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행복과 희망

교도소 공부

하마사 2012. 8. 30. 09:50

1960년대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 말콤 X는 10대 때부터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중학 2학년을 중퇴하고 범죄 소굴인 뉴욕 빈민가 할렘에서 마약밀매·도박·사기·강도·공갈·뚜쟁이 짓으로 나날을 보냈다. 스무 살 때는 백인 집을 털었다가 8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 교도소 생활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독학으로 공부한 다른 수감자의 권유로 독서에 눈을 뜨면서였다.

▶말콤 X는 밤 10시 교도소 전등이 모두 꺼진 뒤에도 복도의 희미한 불빛을 조명 삼아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교도소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었다. 당시 교도소 도서관은 딱딱한 양장본은 무기로 쓸 수 있어 대출을 금했지만 문고본은 허용했다고 한다. 말콤 X는 "흑인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교도소에서 읽은 책 덕분"이라고 했다.

▶시인·소설가 장정일은 중학교를 나온 뒤 열아홉 살에 폭력 사건으로 소년원에서 1년 6개월을 보냈다. 중학교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그는 소년원에서도 책 읽기를 그치지 않았다.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 온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웠던 삼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 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다 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삼중당 문고'). 독서와 독학 끝에 등단한 장정일은 1987년 첫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가장 어린 나이에 받았다.

▶교도소를 흔히 '범죄 대학'이라고 부른다. 멀쩡한 사람도 교도소에 들어가면 온갖 범죄 수법을 배우고 범죄에 물들어 나오기 때문이다. 교도소 수감자 가운데 53%가 이미 한 번 이상 교도소에 들어왔던 사람이고, 세 번 이상도 21%라고 한다. 출감하고 5년 안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도 52%나 된다. 어느 나라 교도소나 수감자가 다시 범죄에 발을 들여놓지 않도록 교정·교화하는 게 큰 과제다.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된 26명이 지난주 영어 토익 시험을 치러 10명이 990점 만점에 900점 이상을 받았다고 한다. 살인미수죄로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40대 남자는 975점이나 받았다. 서울 지역 명문대생의 토익 평균 800점보다 훨씬 높다. 의정부 교도소는 원어민 강사까지 동원해 모범수들에게 하루 일곱 시간씩 1년 동안 어학 교육을 해 왔다. 교도소마다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이 있지만 외국어 공부가 괜찮은 발상인 것 같다. 교도소는 수감자 하기에 따라 범죄 대학이 될 수도 있고 새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2/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