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봉사(섬김)

어느 신부님과 할머니가 만든 험한 세상 건너는 다리

하마사 2012. 9. 5. 18:19

어제 아침 신문에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을 사는 국민 마음을 다독여주고 어루만져 주는 두 가지 반가운 소식이 실렸다. 하나는 올해 일흔하나인 브레넌 로버트 존 신부(한국 이름 안광훈)가 1966년 고향 뉴질랜드를 떠나 한국땅을 처음 밟은 후 46년 동안 탄광촌 빈민과 철거민을 위해 봉사한 공로로 서울시 복지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다른 하나는 황해도에 살다가 6·25전쟁 통에 남쪽으로 내려온 여든아홉 김순전 할머니가 동대문 시장 노점상을 할 때부터 자기 몸엔 한 푼 들이기도 아까워하며 모은 돈으로 마련한 부동산과 예금 100억원을 연세대에 기부했다는 소식이다.

스물여섯에 강원도 정선 탄광촌 성당에 부임한 안광훈 신부는 돈이 없어 병원 치료비, 전기료, 자녀 교육비를 내지 못해 쩔쩔매는 주민들을 보고 1972년 주민들과 함께 한 계좌당 100원씩 모아 정선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지금 그 조합은 자산 규모가 400억원으로 컸다. 맹장염 같은 간단한 병으로 병원만 있으면 살았을 사람들이 죽어가자 정선에 성 프란치스코 병원을 건립했다. 1981년 서울 목동 주임 신부로 옮긴 안 신부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추진하던 재개발 사업으로 안양천변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내몰리자 성당 본당 건물을 숙소로 내놨다. 몇 년째 똑같은 외투를 입고 겨울을 나는 안 신부가 지금 사는 다세대 주택 전셋집에는 TV도 없다. "필요한 것 이상을 가져선 안 된다"고 믿는 그는 휴대전화도 지니지 못하고, 환갑잔치 때 선물 받은 한복을 칠순 잔치에도 입고 나왔다.

김순전 할머니는 스물일곱에 황해도에서 남편과 이불 한 채 달랑 들고 서울로 내려와 갖은 장사일을 하며 '또순이'로 살았다. 버스비가 아까워 매일 다섯 정거장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으로 사 둔 부동산이 제 스스로 덩치를 불려 지금은 주택과 빌딩 등 부동산 4채를 보유하게 됐다. 할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게 평생 한(恨)이라며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을 돕는 걸로 그 한을 풀겠다고 가진 재산 대부분을 연세대에 장학금으로 내놨다. 온통 흉악한 얘기로 뒤덮인 요즘 파란 눈 신부님과 억척이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험한 세상을 건너는 다리를 만난 느낌을 갖게 한다.

 

-조선일보 사설, 201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