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교육

선교사 자녀로 산다는 것

하마사 2011. 3. 17. 20:01

"오지에서… 삶은 매일매일 고문이었다"고 말하는 아이들… 선교사 자녀로 산다는 것

 

예민한 청소년기에 고통 많아…
美 한인교회 지용주 목사, 한국 선교자 자녀 가르치는 '여수룬 기독학교' 9월 개교

 

"나보다 서너 배는 눈이 큰 여자아이가 말똥말똥 쳐다볼 때면 그 눈을 찔러버리고 싶었다. 현지 생활에 어렵게 적응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학교생활, 문화, 예절이 또 달라졌다. 아이들은 나를 별종 취급했고, 난 왕따가 됐다"―중앙아시아 선교사의 딸 장모(18)양

"삶은 매일매일이 고문이었다. 아이들은 '칭챵(중국인 흉내로 동양인을 비하하는 소리)'이라고 부르며 놀려댔다. 내 소원은 지긋지긋한 선교사 자녀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터키 선교사 부부의 아들 조모(19)군 (선교사 자녀 체험수기집 '하늘아이들' 중)

한국 교회는 지난 1월 현재 세계 169개국에 2만445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개신교 선교 대국이다. 부모들은 소명을 따라 헌신하지만, 문제는 자녀들이다. 선교사 부모는 파송된 오지에서 사역하고, 아이들은 멀리 떨어진 대도시 국제학교에 혼자 다니는 경우도 많다. 한참 예민한 청소년기에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기도 한다. 교계에서 MK(Missionary Kids) 혹은 TCK(Third Culture Kids)라 부르는 아이들이다.

우리 선교사들은 케냐, 수단 등 저개발 오지에서 대단한 봉사를 펼치고 있지만, 그들의 자녀는 외로움으로 방황하기도 한다. 사진은 월드비전과 사진작가 조세현씨가 봉사활동을 했던 케냐의 투르카나초등학교 모습. 선교사들은 이곳에서 아이들을 먹이고, 거둔다. /사진작가 조세현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 한인교회의 지용주(54) 목사는 오는 9월 개교를 목표로 전세계에 파송된 한국 선교사 자녀들을 모아 가르치는 '여수룬 기독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여수룬'은 구약성경 이사야 44장 2절에 나오는 '올바른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다.

지 목사는 미국 유타대 기계공학박사 출신으로, 어렵게 신학교를 마친 뒤 현재 뉴욕주 시라큐스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소명을 따라 사역에 나서지만 자녀 문제로 겪을 수밖에 없는 선교사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자신이 겪어본 고통이기 때문이다.

1997년 9월 지 목사가 미국 멤피스의 남침례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통장 잔고는 7달러였다. 부인 배수향(53) 전도사는 "매일 먹고 입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작은아들 민국(21)씨는 5학년 때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는 공학박사라면서 왜 직업(vocation)이 없어요?" 공부를 잘했던 맏아들 대한(26)씨는 전형료 70달러가 없어 스탠퍼드대 지원을 포기했다. 부부는 매일 밤 눈물 속에 기도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살아도 헌신하고 충성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두 아들은 제발 하나님께서 돌봐 주세요." 지 목사는 "선교사라면 현지 언어, 문화, 사역 등 자신들의 희생과 헌신은 무엇이든 견딜 수 있지만 자녀의 교육 문제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밤낮으로 몸부림쳐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지용주(오른쪽) 목사와 배수향 전도사 부부. /이태훈 기자

현재 지 목사의 맏아들 대한 씨는 스탠퍼드 로스쿨을, 둘째 민국 씨는 에모리대를 다닌다. 지 목사 가족이 버텨낸 데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선한 이웃들의 도움이 컸다. 쌀이 떨어질 때쯤이면 집 앞에 쌀 포대가 놓여 있고, 돈이 떨어질 때면 누군가 우편함에 돈이 든 봉투를 놓고 가곤 했다. 유학생들을 모아 밥을 먹일 땐 한인 수퍼마켓 사장이 식재료를 대주기도 했다. 지 목사는 "우리 가족은 어려움 속에서도 기적처럼 이어진 도움들 속에 예비된 길을 따라 걸어올 수 있었지만, 자녀 교육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모든 선교사들에게 기적이 일어나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했다.

지 목사의 노력으로 작년 11월 기독교한인세계선교협의회(KWMC) 산하에 '선교사 자녀학교 설립 협력기구'가 만들어졌다. 학교를 시작하려면 파트타임 교사와 자원봉사자 지원이 있더라도 전임 교사가 최소 3명, 교직원이 최소 1명 필요하다. 개교 초기에 필요한 재정 마련도 난제다. 지 목사는 "학교 인수나 건축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일단 적은 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홈스쿨링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파산한 학교를 인수하는 방식도 고려 중이다. 홈스쿨링은 아이들 비자 문제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정식 학교가 되면 학생비자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지 목사는 "쉽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교회에 비전을 주시면서 동시에 꼭 이루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시라큐스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선교사 자녀를 품는 학교들이 세워지고 시작되길 바란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