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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만에 주인공 빠진 노벨평화상 시상식 "빈 자리

하마사 2010. 12. 12. 11:22

류샤오보는 끝내 차디찬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각국 대표·인권운동가들·펠로시 美 하원의장… 사진을 향해 '숙연한 박수'
"류샤오보 석방하라" 인권운동가 수백명 시상식 후 횃불행진

 

주인공은 그 자리에 없었다. 현장 TV 카메라는 자꾸만 단상의 빈 의자에 앵글을 맞췄다. 단상 오른쪽 일곱 자리 중 두 번째 의자, 갈색 종려나무로 만든 파란색 등받이에 세 마리의 백학이 새겨진 평범한 의자였다.

10일 오후 1시(현지시각) 노르웨이 오슬로시청의 2010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장. 중국의 반체제 작가 류샤오보(劉曉波·55)에 대한 시상식은 노르웨이 국왕 하랄드 5세 내외와 토르비에른 야글란 노벨위원장이 나란히 입장하면서 시작됐다.

빈 의자에 올린 노벨평화상…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시청에서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됐다. 노르웨이 국왕 부부 등 1000여명의 축하 사절단이 참석했다. 수상자인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와 그의 가족들은 불참했다. 단상에 놓인 의자 중 왼쪽에서 두 번째 빈 의자가 류샤오보의 자리다. 빈 의자 위에는 알프레드 노벨의 얼굴이 새겨진 금메달과 증서가 놓여 있다. /AP 연합뉴스

◆75년 만의 궐석 시상식

그러나 이날 시상식은 예년의 축제 분위기가 아니었다. 특히 노르웨이 음악가 에드바르드 그리그(Grieg)의 곡 '솔베이그의 노래'를 소프라노 마리타 솔베르가 애잔한 고음으로 부르면서 장내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그 겨울이 지나 봄은 가고, 봄은 또 가고. 그 여름이 가면 한 해가 간다, 세월이 간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안다, 당신이 다시 올 것을, 당신이 다시 올 것을…."

이어 야글란 노벨위원장의 경과 보고가 있었다.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중국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온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동북지방의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러나 그의 구금과 시상식 불참 자체가 그에게 이 상을 주는 것이 적절했음을 입증한다. 그는 기본 인권을 주장했을 뿐이며, 아무런 잘못도 없다. 그는 반드시 풀려나야 한다…."

그 순간 노르웨이 국왕 부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 50여명의 오슬로 주재 각국 대사와 국제기구 대표들, 홍콩미국·유럽에서 온 중국의 망명 반체제운동가 등 1000여명이 기립해 류샤오보의 빈자리와 벽에 걸린 대형 사진을 향해 1분 넘게 박수를 보냈다. 류샤오보의 톈안먼사건 참가와 민주화운동 등 약력을 소개하는 중간에도 박수는 서너 차례 이어졌다.

예년 같으면 그 직후 알프레드 노벨의 얼굴이 새겨진 금메달과 증서, 1000만 크로네(약 140만달러)의 상금을 수상자에게 전달했지만 이날은 생략됐다. 대신 경과 보고를 마친 야글란 위원장은 류샤오보가 앉았어야 할 빈 의자에 증서를 내려놓았다.

이후 노르웨이 여배우 리브 울만(Ullmann)이 연단에 섰다. 그녀는 류샤오보가 작년 12월 징역 11년을 선고받았을 때 법정에서 했던 최후 진술 '나는 적(敵)이 없어요'와 그의 수필, 일기 등을 발췌해 낭독했다. 류샤오보의 희망대로 노르웨이 국립극단 소속 어린이합창단이 동요와 민요 세 곡을 부르는 것을 끝으로 시상식은 75분 만에 끝났다. 1935년 나치 정권의 방해로 수상자가 불참한 뒤 75년 만에 수상자나 가족이 불참한 '궐석(闕席) 시상식'은 그렇게 끝났다.

◆긴장 속의 오슬로와 베이징

시상식이 끝난 직후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은 "노벨위원회는 정치극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녀는 "진실은 노벨위원회의 결정이 전 세계인 다수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일방적인 것과 거짓말은 설 땅이 없으며 냉전시대 사고는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류샤오보 국제법률지원팀의 어윈 코틀러 교수는 "류샤오보의 빈 의자는 불행하게도 중국에서 헌법상의 약속과 법치주의가 경제 논리에 뒷전으로 밀린 현실을 상징한다"고 꼬집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성명을 통해 "류샤오보와 그의 부인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그는 나보다 더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9일 노르웨이의 중국대사관 앞에서 한 여성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사진을 들고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시상식 직후 홍콩과 미국, 유럽에서 몰려온 인권운동가 수백명은 전날에 이어 "류샤오보를 즉각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오슬로 시청에서 만찬장까지 횃불 행진을 벌였다. 전날에도 약 100명의 시위대는 '류에게 자유를' '중국의 자유' 등의 구호를 외치며 노르웨이 주재 중국 대사관까지 시가행진을 벌인 뒤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는 10만명의 청원서를 공개했다.

반면 '노르웨이 중국협회'는 이날 노르웨이 의회 앞에서 친(親)중국 집회를 가졌다. 국제사면위원회는 "노르웨이 주재 중국 외교관들이 현지의 중국 교포들에게 '횃불 행진에 가담하지 말고 노벨상 반대 집회에는 꼭 참석하라'고 괴롭혔다"고 전했다.

류샤오보는 이날도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교도소에 갇혀 있었다. 가택 연금을 당하고 있는 그의 아내 류샤(劉霞)의 아파트 주변에는 이날도 정·사복 경찰 수십명이 지켰다.

홍콩 빈과일보는 10일 "베이징 시내 음식점과 술집 주인들이 최근 지역 파출소에 불려가 '9~11일까지 6인 이상 단체 손님을 받지 말라'는 지시와 함께 '류샤오보의 수상을 축하하는 손님이 있으면 즉시 신고하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201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