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안'이 복권에 당첨돼 미국에 간다. 그는 억만장자 워런 버핏을 만나 당첨금을 모두 낸다. 버핏은 자기와 식사를 함께할 기회를 경매에 붙여 낙찰된 사람에게 투자 비법을 알려준 뒤 받은 돈을 기부해왔다. 그런데 청년 '안'은 "나는 투자에 관심이 없다"며 돈벌이 비결은 듣지도 않은 채 밥만 먹고 사라진다. 실제 상황이 아니라 박민규의 단편 '버핏과의 저녁식사' 이야기다. 황당하도록 욕심 없는 인물이 돈에 목매는 인간 세태를 조롱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버핏은 20세기형 자본주의가 '단물이 빠져버린 껌'처럼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중얼거린다. 실제로 버핏은 재산의 절반 넘게 자선 사업에 기부하겠다는 부자들의 모임 '기부 약속' 운동을 이끌어왔다. 우리 사회에선 부자들보다 가난한 '할머니 천사'들이 더 큰 기부의 감동을 안겨줘 왔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엔 1990년 김밥을 팔아 모은 재산 51억원을 충남대에 선뜻 기부한 이복순 할머니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실려 있다. 2006년엔 건국대 뒷문에서 20년 넘게 담배 가게를 연 이순덕 할머니가 6억여원을 건국대에 기부했다. 황해도에서 월남한 할머니는 고향에 두고 온 동생들에게 주려고 돈을 모아왔지만, "나이는 자꾸 드는데, 만날 희망이 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자"며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어느 고명한 역사학자는 주례를 설 때마다 돈의 중요성을 강조해 하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했다. 지조(志操) 높은 학자로 평생 곤궁하게 살았던 이 선생님은 '돈은 자유를 살 수 있는 수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엔 돈이라는 납덩어리 때문에 인생이 가라앉아버린 경우도 숱하다. 우리 기부 천사 할머니들은 돈으로 자기 혼자의 자유를 산 게 아니라 커가는 젊은 사람들의 길을 뚫어 주었으니 돈의 격(格)이 다른 셈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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