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잡지 갱년기 특집을 보니까 폐경을 맞는 여자들은 저녁 무렵에 근거 없는 불안을 느낀다던데… 저녁 무렵 언니가 하는 말은 거의가 하나마나 한 말이었다. 언니의 말은 노을이나 바람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고 멀게 들렸다.' 김훈은 단편 '언니의 폐경'에서 50대 여자의 푸석푸석한 몸과 쓸쓸한 내면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자매의 아파트 앞, 해질녘 서해에 다다른 한강은 황혼기에 이른 여자의 삶을 상징한다.
▶조선일보가 여론조사기관들과 함께 10개국 사람들의 행복도를 조사했더니 한국의 50대 여성이 가장 낮았다. "불행하다"는 답이 37%에 이르러 덴마크와 인도네시아 50대 여성의 17%와 0%를 압도했다. 다른 나라 여성들이 자식들을 독립시킨 뒤 가뿐한 마음으로 자기 삶을 즐기면서 행복도가 치솟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비명이다.
▶50대 여성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이고 내 인생은 어디로 갔느냐고. "나 지금 안식년 휴가 떠나요/ …/ 그날 우리 둘이 나란히 서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겠다고/ 혼인서약을 한 후/ 여기까지 용케 잘 왔어요/ …/이제 내가 나에게 안식년을 줍니다// 여보, 일년만 나를 찾지 말아 주세요/ 내가 나를 찾아가지고 올 테니까요"(문정희 '공항에서 쓸 편지'). 50대 여성들이 꿈꾸는 행복이란 공항에서 그런 편지를 쓰는 세상이 아닐까.
-조선일보 만물상, 20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