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행복과 희망

중산층 別曲

하마사 2012. 10. 22. 15:13

미국인은 한 해 소득이 7만5000달러쯤이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진이 45만명을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를 분석해 얻은 결론이다. 연구진은 돈을 펑펑 쓴다고 해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건 아니라고 했다. 사람은 비싼 돈을 주고 산 물건에도 곧 싫증을 내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저택을 사도 기쁨은 첫 한 달뿐이다. 다음 달부터는 그저 몸을 누이는 평범한 '집'으로 바뀐다. 연구진은 해마다 7만5000달러 정도를 벌며 가족·친구와 여가를 많이 보내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고 했다.

미국 심리학자 에드 디너는 "한국인의 낮은 행복감은 지나친 물질주의 때문"이라고 했다. 130개국을 조사했더니 한국이 미국·일본보다 더 물질적 가치의 영향을 크게 받더라고 했다. 행복은 사람과의 인연을 두터이 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도전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고, 하루의 생활에도 만족할 줄 아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돈을 행복의 절대적 전제(前提) 조건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한국이 더 부자 나라가 되더라도 마음이 차오르는 기쁨과 여유를 누리지 못할 거라고 했다.

요즘 SNS에서 '중산층 별곡(別曲)'이라는 글이 퍼진다고 한다. 우리 중산층 기준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한 글이다. '빚지지 않고 30평 넘는 아파트에 살고, 500만원 넘게 월급을 받으며 2000cc급 중형차를 몰고, 은행엔 1억원 넘는 돈을 쟁여두고, 해마다 해외여행 다닐 수 있는 처지'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경제적 여유를 누리기가 녹록지 않은 세상이기에 더욱 더 소득이나 생활 형편을 가리키는 통계 숫자에 좌우되는지도 모른다. 지난 8월 어느 설문조사에서 50%가 '중산층이 아닌 저소득층'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났다.

▶'중산층 별곡'은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이 1970년대 초 제시한 '삶의 질' 기준도 소개했다. 한 가지 이상의 외국어와 악기를 익히고 스포츠를 즐기며 자식을 고교까지 보내 자립시키는 것이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모국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악기는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한다.

▶심리학에선 인간 욕구에 등급을 매겨 '생리적 욕구' 충족이 가장 낮은 단계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그 단계를 지나 안전하기, 명예 얻기, 자아실현을 바라는 단계까지 향하고 있다. 중산층 문화는 생존 너머 자존(自尊)의 높이를 지향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행복지수를 화폐에 적힌 숫자로 재려 한다. 행복은 눈에 보이는 숫자가 아니다. 마음의 온도계 눈금이 올라가야 뜨겁게 느낄 수 있는 게 행복이다.

 

-조선일보, 2012/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