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 9일 버마, 지금의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에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전두환 대통령 수행단이 도열했다. 대통령 도착 전이었지만 연합뉴스 사진부장 최금영은 습관적으로 수행단 사진을 한 컷 찍었다. 몇 초 뒤 엄청난 폭음과 함께 그는 주저앉았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목에 건 카메라를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러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열 손가락이 모두 부러졌고 온몸에서 피가 방울져 떨어졌다.
▶카메라도 파편에 맞아 구멍이 뚫렸다. 필름은 피와 화약과 빛에 얼룩진 채 숨진 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있었다. 서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김동휘 상공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김재익 경제수석, 심상우 의원, 이계철 주미얀마 대사…. 어제 조선일보 2면에 실린 그 사진이다. 열일곱 목숨을 앗아간 현장을 남겼던 최금영도 심장 언저리에 파편이 박혀 고통받다 2003년 10월 9일 떠났다. 아웅산 테러 20년 된 날이었다.
▶김정일 지령을 받고 미얀마에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 공작원 셋은 폭탄을 원격 폭발시킨 뒤 도망치다 경찰과 맞닥뜨렸다. 한 명은 사살됐고 둘은 수류탄으로 자폭해 실명하거나 한쪽 팔을 잃고 붙잡혔다. 한 명은 사형당했고 한 명은 범행을 자백해 형 집행이 보류된 채 수감됐다. 북한과 친했던 미얀마 정부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북한과 외교관계를 끊었다. 69개국이 북한을 비난하고 제재에 나섰다.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210/10/2012101002445_0.jpg)
▶아웅산 현지 추모비 건립을 추진해온 정부가 미얀마 측으로부터 '긍정 검토' 답변을 얻어냈다. 미얀마 정부는 "국립묘지에 외국인 기념비를 세우기 곤란하다"고 했었다. 묘지에 잠든 아웅산은 미얀마를 영국 식민 지배에서 구해낸 독립 영웅이자 국부(國父)다. 야당 지도자 수치 여사의 아버지다. 아웅산 테러 희생자 추모비는 평화와 반(反)테러, 민주주의 가치를 일깨우는 기념물이 될 것이다. 내년 테러 30년 되는 날 장엄한 추모비가 서기를 기다린다. 반(反)파시즘에 앞장섰던 아웅산도 반길 것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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