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에서 제일 오래 된 105년의 역사를 가진 영주시 평은면 내매교회가 영주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게 되어 뜻있는 사람들이 영주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내매교회 함오호 담임목사(68,영주시 평은면, 사진)는 “비록 지금은 쇠락하여 교인이 25명 정도에 불과한 시골 교회지만, 경북북부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역사가 있는 교회가 수몰위기에 처하는 것이 안타까워 그냥보고만 있을 수 없어 교회를 이전하여 복원하고 보전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매교회는 개화기에 인근교회와 영주노회의 모교회로 지역복음에 크게 기여했으며 또한 1910년에 기독내명학교를 설립하여 지역사회에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과거 일제시대에 반일운동 시발과 신사참배거부와 공산당 빨치산과 맞서 싸운 유서 깊은 교회이다. 특히 내매교회 출신 강신명 목사는 이북에서 월남해 한경직 목사와 함께 영락교회를 세우고 동 교회 목회를 했으며 새문안교회도 부임 24년 간 목회하여 총회장으로 큰 역할을 한 목회자이다.
또한 숭실대학교 이사장 총장은 물론 서울장신대학교 교장과 이사장을 24년간이나 역임하면서 학교법인을 만들고 가진 재산과 부동산을 모두 학교에 헌납해 대학교의 기틀을 쌓은 헌신과 모범을 보인 창학자이다.
또한 내매교회는 강신정 목사 외 30여명의 목회자와 삼성반도체 강진구 회장, 마산 창신대학교 강병도 총장, 영주영광교육재단 강석일 장로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국가와 종교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러한 근현대사의 보존가치가 있는 내매교회와 사립내명학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전국 각지의 내매교회 출신인사와 신도들이 내매교회와 내명학교를 현 교회와 가까운 곳에 이전 복원하여 기독교 역사의 교육장과 박물관으로 활용하자는 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함오호 목사와 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전국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청와대 국토해양부 문화관광자원부 수자원공사 경상북도지사 도의회 영주시 시의회 영주댐건설 사업단장 국회의원 대한예수교 장노회총회 서울장노회 신학대학교 대한예수교장노회 영주노회장등 14개 기관단체에 영주댐 수몰예정 근현대사 유산 영구보존 청원서도 발송했다. 대다수기관에서 긍정적인 의견으로 회신이 오고 있다.
평은면 강 모씨는 "선비의 고장 영주는 유서 깊은 유불문화의 고장으로 부석사 소수서원 등 전통사찰과 고택 들이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아서 보존 관리되고 있고, 수몰예정지역의 고택과 정자들도 복원 이전 계획이 되어 있는데, 근현대사 문화유산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본 교회가 수몰과 보상이라는 단순 논리를 떠나 이주 복원 전승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내매교회의 역사와 초창기의 역할-
내매교회는 1906년(고종43년)4월18일 강재원이 내매마을 유병두씨 사랑방을 빌려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듬해 자기 집 뜰에 십자가를 높이 달고 예배처소를 만들어 주일예배를 드리니 비로소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때 신자는 강재원 가족과 강병주 (강신명 목사의 부친) 강병창 강신옥 강신유 강석구 강석복 유병두 등이었으며 이들은 믿음생활과 함께 머리를 깎고 미신을 타파하는 등 개화운동과 신농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고 강재원을 잠깐소개하면 그는 고향을 떠나 잠시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곳 약령시에서 미국선교사 배위량의 전도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또한 대구지역 최초의 교회인 대구제일교회 예배당을 세울 때 그 교회에 다니다가 고향 마을에 돌아와 교회를 세우며 기독교인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이후 1910년 강병주 목사 강석진목사가 주축이 되어 기독내명학교를 설립하여 개화기의 신문화도입과 문맹퇴치운동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후 많은 어린이들이 교회주일학교에 모여 교회가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창기 시민기자
-yes tv, 20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