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도부는 正位置를 지키라… 휴전선 전면 재점검·재보강하라
여야 政爭접고 안보 초점 맞추라… 사태 진전 즉각 알려 불신 없애라
국민은 내부 교란 책동 경계하라
북한이 대한민국을 정면으로 공격해 왔다. 천안함 폭침사태 이후 8개월 만에 1953년 휴전 이후 최초로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포격해 군인과 민간인을 다시 살상(殺傷)했다. 북한은 23일 오후 2시 34분부터 1시간 넘게 서해 연평도에 수십 발의 해안포와 곡사포 공격을 퍼부었다. 북한 포격으로 이날 밤 12시 현재 우리 해병대원 서정우 병장과 문광욱 이병이 전사(戰死)했고 군인 16명이 다쳤으며 민간인 3명도 부상했다. 연평도 주민들의 집 여러 채와 숲이 불탔다. 연평도는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북한 포격으로 발생한 산불이 민가로 옮아붙어 주민들이 방공호로 긴급 대피했다. 연평도 주민 200여명은 이날 밤 늦게까지 수십명씩 어선 여러 척에 나눠타고 인천으로 빠져나왔다.
우리 군은 북한이 포를 발사한 황해도 강령군 개머리 기지와 무도 기지에 K-9 자주포 80여발을 대응 사격했다. 두 기지는 모두 연평도에서 10여㎞ 떨어져 있다. 공군 F-15·16전투기와 해군 함정도 현장에 긴급 출동했다. 군은 올 초 교전규칙을 개정, 북한이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측에 포격을 가하면 북한의 포 진지를 직접 타격하도록 했었다. 군은 이 교전 규칙에 따라 북측의 해안포 발사 지점을 겨냥해 집중 사격했으나 북측의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합참은 서해 5도에 북한이 국지(局地) 도발을 감행했을 경우 내리는 대비태세 중 최고 수준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으며, 대북 감시 태세인 '워치콘'을 3단계에서 2단계로 격상했다. 이와 함께 한·미 군은 연합사 차원의 공동위기관리 상황에 돌입했다.
북한의 이번 공격은 서해상의 남북경계선인 NLL의 무효를 주장하며 과거 여러 차례 서해5도 인근 해상에 포 공격을 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대한민국에 대한 직접 도발이다. 민간인 거주 지역 공격은 전시(戰時)에도 국제법이 금지하고 있는 전범(戰犯) 행위이다.
대한민국을 향한 북한의 이번 도발을 응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군이 능동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군사적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 수동적으로 이끌려 다니는 것은 절대 금물(禁物)이다. 그러려면 국제법과 정전협정,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 '불가침 합의'를 위반하고 대한민국의 민간인과 국군을 살해한 북한의 행위를 즉각적이고 충분하고 정확하게 응징해야 한다. 적이 불법적 공격은 비례(比例)의 원칙 이상(以上)의 보복을 불러올 것임을 뼈에 새길 수밖에 없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군이 지난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태를 즉각적으로 충분하게 응징할 기회를 놓친 것이 오늘 이런 사태를 빚은 또 하나의 원인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포격 도발 직후 한민구 합참의장에게 "몇배로 응징하라. 북한 해안포 기지 부근에 (북한) 미사일 기지가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그쪽에서 도발 조짐을 보이면 타격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밤 서울 용산의 합참을 방문해서도 "100번의 성명(聲明)보다 행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군의 의무"라며 "북한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즉각 적 기지를 타격하는 등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연한 대처다.
지나간 일이지만 국가의 안위(安危)가 위협받는 결정적 순간에 청와대 일부 관계자가 대통령 발언을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擴戰)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라"고 잘못 전했다가 거둬들였던 실수는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된다. 적의 불법 무도한 공격에 맞서는 자리에선 우리 국민이 받은 피해의 몇 배 이상을 적에게 되돌려주겠다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치열한 정신이 필요할 따름이다.
북한은 이날 공격에 앞서 오전에 우리 군의 3군 합동군사훈련인 '호국훈련'을 문제 삼으며 북측 지역에 사격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연평도 공격 뒤에는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 영해에 포사격을 가하는 군사적 도발을 감행해 우리 혁명무력이 즉시적이고 강력한 물리적 타격을 가했다"며 우리측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국방부는 "해병대가 이날 서해에서 실시한 사격 연습은 시기가 호국훈련 기간과 겹쳤을 뿐 한 달에 한 번 실시하는 정례 포격 훈련이었으며, 사전에 북측에 사격 지점이 북쪽이 아닌 연평도 서남쪽 우리 영해라는 사실을 통보까지 한 상태"라고 밝혔다. 북한 저네들은 해마다 수시로 해안포 사격 훈련을 하면서도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은 공연한 생트집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잇단 핵위협을 통해 대한민국과 미국으로부터 정치·경제적 대가(代價)를 얻으려는 시도가 빗나간 데 따른 반발의 표시이자, 일부러 남한과의 군사 갈등을 일으켜 위기를 조장함으로써 3대 세습체제에 대한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려 수습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목에 북한이 비수를 들이댄 안보 비상 상황을 맞아 우리는 평화의 시기에 전쟁의 위험에 대비하지 못했던 국가와 국민은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들고 말았다는 역사의 교훈 위에 서서 대한민국 정치 지도부와 국민에게 호소한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대한민국을 보위(保衛)하는 헌법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본인은 물론이고 군과 정부 관계자가 24시간 정위치(正位置)에서 한 치의 흔들림없이 임무 수행에 만전을 기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정부는 또 북한이 이번 도발 이후 벌일지도 모를 후속 공격에 대비해 서해 5도를 비롯한 휴전선 상황을 전면 재점검하고 최단 시일 내에 취약 지역 보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정치권은 모든 정쟁(政爭)을 즉각 중지하고 이 순간부터 모든 논의의 초점을 국가와 국민 보위에 맞춰야 한다. 여권이 먼저 이를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 야당 지도부가 장외(場外)투쟁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안보적 위난(危難)에서 대통령·정부·군·정치권·국민 사이의 의사소통 불량으로 인한 상호 불신은 내부를 허무는 독(毒)이다. 정부와 군은 사태의 진행에 관한 정보를 정치권과 국민에게 가감 없이 신속하게 알려 상호 신뢰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 역시 비상(非常)한 시기에는 비상한 자세로 현실을 직시하며 우리 내부를 교란시키려는 분열적 책동을 경계하고 그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남북 교류 사업과 관련해 북측 지역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국민을 일시적으로라도 조기에 귀환시키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미국 일본 등 동맹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중국 러시아에 대해서도 이번 사태의 진실과 북한 도발이 불러올 동북아 지역의 평화 파괴 위험을 정확하게 인식시켜 유엔을 비롯한 다자(多者) 기구 무대에서 북한의 무모한 만행에 국제적 쐐기를 박도록 해야 한다.
결연(決然)해야 할 때 결연하게 행동할 줄 아는 국가와 국민만이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자각(自覺)할 때다.
-조선일보 사설, 2010/11/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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