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16:1-2
찬송: 191장
제목: 교회의 일꾼
목표: 뵈뵈처럼 교회의 일꾼으로 봉사하게 한다.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집필하면서 마지막으로 소중한 후원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기억하면서 호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이 뵈뵈라는 여인입니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로마교회에 추천하고 자랑할 만한 여인이었습니다.
뵈뵈라는 여인은 성경 속에서 오늘 읽은 본문에만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단 두절에만 기록되는 여인이지만 사도바울과 복음을 위해 귀중한 일을 감당했던 여인이었습니다.
특히 오늘 여성구역회 헌신예배로 드리는 구역장 권찰님들에게 귀감이 되는 여인이기에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1. 칭찬자입니다.(1절~2절 상반절)
1절~2절 상반절,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뵈뵈는 언제, 어디에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바울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겐그레아교회에서 바울을 도와 협력했던 여인으로 바울에게 지대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일꾼이라는 표현은 집사라는 뜻도 있습니다. 바울사도를 여러 모양으로 도울 수 있는 사회적 지위와 재산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1세기 중반경에 고린도에서 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항구인 겐그레아에서 주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는 사도 바울을 비롯한 많은 전도자들에 의해 복음이 로마 전역으로 확장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이 2차, 3차 전도여행이 진행되던 시기(A.D.50-58년경)에는 여러 충성스런 일꾼들로 인해 교회는 날로 왕성하여 갔습니다. 이방 선교에 있어 사도바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을 물심양면으로 힘껏 도운 뵈뵈와 같은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바울에게 뵈뵈, 바나바, 실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은 돕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능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뵈뵈가 있던 이 겐그레아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지만, 사도행전 18:18절에 보면,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서원이 있어서 나실인처럼 머리를 깍지 않다가 그 서원이 성취되어 머리를 깎았던 곳이 겐그레아입니다. 제가 어릴 때 시골교회 목사님이 스님처럼 머리를 밀고 나타나셔서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사도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스님처럼 깎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겐그레아 하면 그 목사님의 머리 모습이 생각나서 웃곤 합니다. 아무튼 겐그리아교회는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곳에서 뵈뵈라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잊을 수 없는 장소에서 믿음으로 기억되는 뵈뵈를 만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로마서를 보내면서 뵈뵈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도와주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영접 받는 것에 합당하고 어떤 도움이라도 기꺼이 받아도 되는 여자 집사님이었습니다. 로마교회에 가족과 같이 받아들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뵈뵈를 이렇듯이 칭찬하면서 적극 추천하고 있습니다. 뵈뵈는 대접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니고 있었고 칭찬받기에 합당한 여인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일꾼은 사도 바울처럼 칭찬하고 뵈뵈처럼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칭찬에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구역장 권찰님들은 중간지도자들입니다. 리더들은 칭찬으로 구역식구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육을 목적으로 때로 성도들을 꾸짖고 책망하기도 했지만 동역자들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뵈뵈 뿐만 아니라 3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칭찬하면서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에 대하여는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딤전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딤후 1:2)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두기고에 대하여는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골 4:7)라고 칭찬합니다. 누가에 대하여는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골 4:14)라고 칭찬합니다. 디도에 대하여는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딛 1:4)라고 칭찬합니다. 롬 16장에 나오는 여러 이름들을 호명하면서 계속 칭찬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에베네도’(5절),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6절),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7절),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8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9절),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10절), ‘주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12절),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12절),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13절). 이처럼 사도 바울은 동역했던 많은 사람들을 칭찬하고 격려했습니다.
구역장 권찰님들도 구역식구들을 야단하고 책망하기보다 칭찬하고 인정하며 양육하는 일꾼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야단맞고 꾸지람을 들으면서 자란 아이들이 부정적이 되듯이 구역이나 교회에서 심판과 책망만 듣고 자란 성도들의 신앙도 어둡고 부정적이 되기 쉽습니다.
(예화)
빌리 그레함 목사는 20세기가 낳은 세계적 부흥사입니다. 그도 어려서는 동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골칫덩이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저 아이는 커서 뭐가 되겠는가” 하며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할머니만은 달랐습니다.
개구쟁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 끄는 재주가 있어. 개성만 살리면 크게 될거야” 그 말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세계적 부흥사가 된 것입니다.
맥아더장군도 어려서 말할 수 없는 개구쟁이였다고 합니다. 말썽을 피우고 사고를 치고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그의 장래를 염려했지만, 할머니는 “너는 군인의 기질을 타고 났어”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맥아더는 눈이 확 뜨였다고 후에 고백했습니다. 그는 결국 위대한 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칭찬 한 마디가 사람의 일생을 바꾸어놓은 좋은 예입니다.
유영재 아나운서가 선생님에게 감사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글을 보았습니다.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영어교과서를 읽을 때 ‘목소리가 좋다며 아나운서가 되라’고 한 칭찬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구역장 권찰님들도 구역식구들을 격려하고 칭찬하여 기쁘고 은혜가 넘치는 구역으로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뵈뵈는 칭찬받는 일꾼입니다. 바울사도가 추천서를 쓰면서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로마교인들에게 예절을 갖추어 잘 영접하고 도와주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추천서를 쓰면서 고민이 될 때가 있습니다. 입시철이 되면 기독교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들의 추천서나 기독교 관련 기관에 입사하려는 사람들의 추천서를 써줄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장래를 위해 좋게는 써주어야겠는데, 마지못해 대충(?) 좋게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제 삼자가 그 사람이 어떤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추천할 만한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며 적극 추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좋다고 대충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추천하는 사람의 뉘앙스에 차이가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바울의 추천은 솔직하고 로마교인들에게 꼭 그렇게 대우하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주의 종 바울이 칭찬하고 추천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교회의 일꾼은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구역장 권찰님이 되어야 합니다. 주의 종과 구역식구들에게 칭찬받는 구역장 권찰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제가 섬기고 있는 교구에서 직접 들은 간증입니다. 구역을 아름답게 섬기고 있는 어떤 구역장님이 모델로 삼고 있는 구역장님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역원과 권찰로 있을 때 구역장님이 본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자기도 구역장이 되면 저런 구역장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유심히 지켜보며 배웠다고 합니다. 그 분은 지금 구역장으로 얼마나 구역을 잘 섬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구역식구들에게 존경받는 구역장, 칭찬받는 구역장, 본받고 싶은 구역장은 좋은 일꾼들을 성장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집사님은 지금의 구역장님을 만난 것이 큰 복이라고 간증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물론이고 구역식구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 구역장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교회로, 건실하게 성장하는 기쁨 주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교회의 일꾼은
2. 사명자입니다.(1절~2절 상반절)
1절~2절 상반절,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교회의 일꾼은 사명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명의 종류는 달라도 각자에게 사명을 주신 것은 분명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살 때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십니다. 그물을 씻고 있는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혀 두 배에 가득 채웠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시며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주십니다.
사도바울도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만나주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주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사명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뵈뵈를 대단히 신뢰했습니다. 로마교회에 보낼 로마서를 그녀에게 맡길 정도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전파를 위해 로마를 거쳐 서바나(스페인)를 가기원했습니다. 오래전부터 로마교회를 방문하려는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실행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로마를 가기 전에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하여 준비한 구제헌금을 전달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사연을 로마서에 기록하여 뵈뵈 편에 전달하였습니다. 남자의 힘으로도 낯선 곳에 가는 것은 힘들고 험한 길인데 여자의 몸으로 중요한 서신을 가지고 장거리 여행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위험이 따르는 여행이었습니다. 가정과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로마로 떠나야했습니다. 바울사도가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경험했던 어려움들을 그대로 겪을 수도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전달했습니다.(고전 16:10) 에베소서는 신실한 일꾼 두기고가 전달했습니다. 이처럼 편지는 아무에게나 보내지 않습니다. 디모데와 두기고와 같은 믿을만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오늘날도 중요한 편지나 서류는 돈을 비싸게 주고 등기로 보냅니다. 꼭 전달되어야 할 편지는 돈을 더 주고라도 확실하게 전달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뵈뵈는 사명을 맡으면 확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자였지만 로마서를 맡길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녀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로마서는 읽을 수 없는 서신이 되었고, 기독교의 중요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로마서가 없었다면 루터가 로마서를 읽지 못했고 종교개혁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물론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통해 역사하셨겠지만, 그토록 로마서는 중요한 서신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교회에 로마서가 전달되었다는 것은 세계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책임진 사람이 바로 뵈뵈 집사님이었습니다.
바울사도가 뵈뵈를 신뢰했기 때문에 이런 중대한 일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일을 맡겼을 때 잘 감당했고,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잘 감당했으므로 바울사도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신뢰를 얻을 때 정직함과 신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꾸준함이 있어야 하고 변하지 않는 우직함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이 없는 일꾼은 교회에 덕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예화)위대한 사명을 감당했던 성경속의 인물들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까지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치는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40년 처가살이를 하면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자 하나님이 부르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히 3:5에 보면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모세의 충성을 인정하고 신뢰하셨습니다.
요셉은 어떻습니까? 애굽에 팔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을 관리하는 것이 직접적인 하나님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할지라도 성실하게 감당할 때 그 집의 모든 소유를 위임받아 관리하는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면서도 감옥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디를 보내주셔도 사명으로 알고 성실하게 감당하여 인정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어떻습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포로의 신분임에도 왕에게 가장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과 다니엘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먼저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지만 어디에 있든 사명으로 알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뵈뵈도 마찬가지입니다. 겐그레아교회를 섬기면서 바울과 성도들에게 신뢰를 받았습니다. 어떤 일을 맡기든지 잘 감당했습니다. 겐그레아교회의 구역장, 권찰, 전도대의 사명도 잘 감당했으리라 믿습니다. 복음과 교회를 위해, 주의 종 사도 바울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기쁨으로 일했습니다. 교회와 주의 종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뵈뵈를 믿고 로마교회에 로마서를 전달하는 막중한 사명을 맡겼던 것입니다. 그만큼 사도 바울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사명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할 자리가 있고 일터에서 일감이 있고 가정에서 자기자리가 있는 것은 복입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할 때 모시고 있던 과장님이 대기발령을 받았습니다. 총무과에서 대기발령자들은 일이 없었습니다. 책상도 없이 큰 테이블에 신문만 있고 의자들만 있었습니다. 출근하여 일이 없는 모습은 굉장히 힘들어 보였습니다. 일을 빼앗기는 것은 불행입니다. 사명을 빼앗기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일꾼은 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이 끝나는 순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사명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정받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학생은 선생님과 교수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업하는 분들은 고객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뵈뵈처럼 하나님과 주의 종, 성도들에게 인정받는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3. 보호자입니다.(2절 하반절)
2절 하반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바울은 뵈뵈를 바울과 동역자들의 보호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화> 과거에 아들이 학교에서 잘못하여 보호자로 불려간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잘못한 것을 아버지가 대신 사과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대신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보호자는 대신 욕을 먹기도 하고 책임을 지기도 합니다. 방패막이가 되기도 합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하기 전 보호자가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보호자가 책임을 지겠다는 서명을 받은 후에야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보호자는 이렇듯 중요합니다.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 합니다.
보호자는 ‘누구를 위해 앞장서다’, ‘관심을 가지다’, ‘돌보다’, ‘도움을 주다’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유래했습니다. 뵈뵈에게 이런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녀가 바울을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크게 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겐그레아교회의 든든한 재정적인 후원자였으며, 바울 일행의 신변안전을 책임져주는 일까지 담당했습니다. 그렇다면 뵈뵈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넉넉한 사람으로 전도자와 극빈자들을 계속해서 도와주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이런 일을 하는 여성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에도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인 요안나, 수산나, 그밖에 여러 여인들이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후원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이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사역할 때에는 루디아라는 여인이 바울일행을 강권하다시피 하여 자기의 집에 머물게 한 후 뒷바라지를 책임져 주었습니다. 이처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후하게 대접하고 함께 나누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으며 이런 후원에 힘입어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뵈뵈가 어떻게 바울의 보호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여성으로서 믿음의 거장 바울에게 보호자라고 불린 것은 대단한 영광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큰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호자는 "누구를 위해서 앞장서다"는 뜻을 가졌듯이 뵈뵈는 사도바울을 위해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면 앞장서서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런 뵈뵈가 옆에 있었기에 사도바울은 그 험난했던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무엇으로 힘이 되었을까요? 사도 바울을 어떻게 도왔을까요?
기도입니다. 뵈뵈는 기도하는 집사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바울로부터 그토록 칭찬을 들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명을 그토록 잘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도 바울의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뵈뵈는 겐그레아교회와 사도바울과 복음의 동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인 몰트만교수가 최근에 한국을 방문하여 기도에 대한 말을 했습니다. “성경이 일관되게 외치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깨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야 말로 현대인들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며 주의력을 환기 시킨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모든 감정이 메말라버리고 모든 감각이 닫혀버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두운 영혼의 밤’을 맞아 산에서 홀로 기도하셨다”고 하면서 “예수님은 기도로 하나님의 뜻과 씨름하셨지만 제자들은 잠의 세계로 도망쳐 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간증이라 송구합니다. 저의 보호자 되시는 부모님은 지금도 저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이미 천국에 가셨지만, 저의 할머니는 새벽마다 맏손자인 저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집을 떠나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공부하다 잠들면 머리맡에서 기도하시던 할머니의 기도소리를 평생 잊지 못합니다. 할머니와 부모님의 기도 후원은 지금까지 저의 영적인 보호자로 큰 힘이 되어 주십니다. 지금은 아내가 그 자리를 대신해주고 있어 감사합니다. 또한 어떤 분이 저를 위해서 기도하신다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뵈뵈는 이처럼 교회와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를 위해 기도로 힘을 보탠 보호자입니다. 기도 없이 바울사도를 도울 수 없고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보호자는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보호자는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몸으로 헌신하고 물질로 후원합니다. 학업을 위해 필요하다면 엄마가 직장을 나가서라도 학비를 자식의 손에 들려줍니다. 손에 굳은살이 생길지라도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합니다. 내년이면 50살인 아들을 위해 밭에서 농사를 지어 반찬거리를 만들어주시려는 분이 부모님이십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보호자로 사시기 때문입니다. 보호자는 이처럼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책임을 집니다. 부모만 보호자가 아닙니다.
(예화)
5월 10일자 일간신문에 나온 기사입니다. 영국에서 하반신이 마비된 여성이 인체공학 보행 보조기를 착용하고 16일 동안 걸어서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BBC방송이 8일 보도했습니다. 5년 전 낙마 사고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클레어 로마스(32)는 런던 마라톤의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지난달 22일 3만6000여명의 다른 마라토너들과 함께 출발선에 선 지 16일 만이었습니다. 3년 전 결혼한 남편 댄은 보호자로 아내가 마라톤 코스를 걷는 동안 뒤에서 함께 걸었습니다. 보호자는 이렇게 헌신하고 보호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뵈뵈는 사도바울의 복음사역을 위해 기도와 더불어 물질로 후원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고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에게 물질도 필요했습니다. 장막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자비량선교를 하는 사도바울의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협력하고 선교비로 도왔습니다. 사도바울의 허물도 덮어주고 감싸주면서 격려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려움에 처하면 대신 책임지는 보호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보호자라는 단어는 이렇듯 막중한 책임을 가진 단어입니다.
물론 뵈뵈가 훌륭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거장 사도 바울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뵈뵈와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과 함께 동역하고 믿음생활 하던 사람들 중에 모두가 뵈뵈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구역장 권찰 여러분! 성도 여러분! 뵈뵈와 같은 교회의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칭찬받고 칭찬하는 칭찬자,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신뢰받는 사명자, 그리고 주의 일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데 앞장서는 책임있는 보호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