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예루살렘 「내매교회」를 찾아서
동네일 의논하던 신도 6명 현장 사살
영주신문, [2002-06-22]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1103번지에 위치한 내매교회를 찾았다. 내매는 봉화에서 내성천을 따라 남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옛 영천(榮川)군의 진주강씨 집성촌이다. 내매교회는 지금부터 약 97년전 선교사 배위량·안두희의 전도를 받은 강재원 장로가 지곡에 살고 있는 강두씨와 함께 안동 방자미교회를 다니던 중 1906년 내매 동리 유병두씨의 사랑방을 빌려 기도처소로 정하고 예배를 드리다가 이듬해 1907년 봄 자신의 집으로 옮겨와 교회의 면모를 갖추고 예배를 드린 것이 내매교회의 시작이다. 초창기 교인으로는 강재원 외에 강신두, 강병창, 강석구 강석복 등이 있었고 초기의 부흥사 길선주, 김익두 목사 등을 초청하여 대부흥회를 열어 신앙의 부흥이 일어남과 동시에 교육 향학의 열기도 대단했었다. 1910년 전답 40여 두락(마지기)을 기본자산으로 하여 사립 내명학교를 강석진이 설립(당시 조선 총독부 학제 1542호) 하였고 학교장에 강병주, 교사로는 안광호가 담당했었다. 극적으로 살아 남은 우주봉전도사 그때일 못잊어 동네가 50세대에 불신자 한 명 없는 한국의 예루살렘 이상촌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향약 6개조를 만들었다. 당시 그 향약 6개조를 보면 ①우상숭배와 선조제사를 엄금하고 구습타파와 미신을 일소한다. ②동민 전체가 주초, 장기, 바둑, 도박, 주막 출입을 불허한다. ③일제의 앞잡이인 경찰관 지원을 엄금한다. ④신·불신을 막론하고 빈약한 관혼상에는 자비량으로 협조한다. ⑤소 이외의 가축 사육을 금지하며 깨끗한 신앙촌을 만든다. ⑥주일은 성수 주일하며 우물문을 잠그고 전날에 준비한다. 이와 같은 신조 아래 온 동네를 복음화하려 했으며 이런 복음화의 의지는 봉화 최초의 교회가 된 문촌교회를 비롯한 많은 교회가 발전적으로 분립되어 개척교회 수가 5개 교회나 된다. 1949년 9월 29일 사랑방에서 동네 상황을 의논하던 중 공산폭도들이 쳐들어와 강신구 아버님, 강낙구 아버님 등 7명이 따발총으로 마구갈겨 모두 죽었으나 우주봉 전도사는 다리만 관통되어 살았다. 공산폭도들은 이어 교회로 가서 방화하였고 이로 인해 교회는 전소되었다. 1953년 강재원 장로, 강신유, 배세란, 강신종 등이 협력하여 목조와가 20칸을 다시 건축하였다. 내매교회는 그 동안 목사 20여명, 한국의 유명대학교 학장, 기업가 등을 배출하였다. 전 삼성전자 사장(강신구), 계명대학 설립자(강인구 목사), 창신대학교 학장(강병도 장로), 예수교장로회 총회장 강신명 목사와 그의 동생 강신정 목사는 기독교 장로회 총회장 등 이들 모두가 내매교회 출신이다. "내매교회는 역사적인 교회입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는 교회를 만들며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미래 지향적인 교회입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기도하고 교육하며 나아가 지역을 섬기며 선교하는 교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유재현 담임교역자의 말이다. 그는 현재 40여명의 교인들과 함께 교회 100년사 준비중에 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교회 안을 들어서는 순간 아담하게 꾸며져 있는 내부가 참 정겹고 아름답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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