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여성의 옷차림과 양말의 줄무늬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선명하게 떠오르죠." 어느 여성 소방관의 고백이다. 8년 전 처음 목격한 동갑내기 여성의 자살 모습에 아직도 괴롭다고 했다.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다른 소방관은 매일 옷을 소독하고 몸을 몇 번씩이나 씻는 날도 있다. 결벽증 증세다. 근무 중 접촉한 위급 환자들의 병균이 혹시라도 자기 아이에게 옮을까 봐 그런다고 했다. 동료 소방관이 순직하는 순간을 목격한 소방관 중 한동안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는 사례는 많다.
▶소방관들이 화재·교통사고·익사 같은 끔찍한 장면을 체험하고 나면 참혹한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아 공포감과 무력감에 온몸을 떤다. 소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다. 끔찍한 현장을 자주 접하다 보면 면역이 생길 법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악몽·환청·죄책감·불안감·우울증·불면증·공격성 등 여러 후유증을 낳는다. 불임에 시달리는 여성 소방관들도 있다.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길도 없다. 근무하지 않는 날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대인(對人)기피증으로 집안에서 처박혀 지내기도 한다. 아내를 향해 자기도 모르게 욕을 퍼붓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지난달 자살한 소방관 3명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가족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정신병에 대한 편견이 유독스러운 한국 실정에서는 동료에게조차 고민을 털어놓기 힘들다.
▶중앙소방학교에 따르면 화재를 진압하는 고위험군 소방관의 13.3%가 '정신질환 수준의 우울증 증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올 들어서만 소방관 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최근 4년간 자살한 소방관은 25명에 달한다. 2009년에는 자살한 소방관(10명)이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3명)보다 많았다.
▶일본의 경우 소방서마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치료사를 두고 있다. 끔찍한 현장에 다녀온 소방관은 의무적으로 상담받아야 한다. 미국에서도 사망 사고를 목격한 소방관은 3일 이내 정신과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피닉스 소방서의 경우 의료진 21명이 소방관 건강·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보건센터를 운영한다. 우리는 상담·심리치료를 원하는 소방관만 시·도별 재난심리치료센터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남의 눈을 피해 다닐 바에야 가지 않는 게 낫다는 분위기다. 우리가 생명·재산을 기대고 있는 소방관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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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광경 자주 접해… 지난달엔 소방관 3명 자살도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고, 정신과 가자니 눈치 보이고…
日은 소방서마다 심리치료사… 스트레스 관리 제도화 해야
경력 28년의 베테랑인 서울 용산소방서 노철재(57) 소방관은 요즘도 가끔 사람들이 창틀에 매달려 불타는 꿈을 꾼다. 12년 전 봤던 장면이지만, 온몸에 불이 붙어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 꿈을 꾸고 나면 이불이 땀에 흠뻑 젖는다.
노 소방관이 1999년 한강대교 인근의 모델하우스에서 불이 나 출동했을 때 목격했던 장면이다. 그는 "도착했을 때 입구부터 불이 활활 타올라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다"며 "2층 창가에 사람들이 매달려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도 그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왔다"고 말했다.
- ▲ 소방대원 응급구조대는 처참한 사고 현장을 제일 먼저 목격하는 사람들이다. 끔찍한 장면에 대한 기억은 소방대원들에게도 큰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 소방관이 화재 피해자를 업고 달려나오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제공
서울 성북소방서 종암센터 119구급출동대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노모(46)씨는 지난해 8월 정릉동에서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인 자살자의 사건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불에 탄 환자의 피부가 벗겨져 근육만 드러나 있었고, 몸의 지방이 녹아내려 바닥이 미끈거렸다. 노씨는 "목숨이 남아 있는 환자가 구급차에서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고문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매일 그런 장면을 보니 면역이 생기겠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노씨는 "참혹한 광경을 본 날에는 술을 퍼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비번인 날 조용한 곳에 혼자 있으면 고통스러운 장면이 자꾸 떠올라 괴롭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남에서는 3명의 소방관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악조건 속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작업을 하다 발생한 우울증 증상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관들은 화재, 교통사고, 익사(溺死) 현장 등 최악의 현장을 뛰고 있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경우가 많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끔찍한 현장을 경험한 뒤 지속적으로 공포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중앙소방학교에 따르면 화재를 진압하는 고위험군 소방관의 13.3%가 '정신질환 수준의 우울증 증세'를 갖고 있다.
사고 현장을 골라 출동하는 응급대원으로 근무하는 여성 소방관 안모(35)씨는 8년 전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날 전깃줄에 목을 매달아 숨진 한 여성과 그 옆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목격했다. 안씨는 "지금도 장마철이나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에는 그 장면이 떠올라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방관들 대부분이 이런 고통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는 것. 소방관 정모(31)씨는 8년 전 젊은 여성이 자살한 장면이 계속 떠올라 괴롭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정씨는 "소방관이 아닌 다른 친구들은 '끔찍하다'며 이런 얘기를 듣기 싫어하고, 신경정신과 치료는 조직 내에서도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어 꺼려진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소방청에선 소방관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소방서마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치료사를 두고 있다. 극단적인 사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에 대한 스트레스 장애 등에 대해 의무적으로 상담하도록 한다.
미국에서도 사망 사고를 목격한 소방관에 대해 3일 이내에 신경정신과 상담을 하도록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소방관의 심리치료를 위한 제도는 물론 예산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사공준 영남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소방관들이 '정신병자' 소리를 듣지 않고 심리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화재나 교통사고, 전쟁, 고문 등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기억이 남아 공포감이나 압박감 등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소방관들은 극단적인 참사의 현장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
-조선일보, 20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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