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기타자료

시진핑의 격식파괴

하마사 2012. 12. 8. 16:23

중국인의 회식 자리에서 상석(上席)은 출입문을 마주보는 맨 안쪽 자리다. 그날 가장 귀한 손님이나 윗사람을 거기 앉힌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에 둘째 서열, 왼쪽에 셋째 서열의 사람이 앉는다. 음식이 나온 뒤 젓가락을 드는 것도 상석에 앉은 사람부터 순서대로 한다. 서열을 어기고 음식에 먼저 젓가락을 대는 건 큰 실례다. 접대하는 측이 음식의 절반쯤이 남도록 많이 시키는 것 또한 회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격식이다.

▶"존경하는 리○○ 서기님, 존경하는 장○○ 시장님, 존경하는…." 중국의 크고 작은 회의는 참석한 주요 인사들을 일일이 거론하고서야 시작한다. 시간을 꽤 잡아먹지만 거명 절차에서 누군가를 빼먹으면 원망을 살 수 있어서 건너뛰기도 어렵다. 중국 회의를 지루하게 만드는 또 하나 절차가 실적 찬양이다. 사회자나 발언자가 중앙 최고 지도자부터 현지 책임자까지 그 사람 업적을 장황하게 늘어놓아야 참석자들 얼굴이 환해진다. 물론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일이다.

▶중국인은 격식을 무척 따진다. 청대(淸代) 황제 앞에서 신하는 어떤 무기도 숨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뜻으로 도포 소매 자락을 털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영국과 프랑스 같은 외국 사절에게도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요구했다. 세 번 절할 때마다 땅에 이마를 세 번씩 대는 의식이다. 이 절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 태종에게 했던 치욕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진핑 총서기를 비롯한 중국 새 지도부가 격식 파괴에 나섰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회의는 짧게, 문서는 간결하게 하고 해외출장 때 수행 인원을 줄여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를 깨뜨리겠다고 한다. 고위 인사가 움직일 때 하던 교통 통제도 줄이기로 했다. 시민의 부아를 돋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2년 전 김정일이 중국 창춘과 다롄을 방문했을 때 길목마다 통제해 도시 교통이 마비되자 화가 치민 사람들이 "조선의 뚱보에게 먹을 것을 줘서 보내라"고 했었다.

▶시진핑은 지난주 국가박물관에서 한 연설에서 덩샤오핑의 말을 인용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공허한 말은 나라를 망치고 실질적 행동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空談誤國 實幹興邦)." 시진핑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꼭 필요한 말만 점잖게 하는 전임 후진타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신선하다" "인간미가 느껴진다"며 반긴다. 수천 년 이어 온 중국의 딱딱한 격식이 시진핑 시대에 말랑말랑해질지 두고 볼 일이다.

-조선일보, 201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