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정

예단비 10억

하마사 2011. 2. 8. 16:24

결혼이란 무엇인가. 프랑스에 이런 유머가 있다. 상인 "위험한 투기", 군인 "30년 전쟁", 의사 "열병(熱病), 고열이지만 곧 내려간다", 음악가 "합창, 소프라노 알토가 강하다", 일기예보관 "맑은 후 흐림, 때때로 천둥 번개", 부동산중개사 "장기계약"…. 21세기 한국의 웨딩플래너라는 직업인에게 물으면 이런 답이 나올 것 같다. "예단비라는 난관을 통과해야 하는 장애물 경주."

▶결혼에 따르는 선물이나 경제적 교환 행위는 전 세계에 공통적인 것이다. 머독이란 인류학자가 조사했더니 표본 중 47%의 사회에서 신랑이 신부측에 돈이나 재물을 지불하는 '신부대(代)' 관습을 갖고 있었다. 남자가 결혼을 앞두고 여자 집에서 일정 기간 노동을 해주는 '봉사혼' 풍습은 14%였다. 반대로 신부측에서 신랑이나 그 가족에게 재물이나 현금을 지불하는 '지참금' 제도가 있는 사회는 4%였다.

▶지참금 관습이 남아 있는 나라는 동남부 유럽 일부와 아시아, 특히 인도다. 이 지역은 쟁기와 관개(灌漑)시설을 이용하는 농업이 발달했다. 농사일이 힘들다 보니 남자 몫이 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남자들 목소리가 커졌다. 신부대 관행은 남태평양 지역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많다. 이 지역은 호미나 괭이 등 원시농업이 발달했다. 생산활동을 여성이 했기에 여성의 힘이 셌다. (최협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우리나라도 고대부터 아끼던 물건을 주고받으며 결혼을 약속하는 풍습이 있었다. 조선후기 들어 전통 신분제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부유층이 등장하면서 신분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호화 예물로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오늘날 함이 밤에 가는 풍습이 생긴 것은 관리의 단속을 피해 함 안에 비싼 예물을 담아가려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결혼을 하며 10억원의 현금을 예단으로 주고받았던 신혼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자 법원이 돈을 받은 신랑에게 전액 신부측에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어떻게 번 돈이기에 10억원씩이나 예단비로 쓰는 집이 있는지 놀랍다. 신랑 가족에게 줄 선물을 현금으로 셈해 보내고 신랑측은 이 중 일부를 봉채란 이름으로 되돌려 보내는 풍습은 100년 전만 해도 없던 일이다. 지금은 농경시대가 아니다. 어른들의 분수 없는 체면치레나 과시욕 때문에 사랑은 돈으로 완성된다고 착각하는 젊은이도 생기는 것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