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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강원용 목사·법정 스님을 떠올리는 이유

하마사 2011. 7. 3. 09:46

그제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우리 종교의 갈 길을 생각하는 모임이 열렸다. '참종교인이 바라본 평화: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법정 스님과의 대화'란 행사다. 김성수 성공회 대주교가 김 추기경에 대해,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강 목사에 대해,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가 법정 스님에 대해 옛 추억을 더듬어가며 이야기했다.

김 대주교는 "추기경님은 (그 당시의 달동네였던) 청계천 아이들과 철거민들, 소록도의 한센씨병 환자와 에이즈 환자들, 남들에겐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런 곳이 바로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며 망설이지 않고 그들 곁으로 가셨다"고 회고했다. 월주 스님은 "목사님은 편가름과 다툼이 끊이지 않을 때 늘 제3의 자리에서 대화를 통한 화합법을 제시했던 분이었다"면서 "기독교의 사명은 세상을 인간화하는 데 있다던 생전 말씀이 새삼 울리는 듯하다"고 말했다. 최 명예교수는 "법정 스님은 누군가가 '큰스님'이라고 부르면 '나 큰스님 아니오'라며 정색을 하곤 했다"며 "언젠가 김 추기경님께 '천주교 신자인 제가 길상사 관음상을 만들면 교회가 저를 파문하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추기경님은 '아니지요, 일본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은 관음상 앞에서 기도했답니다'고 말씀하셨다"고 옛일을 돌아보았다.

우리의 1970~80년대는 경제발전의 수레바퀴 아래 낀 가난한 사람들, 박해받는 사람들, 쫓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던 시대였다. 교회가, 성당이, 사찰이 그때 그들 곁으로 다가가 가난과 아픔을 함께 나눴다. 가난은 함께 나눔으로써 가벼워졌고 아픔도 함께 견딤으로써 누그러졌다. 가난했던 그 시절, 아팠던 그 시절, 교회와 성당과 사찰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교회와 성당과 사찰끼리도 서로 다리로 이어져 한목소리를 냈기에 그들 목소리는 사회에 더 크게 울렸다. 지금 우리는 아직 곳곳에 그늘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때보다는 훨씬 풍족한 사회,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 교회도 사찰도 성당도 그때보다 넉넉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靈的)으론 더 가난한 삶을 살고 있고 종교 사이의 울타리는 더 높아졌다. 그 시절 세상을 걱정해주던 종교가 이제는 세상의 근심거리로 바뀌었다는 말이 떠돌기까지 한다.

우리가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법정 스님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것은 종교가 그분들이 실천으로 보여줬던 그 가르침으로부터 너무 먼 곳으로 떠내려와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201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