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순한 양으로 보이면 죽는다

하마사 2011. 4. 29. 17:32

강인선 국제부장

베두인족 노인이 칠면조 고기를 먹으면 젊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칠면조 한 마리를 사다가 키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누군가 이 칠면조를 훔쳐갔다. 노인은 아들들을 불러 칠면조를 찾아오라고 했다. 아들들은 그까짓 칠면조는 무엇에 쓰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몇주 후 노인은 낙타를 도둑맞았다. 그는 아들들에게 다시 칠면조를 찾아오라고 했다. 이번에도 아들들은 들은 체 만 체했다. 몇주 후 노인은 말을 도둑맞았다. 그제야 발을 동동 구르는 아들들에게 노인은 또 칠면조를 찾아오라고 했다. 다시 몇주가 지난 후엔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 노인은 "이 모든 것이 다 칠면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이 내 칠면조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에 나오는 베두인족의 전설이다.

베두인족 노인과 칠면조 이야기는 늑대가 우글거리는 사막에서 살아가려면 경쟁자들에게 '양보 잘하는 순한 양(羊)'으로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동의 사막지역에서 부족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생존의 법칙이다. 물과 목초지가 부족한 사막에서는 우리 부족이 살기 위해 다른 부족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원칙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이 강조한 이들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생존법칙은 외부의 중재자나 법을 강제할 정부가 없는 사막에선 누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힘과 무자비함을 수시로 과시하고, 다른 부족과의 연합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이런 삶의 방식은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바람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가 왜 갑자기 내전(內戰) 양상으로 변해 죽기 살기의 치열한 싸움으로 발전했는가는 바로 이런 부족정치 문화를 감안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현재 날로 격렬해지는 시리아 상황도 부족 간 대결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월 튀니지에서 벤 알리 대통령이 축출되고, 2월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했을 때만 해도 중동 민주화가 순식간에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전체를 휩쓸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바람은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반격에 일단 멈칫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걸프 왕정 국가들이 이 지역에 쏟아부은 오일머니 세례도 시위 바람의 확산속도를 눈에 띄게 낮추는 데 기여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중동의 장기 독재자들이 놀라운 속도로 튀니지와 이집트의 교훈을 학습했다는 것이다. 아들들을 감옥에 보내고 자신도 검찰 조사를 받는 무바라크는 순순히 권력을 내놓을 때 어떤 결과와 맞닥뜨릴 것인지를 보여줬다. 스마트폰과 트위터, 페이스북은 짧은 시간에 많은 시위대를 동원하는 놀라운 도구이지만 독재자 입장에서도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신무기'라는 것도 가르쳐줬다. 미국과 연합군이 전투기를 수천 번 출격시켜도 카다피를 퇴진시키기는 어렵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어렵게 시작된 중동 변화의 바람이 쉽게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위 경험을 통해 계속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는 시위대와 독재자의 대결은 더 치열해지고 혁명의 대가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것은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본 것과는 달리 더 많은 피를 흘린 결과 얻어진 값비싼 혁명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일보, 201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