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만 살짝 돌릴 수 있는 남편 돌보는 이금안씨
81년 라디오 통해 사연 듣고 서울서 군산으로 찾아가 수발
3일간 간호 뒤 떠나려 하자 "당신만 있으면 살 수 있어…"
애절한 호소에 함께 살게 돼 82년 기도원서 결혼식 올려
"이 사람 나 아니었으면 평생 결혼도 못했을걸."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한 아파트의 20여㎡(6평) 남짓한 방에서 병원용 침대에 누운 김정언(68)씨가 부인 이금안(54)씨에게 농담을 건넸다. 정성스럽게 남편 몸을 주무르던 이씨가 "아이고, 이이가 말은…" 하며 웃었다. 남편 김씨는 뻣뻣하게 굳은 고개를 돌리지 못해 아내의 웃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저 사람 아니었으면 30년 전 난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됐을 겁니다"라며 허공을 응시하던 김씨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공군 의장대를 제대하고 대전에서 제약회사에 다니던 김씨는 1969년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서 강직성 척추염과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온몸이 굳어간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을 고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나름대로 유복했던 집인데 내 병원비 댄다고 기울어 버렸다"고 했다. 형제들이 결혼·취업으로 나가 살아 어머니와 둘이 살던 김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어머니와 군산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몸은 계속 굳어갔다. 그는 "77세 노모와 살며 정부에서 주는 약간의 쌀로 연명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어느 날 딱한 사정을 듣고 김씨 집에 들른 한 자원봉사자가 이 사연을 라디오 방송에 내보냈다. 지금의 아내 이금안씨는 우연히 그 방송을 듣게 됐다.
- ▲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한 아파트에서 이금안(54)씨가 침대에 누운 남편 김정언(68)씨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씨는 몸이 굳어 아내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이씨는 가족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결혼식을 강행했다. 둘은 만난 지 1년이 안 된 1982년 8월 군산 인근의 기도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 누나와 어머니만 참석한 결혼식 내내 신랑 김씨는 침대에 누운 채 눈물을 흘렸다.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이었다. 이씨가 아픈 김씨와 살자 동네 사람들은 "저 여자 간첩 아니냐"며 수군댔지만, 점차 시선이 달라졌다. 김씨가 아파서 밤마다 내는 울음소리가 "귀신 같다"고 말하며 아이들을 김씨 집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던 사람들은 어느새 "귀신의 집에 '천사'가 왔다"며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씨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장사를 하고 십자수를 뜨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김씨 부부는 형편이 어려워 수차례 이사를 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군산 일대의 단칸방을 옮겨다녔지만, 슬하에 아들과 딸 두 자녀도 낳았다. 어려워도 행복하게 사는 부부를 본 이씨의 오빠들이 지난해 5월 지금의 아파트를 마련해줬다.
부부에게는 항상 사람들이 찾아온다. "우리 부부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언젠가 한번은 이혼위기를 맞은 부부가 우리를 만난 뒤로 이혼할 생각을 버렸다고 합니다. 아주 기뻤어요." 김씨 부부는 "생활이 넉넉하고 몸도 멀쩡한 사람들이 가정 불화로 고통받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우리가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한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조선일보, 2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