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역사/내매교회

[국민일보 선정 아름다운 교회길] (13) 경북 영주 내매교회

하마사 2011. 5. 23. 20:43

 

 

 

 

 

 

 

 

 

 

 

 

 

 

 

 

 

 

 

 

 

 

 

 

 

 

 

 

 

 

 

 

 

 

 

 

 

 

 

 

 

 

 

 

 

 

 

 

 

 

 

 

 

 

 

 

 

 

 

 

 

 

 

 

 

 

 

 

 

 

 

 

 

 

 

 

 

 

 

 

 

 

 

 

 

 

 

 

 

 

 

 

 

 

 

 

 

 

 

 

 

 

 

 

 

 

 

 

 

 

 

 

 

 

 

 

 

 

 

 

 

 

 

 

 

몸도 마을도 쇠락하건만 기도는 뒷산 매화처럼 활짝 피다

우리들의 행복한 부활 주일이었다.

그 교회 앞 마당엔 흔히 상사초라 불리는 부활초가 종탑 아래 단아하게 자리했다. 매발톱꽃은 부활의 아침을 찬양하듯 수줍게 피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하듯 보랏빛이었다. 민들레꽃도 함께 영광의 아침을 맞았다. 흰수국 톱꽃 백합 등꽃 금당화 옥잠화 초롱꽃 동강할미꽃 라일락 인동초 등도 호산나를 외쳤다.

2011년 4월 24일 오전 11시 경북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내매교회. 천본리는 경북 북부 지방 유림문화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전형적인 집성촌이다. 소백산 아래 소수서원, 봉황산 아래 부석사 사이를 흐르는 내성천이 사천(蛇川)을 이루는 즈음 20가구 남짓한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을 굽어보는 언덕에 105년 전통의 내매교회가 있다.

교회당은 아담했다. 적벽돌과 시멘트로 지은 건물로 예배실이 66㎡ 남짓하다. 교회 현관을 열면 오른쪽으로 첨탑에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그리고 머리를 들면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출입구가 뚫려 있다. 첨탑에 달린 종 줄이 내려오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 예배당이 봉헌된 1977년만 하더라도 줄을 당겨 종을 쳤으리라.

이날 부활주일예배 참석자는 20명. 찬양석에는 분홍색 한복을 입은 집사 한 사람과 검은색 정장을 입은 또 다른 집사 두 사람이 부활의 기쁨을 찬양했다. 피아노는 있으나 반주자가 없어 전자반주기에 맞춰 불렀다. 교인은 70대가 대부분. 평생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선대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은 이들이다. 몸도 마을도 쇠락해 가나 천국과 부활을 향한 기도만은 교회 뒷동산에 매화꽃 같이 활짝 폈다.

함오호(69) 목사는 이날 ‘부활의 증인’이란 제목으로 말씀 선포를 했다. “예수를 정죄한 사람들이 예수가 부활함으로써 정죄 받았다”며 “우리는 세상의 잣대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를, 물 위를 걷는 예수를 부인해 왔으며 지식인일수록 심했다”고 전했다. 시골교회 노목사의 말씀은 달며 쓰다. 마치 이날 예배 후 코이노니아를 위해 받은 밥상의 쓴맛 머위나물처럼.

내매교회는 지세로 보아 도무지 믿기지 않는 ‘역사교회’다. 1906년 구한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조선의 이 외진 곳에 초대교인들이 교회를 세우고 유림 가문에서 파문당할 각오를 하고 보이지도 않는 신을 위해 기도를 하다니.

이곳 출신 강재원(?∼1927·목사)은 출향하여 대구 약령시(藥令市)에 머물던 중 전도책자를 접하게 된다. 조선 전도여행하던 미국 장로교 월리엄 베어드(1862∼1931·숭실대 설립자) 선교사가 뿌린 책자였다. 야소교를 믿게 된 강재원은 개명한 세상의 필요성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와 50가구 남짓한 마을에 예배 처소를 세웠다. 초대교인 유병두씨 집에서였다. 그리고 교인이 늘어나자 자신의 집에 십자가를 높이 달아 교회의 모습을 갖췄다.

그 무렵 이 마을의 또 다른 인물 강병주(1882∼1955)는 젊은 날 승려가 되겠다고 해인사로 향하던 중 회심하여 훗날 평양신학교를 졸업, 목사가 됐다. 교육자 한글운동가 농민계몽가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두 사람은 고향에서 의기투합해 내매교회를 중심으로 마을 전체를 복음화했다. 강병주의 부친 강기원은 성격이 강포하다며 호되게 야단을 쳤던 아들의 변화에 놀라 예수를 믿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예루살렘 이상촌’ 건설을 위해 향약 6개조를 만들어 실천했다. ‘우상숭배 금지와 미신타파’ ‘음주 도박금지’ ‘일경(日警) 출입금지’ ‘신·불신 막론 관혼상 지원’ ‘소 외에 가축사육 금지 통한 청결한 마을 가꾸기’ ‘주일 우물 사용 금지’와 같은 것이었다.

일경 출입을 금지시켜 가며 신앙을 지켜온 내매교회는 1948년 9월 좌우대립 속에 좌익에 의해 6명의 성도가 숨졌고, 내매교회도 불탔다. 앞서 남녀유별의 유교사상 때문에 헌당했던 ‘ㅅ자’ 예배당은 급격한 교인 증가로 새 성전을 헌당하면서 아쉽게도 사라졌었다. ‘ㅅ자 교회’는 한국 초대교회 건축사적 의미로도 복원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 교계와 건축학계의 의견이다.

또한 1910년 설립한 교회학교 부설 내명학교는 경북 북부 첫 조선총독부 인가 근대식 학교로 장로교단의 거목 강신명(1909∼1985) 목사 등을 비롯한 인재의 산실이었다. 내명학교는 내명국민(초등)학교에서 1991년 평은초교 내명 분교로 격하됐다가 95년 평은초교에 흡수되면서 폐교된다.

그러나 1915년 내매교회 여전도회가 마련해 기증한 땅 위에 설립됐던 학교 건물은 지금도 교회 맞은편에 쓸쓸히 남아 있다.

내매교회를 중심으로 내명학교, 내명마을 출신은 근대화시대 기독교 신앙으로 소금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 이들이 적잖다. 계명대학 설립자 강인구 목사, 강신정 전 기독교장로교 총회장, 강병도 전 창신대 총장,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한데 강산과 인걸이 분명한 ‘한국의 이스라엘 이상촌’이 곧 수몰된다. 건설 중인 영주댐이 완공되고 담수가 시작되면 2013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이에 따라 1910년대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내명학교(현 사택), ‘ㅅ자 교회터’ ‘여전도회 기증 학교터’ 등을 더는 볼 수 없게 된다.

함오호 목사와 교인이 영주의 모교회 ‘내매교회 이주 복원계획안’을 만들어 영주시, 문화재청 등에 기독교 근대문화유산으로 되살려 달라는 청원을 내고 있으나 교단 및 교계의 전폭적인 지지가 뒤따르지 않는 한 이 유적을 이어받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수몰지는 쓸쓸하다. 마을앞 은빛모래 고운 내명천을 따라 4㎞ 거리에 위치한 면사무소, 그리고 천변을 따라 계속 내려가다 만나는 중앙선 폐역 평은역 등은 고요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부모가 죽은 후 찾은 고향 마을 같은…또는 예수 사후 거리 풍경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오후 1시30분. 내매교회 마당이 부산스러웠다. 영주남부지역 8처교회 부활절 연합예배를 위해 산 넘어 망월교회로 가는 봉고차가 시동을 걸었다. 유순희(52) 집사 등이 밝은 얼굴로 나이든 교인을 부축해 태웠다. 골구렁 골을 따라 차가 산으로 오르자 수몰지역이 한눈에 보였다. 멀리 복음을 들고 내매마을로 들어오던 초대교인들이 걷던 신작로가 강과 나란히 이어졌다.

청교도들이 그러했듯이 내매교회도 이주단지에서 새로운 신앙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부활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영주=글 전정희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영주 내매교회 가는 길

서울 기준. 동서울터미널에서 1시간에 두 차례 있는 영주행 버스편을 타면 된다. 영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평은면 천본리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 하루 3차례 정도밖에 운행하지 않아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택시비는 1만원 정도.

기차는 청량리역에서 영주역까지 하루 7차례 무궁화호가 운행한다. 오후 5시 열차는 새마을호다. 자가용 이용의 경우 중앙고속도로 풍기IC를 빠져 나가면 된다. 경북 영주시 평은면 천상로 259번길 내매교회(054-637-3082).

근처 맛집 풍기한방삼계탕

30년 넘게 삼계탕을 끓여온 오경옥(64·사진) 사장. 매년 가을이면 질 좋은 인삼을 찾아서 전국을 헤맸다. 향이 진하고 단단한 풍기인삼이 최고의 삼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막내까지 대학을 졸업하자 경북 포항에서 20년 가까이 운영하던 삼계탕 집을 툭툭 털고 경북 영주시 풍기읍으로 향했다. 남편 고상열씨와 물 좋고 산 좋고 공기 맑은 소백산 자락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

오씨는 매일 아침 일반 육계보다 비싸지만 육질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어린 토종 생닭만을 공급받는다. 소백산에서 생산되는 인삼과 한약재 11가지 외 오가피, 엄나무 등을 넣고 2시간 이상 우려낸 약물에 기름기를 제거한 토종닭을 넣고 다시 한 번 끓여내 손님상에 올린다.

맑으면서도 연한 갈색을 띠는 국물은 진한 향의 풍기인삼과 약초가 어우러져 닭 특유의 비린내와 한약재 냄새가 나지 않는다. 천일염으로 두 시간 이상 정성껏 볶아낸 죽염으로 적당히 간을 한다.

종갓집 며느리인 친정어머니 밑에서 어려서부터 ‘친정시집살이’를 충분히 해 음식 하나만큼은 자신한다는 오씨. 그의 손으로 버무려낸 깍두기 열무김치 양파김치 등 밑반찬은 정갈하고 깊은 맛이 있다. 인삼찜닭 역시 이 집의 인기 품목. 취향에 따라 매운맛의 정도는 미리 주문하면 된다. 뜨거운 삼계탕은 시원한 열무김치와, 얼큰한 찜닭은 새콤달콤한 양파김치와 궁합이 잘 맞는다.

이 식당은 지난해 일본 TBS TV 연말특집방송 ‘세계음식기행’에서 ‘한국의 가 볼 만한 맛집’으로 뽑혀 방송을 타기도 했다. 서울, 부산 등 외지 단골 고객도 많다.

한방삼계탕 1만원, 인삼찜닭 3만원. 인삼튀김 1만∼2만원, 인삼곰탕 9000원이다. 중앙고속도로 풍기 IC를 빠져나와 시내 방향으로 4㎞ 지점 풍기파출소 건너편에 위치(054-638-2600).

글·사진=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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