 것이다.
박·문 후보 가운데 누가 승리하든 패자(敗者)를 끌어안아 선거 과정의 극단적 분열을 치유하지 못하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러나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당선자의 다짐만으론 분열의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모든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 제일성(第一聲)을 바로 그 말로 시작했지만 그들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걸어 실패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우리 정치에서 승자(勝者) 독식(獨食) 시대가 끝난 지 이미 오래다. 다수결에 의한 승리 결과만 믿고 자기 진영 마음대로 밀고 나가다간 곧바로 국민 50%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노무현 정권은 국민을 지역으로 계층으로 이념으로 가르고 내 편의 정책만 밀고 나가 5년 내내 국론 분열에 허덕이다 다음 대선에서 530만표라는 사상 최대 표차로 반대당에 정권을 넘겨줘야 했다. 노무현 정권을 이은 이명박 정권 역시 역사적 압승을 자기들에 대한 전면적 지지로 오인한 결과 정권의 첫 조각(組閣)에서부터 국민의 마음을 잃고 고립되기 시작했다.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려면 선거에서 승리를 쟁취한 것보다 더 결연한 각오와 행동이 필요하다. 국민 통합이 먼저 실현돼야 자신의 정책도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박 후보는 "집권할 경우 대탕평 인사를 실시하고 여야 지도자 연석회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후보는 "대통령직 인수위 때부터 야당과 협력하겠고 야당도 참여하는 대통합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했다. 당선자는 지체 없이 대탕평과 대통합 약속을 실천해야 한다.
국민 통합에 대한 당선자의 결연한 각오와 단호한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대통합 구호는 패자에게 구색용으로 장관 자리 몇 개를 내주겠다는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버릴 것이다. 당선자는 먼저 국민 대단합과 대탕평에 자신 이상으로 결연한 의지와 실천력을 가진 사람들을 주위에 불러 모아야 한다. 역대 대통령이 국민 통합에 실패하고 결국은 실패한 정권이란 도장을 스스로 이마에 찍어야 했던 것은 주변 인물들이 정권을 전리품으로 착각하고 자기들의 구연(舊緣)을 좇아 나눠 갖는 데 골몰했기 때문이다.
패자 역시 자신이 말한 통합의 정치가 당선됐을 경우만을 상정한 약속이 아니었음을 국민 앞에 보여주려면 유권자들의 심판 결과를 정권 반대 투쟁의 시발점으로 삼는 태도를 가져선 안 된다. 오늘은 새 대통령을 뽑는 날이자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과 소통을 통해 두 개로 쪼개진 나라를 다시 하나로 만드는 첫발을 내딛는 날이 되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201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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