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 1:19-34
제목: 예수님이 높이는 사람
목표: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이 높이는 사람이 되게한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정보화시대이기 때문에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높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정말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높이는 사람은 세상의 기준과 다릅니다. 세상의 정보보다는 더 중요한 것을 알고 사는 사람이 높임 받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성경은 400년간을 침묵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아버지가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제사장의 신분보장이 있었습니다. 고정된 수입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포기하고 광야에서 홀로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목 베임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어찌 보면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 7: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높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자기를 알았고, 예수님을 알았고, 때를 알고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 자기를 아는 사람(20, 23절)
20절,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23절,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평생을 살면서 자기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살고 있는지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자기를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세례요한은 분명히 자기를 알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메시야라고 생각하고 질문했지만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라고 했으며 단지 메시야의 종에 불과하다고 밝혔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마 3:11)
육신적으로는 예수님 보다 형이었지만 종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님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임을 알고 살았습니다. 자기를 알았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했겠습니까? 왜 자기가 광야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았기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 계신 분이 있습니까? 광야생활을 통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는 줄 믿습니다.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을 아는 사람(29, 34절)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세례요한이 활동하던 당시에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 예수님이 알려지지 않을 때였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목수의 아들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세례 받으러 오실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알고 외쳤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몰라볼 때 세례요한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인간 예수님만 알았지만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어린 양,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증언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 이전에 최초의 고백과 증언했던 사람이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높임 받습니다.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믿는 사람을 예수님이 높이십니다. 세상 지식과 정보는 부족해도 이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이 천국에서 높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식과 정보력이 부족하여 세상에서 높임 받지 못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과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을 알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때를 아는 사람(요 3:30)
요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그는 30여세까지 홀로 광야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알리는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있어서 준비의 기간은 사역하는 기간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모세의 40년, 엘리야의 3년, 바울의 아라비아 광야와 고향 다소 생활에 이르는 십 수 년 등 때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세례요한은 때가 되어 4세기 만에 어둠을 가르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메시야의 오심을 예비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습니다. 평안하고 화려한 생활이 아니라 거칠고 험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이처럼 힘든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모처럼 나타난 선지자에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메시야라고 해도 믿고 따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인기가 올라갔습니다. 제자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착각하기 쉬울 때입니다. 예수님 대신에 자기를 내세우려는 유혹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세례요한이 사역하는 근처에서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요한에게 왔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시기하였습니다. 그 때 요한이 제자들에게 거듭하여 말합니다.
요 3:28절입니다. “내가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그리고 이어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와서 예수님을 알렸으면 자기의 사명을 다했고 자기는 쇠하여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자기가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오를 때와 내려갈 때를 잘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등산할 때 오를 때 보다 내려갈 때 다칠 확률이 더 많다고 합니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는 뜻이지요. 광야에 외치는 소리로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을 높이고 물러날 때를 알고 스스로 쇠하여졌던 사람이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연극이나 무대공연에서 등장할 때가 아닌데 등장하거나 내려와야 할 때 내려오지 않으면 공연을 망치게 됩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공연전체가 엉망이 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알고 처신하는 사람을 예수님이 높이십니다.
예수님이 높이는 사람은 세례요한처럼 자기를 아는 사람, 예수님을 아는 사람, 때를 아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