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봉사(섬김)

오랜만에 만나는 멋진 기부 철학

하마사 2012. 4. 20. 09:25

조선일보 19일자에 특이한 기부자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성(姓)이 김씨이고 57세의 사업가라는 것까지만 자신의 신분을 밝혀달라는 이분이 해온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2010년 10월부터 경기 성남시의 지하철역 부근 5층짜리 빌딩 임대료 수입의 20%를 성남의 가난한 집 학생들을 돕는 데 써온 것이다. 4~5층에 세든 영어학원이 내는 임대료의 절반인 월 1830만원을 저소득층 학생 61명에게 30만원씩 대줘 학원에 다니게 해왔다. 학생들은 중간·기말고사 성적을 제출해야 하고, 학원을 다니는데도 성적이 좀체 오르지 않으면 지원이 중단된다.

다른 하나는 1~3층에 입주한 병원·미용실·음식점 등에서 내는 임대료 가운데 월 1000만원을 성남시 사회복지 프로그램인 '행복드림통장'에 기부해온 것이다. 행복드림통장의 지원 대상은 차상위(次上位) 빈곤계층 가정의 학생들로 30개월 동안 매달 10만~15만원씩 통장에 적립된다. 학생의 부모들도 매달 10만원씩 적립하는 조건이다. 학생들은 30개월 후 부모 적립금 300만원에 김씨 지원금 300만~450만원을 합친 돈과 이자를 받아 등록금이나 학원비 등에 쓸 수 있다.

김씨는 고교 졸업 후 자동차 정비일, 의류업, 정보처리업 같은 일을 해오며 큰 재산을 쌓았다. 그의 기부는 그냥 돕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 자립(自立) 노력을 요구하는 게 특징이다. 그는 인터넷에 쓴 글에서 "나는 사업가라서 투자 효과가 기대되는 쪽에 기부한다"고 썼다. 역경을 헤쳐 남을 도울 수 있는 처지로 올라선 자기 경험을 토대로 어려운 가정 아이들을 도우면서 자립 의지를 키워주겠다는 뜻이다.

김씨는 기부 전담 사회복지사를 고용해 빌딩 관리사무실에서 일하게 하면서 지원 대상을 선발하고 성적 관리도 맡기고 있다. 한때는 학교 등에 기부금을 전했으나 이 돈이 투명하게 쓰이지 않는 걸 보고 직접 지원 대상을 찾아나섰다. 김씨는 지금껏 기부금 전달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빌딩에 입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성실하게 세금을 낸 기록을 요구하고, 식당의 경우엔 위생 상태를 검사받겠다는 응낙을 받는다. 대신 입주자들은 김씨가 상세하게 기록해놓은 관리비 내역을 언제라도 열람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멋진 기부 철학이다.

-조선일보 사설, 2012/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